인터뷰

“영성은 다름 아닌 타자의 고통에 공감하는 일”

박송이 기자

43년 목회 생활 마무리한 김기석 목사

그의 기독교 사상 담은 <고백의 언어들> 출간

성경은 다양한 해석 가능한 “주름 잡힌 텍스트”

‘타자에 대한 책임’ ‘환대의 윤리’ 강조

최근 43년 목회 생활을 마무리하고 <고백의 언어들>을 출간한 김기석 청파교회 목사가 11일 서울 정동 경향신문사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 서성일 선임기자

최근 43년 목회 생활을 마무리하고 <고백의 언어들>을 출간한 김기석 청파교회 목사가 11일 서울 정동 경향신문사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 서성일 선임기자

“한편으로 감사한 마음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씁쓸한 마음이 있습니다. 지난 43년이 잘 마무리될 수 있었던 것은 수없이 많은 사람의 과분한 사랑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개인으로서의 나 말고 기독교 공동체에 속해 있었던 나로서는 굉장히 씁쓸한 마음이 드는 게 사실입니다. 오늘날의 한국교회가 시민사회와 너무 유리돼 있고, 초월의 방향으로 역사를 안내하지 못하고 길을 잃고 있다는 생각 때문입니다.”

지난 11일 서울 중구 경향신문사에서 만난 김기석 목사는 43년의 목회 활동을 마무리하는 소회를 묻자 이같이 답했다. 청파교회 전도사, 이화여고 교목, 청파교회 부목사를 거쳐 1997년 청파교회 담임목사로 부임한 그는 지난 7일 주일설교를 끝으로 은퇴했다. 성경을 중심으로 문학, 철학, 과학, 예술 등을 아우르며 타자에 대한 존중과 책임, 공동체의 윤리, 환대의 가치를 강조했던 그의 설교는 온라인·유튜브 등으로도 전파되어 기독교인뿐만 아니라 비기독교인들에게도 깊은 울림을 주었다.

은퇴를 앞두고 출간한 <고백의 언어들>(복 있는 사람)은 지난해 8월 캐나다 밴쿠버기독교세계관대학원에서 ‘하나님 안에서, 하나님과 함께, 하나님을 향하여’라는 주제로 다섯 차례에 걸쳐 진행한 강의를 정리한 것이다. 그는 이 책에서 함석헌의 시 ‘하나님’을 단초로 불가해한 존재로서의 절대자에 관해 이야기하며 “이 책에는 아주 낯선 모습으로 다가오시는 절대 타자로서의 하나님으로부터 시작하여, 하나님과의 친밀한 사귐이 주는 기쁨과 든든함, 그리고 안다 싶은 순간 또다시 낯설어지는 하나님을 어떻게 믿어야 할지에 대한 고민이 담겨 있다”라고 전했다. 그는 “하나님에 대해서는 아는 것보다 모르는 것이 훨씬 많음”을 고백하면서, 성경의 언어를 중심으로 시, 소설, 철학, 역사, 미술 등의 언어를 디딤돌 삼아 그가 만나온 절대자에 대해 이야기한다. 다양한 텍스트들과 삶에서 건져올린 이야기들을 촘촘하게 엮은 그의 이야기들을 따라가다보면 ‘반제국주의 담론’ ‘자비의 정치학’ ‘환대의 윤리’로서의 성경을 만나볼 수 있는데, 이는 기독교 공동체뿐만 아니라 오늘날 한국 사회가 새겨봄 직한 성찰의 지점들을 엿볼 수 있게 한다.

그는 성경을 매끈한 텍스트가 아닌 “주름 잡힌 텍스트”라고 말한다. ‘개념으로서의 성경’이 아니라 ‘이야기로서의 성경’을 강조하기도 한다. 그에 따르면 성경에는 오랜 시간 인류가 경험한 일들이 압축돼 있는데, 성경을 읽는다는 것은 그 주름 속에 숨겨진 삶의 자리들을 이해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는 “사람들이 성경을 텍스트 그 자체로 받아들이면서 성경 속에 담겨 있는 수많은 삶의 계기들을 읽어내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만약 누군가에게 70년 살아온 이야기를 10분 동안 하라고 하면 듬성듬성 이야기할 수밖에 없다. 언어 속에 담기지 않는 삶의 결들이 훨씬 많다는 뜻이다. 성경도 마찬가지다”라며 “성경을 읽는다. 혹은 해석한다는 것은 언어화되지 않은 또 다른 경험 세계를 읽을 수 있는 상상력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하나의 정답이 있는 게 아니라 많은 해석의 가능성을 향해 열려 있다는 뜻이다”라고 말했다.

그가 설교와 강연에 성경과 조응해 시를 많이 인용하는 이유도 이야기로서 성경의 세계와 시의 세계가 닮았기 때문이다. “제가 성경에 깊이 감동하는 이유 중 하나는 많은 사람이 성경을 개념으로 다루고 있지만, 사실 성경은 개념이 거의 등장하지 않는 ‘삶의 이야기’이거든요. 사람들이 당연하게 생각하고 있었던 세계와는 다른, 삶의 이야기를 우리에게 들려주고 있어요. 전혀 다른 세계를 상상하는 것을 시적 상상력이라고 하는데요. 시인이 우리가 사용하는 일상적 언어를 재배치함으로써 비일상적인 의미를 드러내는 것처럼 성경도 일상적으로 흘러가는 덧없는 시간 속에서 가장 빛나는 부분을 잡아채서 그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주죠.”

성경을 다양한 해석의 가능성을 열어놓은 이야기로 읽어나가다 보면 텍스트의 주름 사이에 숨겨져 있던 새로운 지평이 열린다. 모세가 히브리인들을 이끌고 이집트를 떠나는 이야기가 담긴 출애굽기는 ‘반제국주의 담론’으로서의 성경을 보여준다. 당시 히브리인들은 이집트라는 위계 사회의 가장 밑바닥 계층을 형성하며 인간적 존엄을 갖지 못한 존재들이었다. 김 목사는 이를 “하나님은 한 사회의 밑바닥에 깔린 채 세상의 무게를 온통 감당하고 있는 이들의 운명을 바꾸고 싶어 하신다”라고 해석한다. “제국은 누군가를 지배하려는 태도인데 지배는 언제나 폭력에 기댈 수밖에 없습니다. 성경의 세계는 그 제국에 대한 대항 담론입니다. 지배하는 욕망을 해체하려고 하고 폭력이 아닌 평화를 어떻게 지향할지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예수가 이야기한 ‘하나님 나라’라는 담론도 로마라고 하는 대제국을 염두에 두어야 보입니다. 로마 제국은 지배의 욕망, 폭력에 기대어 있습니다. 예수는 그 제국에 의해 죽임을 당했는데 예수를 믿는 사람들은 보복하려 하지 않고 오히려 원수까지 사랑하는 길로 가야 한다고 하지요. 그야말로 대항 담론입니다.”

십계명의 제1계명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두지 말라’도 당대의 혹독한 계급 세계의 맥락 속에서 살펴보면 체제 전복적인 의미를 품고 있다. 그에 따르면 이때의 ‘다른 신들’은 당대의 계급 세계를 온전하게 해주는 신들, 지배자들의 편에 선 신들이다. 그는 “(하나님은) 억압 때문에 부르짖는 사람들의 신음소리를 들으시고, 전제정치 아래서 고통받는 것을 보시고, 땅에서 벌어지고 있는 고난의 현실을 똑똑히 아시는 분”이라고 말하며 “지금 한국 교회의 문제는 ‘다른 신들’을 하나님인 줄 알고 믿고 사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이다”라고 말한다. “위계적인 계급 사회를 온전하게 해줬던 것들이 당시의 종교였고 숙명론이었어요. 기존 질서를 온전케 하고 피지배 계급이 억압당하는 것을 정당화하는 것은 모두 ‘다른 신들’이죠. 지금 세상이 우리를 몰아가고 있는 방향이 돈 벌고 출세해야 한다는 질서잖아요. 신앙을 갖고 있다는 이들도 이 질서에서 어떻게 성취를 할 수 있을까 생각하면서 돈, 출세, 자식 등 ‘다른 신들’을 섬기고 있는 거죠.”

그가 굽이굽이 열어내는 성경의 이야기를 따라가다보면 “타자에 대한 책임을 떠맡는 삶”이라는 기독교 윤리의 핵심으로 마주하게 된다. 그는 ‘죄’에 대해 “타자와 더불어 살아감에 있어서 자기 한계를 받아들이지 않고 자기를 세계의 중심에 놓으려는 무한 욕심”이라고 말한다. 목사이면서 반나치운동가였던 디트리히 본회퍼가 기독교인의 실존을 “타자를 위한 존재”라고 했던 것과도 같은 맥락이다. 김 목사는 저명한 랍비이자 유대교 신학자인 조너선 색스가 노아의 방주 이야기 끝에 “순종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라고 말한 것을 인용하며 “믿음 생활에서 중요한 것은 순종이라고 말하지만, 하나님은 우리가 타자를 어떻게 대하는지에 더 관심이 많다”라고 말한다. “성경이 끝없이 우리에게 해주고 있는 이야기는 역사의 수레바퀴에 의해 짓밟힌 사람들에게 하나님이 관심이 많다는 것입니다. 고통받는 타자들에 대해서 관심을 두지 않는 한 하나님을 안다고 이야기할 수 없어요. 레비나스가 타자의 얼굴에 반응하는 게 인간다움이라고 했듯 그 타자의 얼굴이 나를 윤리적 주체로 세우는 것이지요. 신앙인이라면 ‘고통받는 타자 앞에서 나는 어떤 사람인가’라는 물음이 있어야 해요.”

그는 많은 이들이 기복적인 이유로 종교를 선택하는 데 대해서는 비판하지 않았다. 다만 종교가 거기에 국한되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김 목사는 “유한하고 연약한 사람이기에 종교를 선택하는 배경에 기복적인 요소가 없을 수 없다. 절대자를 통해 나의 유한성을 극복하고 나의 불행이 사라지길 바라는 마음은 누구에게나 있다. 나쁜 게 아니다. 그러나 그게 종교의 입문 동기는 될 수 있겠지만 종교의 모든 것이어서는 안 된다”라고 말했다.

종교에 관한 관심이 사라지고 종교 인구가 급감하고 있는 오늘날, 그는 미래 종교의 가능성 또한 ‘타자에 대한 책임’에서 찾았다. “제도 종교는 저물녘에 가까웠다고 이야기하지만, 영성에 관한 관심이 없는 건 아니거든요. 삶의 속도가 빨라질수록 고향상실, 안식 없음, 뿌리뽑힘과 같은 느낌들이 우리를 근원적인 질문 앞에 세웁니다. ‘내가 왜 사는 거지? 어떻게 살아야 하지?’라는 질문에 기존의 제도 종교는 답을 잘해주지 못했던 게 사실이죠. 제도 종교에 대한 실망감이 점점 깊어질 가능성이 있기에 교회는 분명 어려움을 겪게 되겠지만, 근원적인 질문에 대한 설득력 있는 메시지를 전할 수 있는 사람들이 있다면 거기서 새로운 종교성의 미래가 열리게 될 겁니다.”

그는 이어 말했다. “저는 영성이 깊어진다고 하는 걸 다른 것으로 보지 않아요. 타자의 아픔에 공감하는 마음에서 영성은 깊어집니다. 기도 많이 하고 성경 많이 읽고 금식한다고 해도 여전히 자기중심적이라면 그 사람은 영성이 뭔지 모르는 사람이에요. 나 중심으로 세상을 바라보던 사람의 시선이 전복되어 타자들의 고통이 내 마음으로 와닿고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어렵지만 수고할 수밖에 없게 된다면 그의 영성은 깊어졌다고 생각합니다. 한국교회가 ‘아픔의 영성’을 회복한다면 앞으로 희망이 있습니다. 저는 그렇게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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