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여성 자영업자의 고통…제대로 다뤄지지 않아 소설로 쓰기로 결심했죠.”

박송이 기자

신작 <마은의 가게> 출간한 이서수 작가

여성 자영업자가 겪는 일상의 폭력들 그려

반말은 예사에 정체모를 스토커까지

서로를 걱정하고 지지하는 이들의 사랑과 연대

“크게 성공하지는 못해도 버티는 모습 그 자체도 희망”

신간 <마은의 가게>를 출간한 이서수 작가가 지난 9일 서울 정동 경향신문사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 서성일 선임기자

신간 <마은의 가게>를 출간한 이서수 작가가 지난 9일 서울 정동 경향신문사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 서성일 선임기자

분명 ‘자영업자’의 이야기를 다룬 소설인데, 흡사 스릴러물을 읽는 것처럼 읽는 내내 긴장감이 고조된다. 이서수 작가의 장편소설 <마은의 가게>는 처음 카페를 창업한 ‘공마은’이라는 인물을 통해 여성 자영업자가 일상적으로 겪는 두려움과 자괴감을 실감 나게 그려낸 작품이다.

‘젊은 근희의 행진’ ‘광합성 런치’ 등에서 한국 사회의 노동 현실을 예리하게 포착해 온 이 작가는 이번 작품에서는 여성 자영업자가 처한 현실을 섬세하게 그려낸다. 그는 현실 어딘가에 있을 법한 입체적인 인물들, ‘여성’이기에 맞닥뜨리게 되는 크고 작은 위기들, 탁월한 심리 묘사 등을 통해 ‘여성 자영업자’들이 처해 있는 녹록지 않은 현실을 보여준다. 여전히 여성의 경제·사회·문화적 지위에 대해 후진적인 인식을 지닌 한국사회의 단면을 엿볼 수 있다는 점에서 시대의 자화상처럼 읽히는 책이다.

실제로 이 작가는 카페를 열었다가 코로나19 팬데믹으로 문을 닫았던 경험이 있다. 얼마전 서울 중구 경향신문사에서 만난 이 작가는 “여성이 혼자서 장사를 하면 희롱처럼 일상적으로 겪게 되는 불쾌한 일들이 있다. 주변 여성 자영업자분들에게 물어보니 그런 일들이 비일비재하지만, 하나하나 신경 쓰다 보면 장사를 할 수 없으니 그냥 넘겨버리게 된다고들 했다”라고 말했다. 그는 여성 자영업자가 겪는 문제가 엄연함에도 이에 대해 제대로 이야기된 적이 없다는 생각에 소설을 쓰기로 결심했다. 여성 자영업자와 관련한 기사를 찾아보고 젊은 세대뿐만 아니라 오랫동안 장사를 해온 노년의 여성 자영업자들을 찾아 취재를 이어갔다. 이 작가는 “나이 많은 자영업자분들이 과거의 경험을 이야기해주는데, 오늘날 내가 겪은 일과는 차원이 다른 폭력적인 일들이 너무 많았다. 그대로 쓰는 것조차 고통스러워 덜어낸 것들도 많다”라고 말했다.

소설은 단 한 번만이라도 마음 편한 직장을 가져보는 것이 소원이었던 주인공 마은이 전 재산 2000만원 남짓을 투자해 작은 카페를 열면서 시작한다. “손님이 많고 적고, 경쟁 상대가 또 생겼고, 대출 이자가 밀렸고, 건물주가 어떻고”와 같은 이야기들은 마은도 예상했던 난관이었다. 생계에 대한 고민만큼 마은을 힘들게 한 건, 마은이 ‘여성’ 자영업자이기에 일상적으로 겪게 되는 긴장감과 여기에 어김없이 뒤따르는 자괴감이었다. “커피가 싸잖아요. 희롱하는 데 5000원이면 충분한 거야”라는 인근 카페 주인 한솔의 자조와 “다른 일을 할 땐 이렇게 성별을 의식하며 신경이 곤두서지 않았다”라는 마은의 자각은 여성 자영업자에게 가해지는 일상의 폭력을 보여주는 씁쓸한 단면이다.

‘마은의 가게’. 문학과지성사

‘마은의 가게’. 문학과지성사

마은은 장사를 시작하면서 주변으로부터 ‘비상벨을 꼭 달라’는 조언을 듣는다. 옛날처럼 가게에 현금이 있지도 않고 외부에서 훤히 들여다보이는 1층 길가에 위치한 카페인데 굳이 비상벨이 필요할까. 카페 문을 열고 얼마 지나지 않아 마은은 그들이 한 말을 이해하게 된다. 여성 혼자 일하는 가게를 일단 얕잡아보는 사람들의 태도는 마은의 불안감과 긴장감을 점점 증폭시킨다. 반말은 예사에 커피를 가져다주면 ‘다방 같다’라는 농담을 건네는 이들. 무례함을 친밀감이랍시고 들이대면서 마은이 호응하지 않자, 장사할 성격이 못 된다며 마은을 탓하는 이들. 손님이 없을 때만 찾아와 시종일관 마은을 빤히 주시하는 남자, 거기에 밤마다 마은의 가게 앞을 서성이며 가게 안을 들여다보는 정체 모를 스토커까지. 가게가 일터이자 집인 마은은 “출입문 손잡이에 노끈을 칭칭 감은 뒤 테이블 다리에 연결해 묶고 나서야 비로소 잠깐 눈을 붙일 수 있을” 만큼 불안한 일상을 살아간다. 그러면서도 마은은 한 편으로는 자신의 태도를 끊임없이 점검하며 자괴감에 시달린다. “나의 성별과 외모, 말투, 가게에서 먹고 자는 삶을 산다는 것. 그게 전부인데 그 사실 가운데 무엇이 나를 무시해도 좋다는 결론을 내리게 한 걸까. 나에게서 문제점을 발견하려는 태도를 버리고 싶어도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사람을 맞닥뜨렸을 땐 차라리 그렇게 하는 편이 화가 덜 났다.”

이 작가는 당초 4개의 버전으로 소설을 준비했다. 그는 “소설을 쓰면서 마은이 조금 더 용감하고 씩씩해야 하지 않을까를 계속 고민했다. 4개의 버전 중 마은이 아주 센 캐릭터로 나오는 것도 있었다. 그런데 그건 원래 하려던 이야기가 아니어서 쓰다가 멈췄다”라며 “소설이 드라마틱해지는 걸 경계했고 현실 속에 존재할 법한 사람이 가능한 범위 안에서 변화를 겪는 이야기를 쓰고 싶었다”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마은은 영세 자영업자로 주거 불안도 겪고 있다. 화가 나지만 속으로 그걸 좀 삭이고 오히려 자신을 좀더 많이 돌아보는 인물, 누군가를 미워하지만 막상 마주치면 밝게 인사를 하고 또 그것 때문에 후회하는 인물이 더 현실적이라는 생각을 했다”라고 말했다.

그렇다고 마은이 고뇌하고 흔들리기만 하는 캐릭터는 아니다. 마은은 자신의 내면을 살피고 자신의 기준과 감정을 존중한다는 점에서 단단한 인물이다. 소설이 전개되면서 마은은 무례한 태도로 자신을 불편하게 한 인물들에게 뜻밖의 도움을 받기도 한다. 도움을 받았으니 무례함과 불쾌한 침범 정도는 용인하고 감내해야 하는 걸까. 그러나 마은은 뻔한 드라마의 여자 주인공처럼 자신의 ‘예민함’을 탓하며 ‘그들을 오해했다’라고 반성하는 클리셰를 따라가지 않는다.

소설은 밤마다 마은의 가게 앞을 서성이던 스토커가 정체를 드러내면서 클라이맥스를 향해 간다. 이 작가는 초고에서는 다소 어두운 방향이었던 결말을 고쳤다고 전했다. 그는 “어떻게든 희망을 조금 그려보고 싶었고, 크게 성공하지는 못해도 버티는 모습 그 자체만으로도 희망을 줄 수 있을 거란 생각에 결말을 다시 썼다”라고 말했다.

소설의 결말이 밝은 쪽으로 전개될 수 있는 또 다른 배경에는 마은의 주변에서 서로를 돌보고 지지하는 관계들이 있다. 마은의 엄마, 이모, 고시원 친구인 정미 언니, 카페 손님 보영, 경쟁업체라고 할 수 있는 인근 카페 주인 한솔까지…이들은 서로가 필요할 때는 기꺼이 곁을 내어주지만, 각자의 거리를 존중한다는 점에서 인상적이다. “나도 연대가 좋아. 근데 진정한 연대가 뭔지 모르겠어. 인스타그램이나 트위터에만 있는 것 같아…(SNS 연대에도) 계층이 있어”라는 극 중 등장인물 진경 언니의 말처럼 소설에는 구호 같은 연대는 등장하지 않는다. 다만 소설은 “서로에게 의존하는 관계가 아니라 적당히 선을 긋되 필요할 때 확실히 돕는 관계. 그리고 다시 물러서서 자신의 삶 속으로 기꺼이 돌아가는 관계”들에 대해 말한다. 이 작가는 “소설 속에서는 SNS를 두고 ‘연대하자는 광고판’이라고 말하는 대목이 나온다. SNS 속의 연대는 되게 밝고 에너지가 넘치고 선명하다”라며 “그러나 SNS에는 진입장벽이 있고 기질적으로 맞지 않는 사람도 있다. 그러면서 SNS 바깥의 연대에 대해 더 자주 생각을 하게 되었다”라고 말했다.

이 작가는 작품을 통해 ‘노동’ ‘먹고사는 문제’를 다루는 <월급사실주의> 동인이기도 하다. 그는 앞으로도 ‘노동’이라는 주제에 천착해 집필을 이어나갈 계획이다. “노동은 삶에서 필수적이지만 너무 괴롭다. 일을 너무 많이 하는 것을 바로잡는 게 시급한데 과연 그게 가능할까 싶은 생각도 든다. 이제는 그걸 넘어서서 노동을 꼭 해야만 할까 하는 생각까지 하게 됐다. 기술의 발달로 노동의 모습도 많이 바뀔 텐데 그런 만큼 앞으로 노동에 관해 쓸 이야기들이 더 많을 거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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