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비문명인들 같으니!

고병권 노들장애학궁리소 연구원

고맙다.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의 공이 크다. 스피커 큰 사람이 욕해대니 욕먹는 사람도 주목을 받는다. 그가 아니었다면 장애인 이동권 투쟁의 역사가 이처럼 조명되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한 인터뷰에서 그는 “일반단체라고 해도 지하철을 막는 방법으로 투쟁하면 실정법 위반”인데 이런 상황을 “몇 개월이나” 정치인들이 “장애인단체 시위라는 이유로 방치”해왔다고 분개했다. 최고위원회의에서는 이들의 시위를 “비문명적 관점”의 불법 시위라고 부르기도 했다. ‘비문명적’이라고 에둘러서 말했지만 실상은 문명사회에 안 맞는 ‘야만적’ 시위라는 뜻이다.

고병권 노들장애학궁리소 연구원

고병권 노들장애학궁리소 연구원

그런데 이준석 대표가 말한 장애인들의 비문명적 시위와 이것을 방치한 역사는 더 오래되었다. 몇 개월이 아니라 수십년이다. 다만 이 방치는 그가 말한 의미와 달리 묵인이 아니라 무시였다. 정치인들에게 장애인들은 그렇게 위협적인 존재가 아니었다. 그러지 않고서야 똑같은 요구를 내건 시위가 수십년 동안이나 계속될 수 있겠는가.

2018년에도 지금과 비슷한 시위가 있었다. 서울 지하철 1호선과 5호선이 만나는 신길역에서 휠체어 장애인들이 타고 내리기를 반복함으로써 열차를 연착시켰다. 한 장애인이 이 역의 리프트에서 떨어져 죽은 것에 항의하는 시위였다. 서울 지하철역의 승강기 설치율은 이때에도 이미 90%를 넘은 상태였다. 전체 277개의 역사 중에서 딱 26개만 빼고 모두 설치되어 있었는데 하필 이 장애인이 그 26개 중 하나인 신길역을 이용해버렸다. 언젠가는 100%가 될 거라고 했는데 그 ‘언젠가’를 기다리지 못하고 말이다. 문명화가 덜 된 게 장애인인지 신길역인지는 모르겠지만 이때 장애인들은 ‘관’을 들고 지하철에 탑승했다. 비어 있는 관이었지만 충격적인 행동이었다. 그런데 이 시위가 승강기 설치가 불가능하다는 신길역의 구조상 난점과 예산상의 곤란을 단숨에 해결해버렸다.

비문명적 행동으로 인권은 진보

한국 사회에서 이들 무리가 처음 나타난 것은 2001년이다. 4호선 오이도역에서 나이 든 장애인이 떨어져 죽고, 혜화역에서 장애인 야학에 다니던 학생이 떨어져 다쳤을 때 이 야학의 학생과 교사들이 뛰쳐나왔던 게 시작이다. 이들은 이준석 대표가 상상도 못할 만큼 비문명적이었다. 이들은 열차의 출입문을 느리게 들락거리는 정도가 아니라 선로에 뛰어들어 열차를 막아섰다. 이 행동 후에야 13%에 머물던 지하철역의 승강기 설치율이 크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어디 지하철에서만 그랬고 이동권 문제로만 그랬을까. 이 비문명인들은 버스를 타겠다며 도로에도 뛰어들었다. 그러자 서울시의 도로 구조와 재정 여건상 그렇게 도입이 어렵다는 저상버스가 다니게 되었다. 추석 때는 고향에 가고 싶다며 표를 끊어서 고속버스에 달려들었다. 귀성객들에게 참혹한 욕설을 듣고 경찰들에게 끌려갔지만, 이런 비문명적 행동으로 휠체어 탑승이 가능한 고속버스가 2019년부터 시범 운영에 들어갔다. 2006년에 관련법이 제정되었지만 계속 잠을 자던 현실을 13년 만에 깨운 것이다.

활동보조인서비스 제도의 도입 때도 그랬다. 2005년 보일러 동파 사고로 한 장애인이 얼어 죽은 일이 일어났다. 얼마 뒤에는 방에 불이 난 걸 알았는데도 몇 걸음 앞에 있는 문을 열지 못해 불타 죽은 장애인도 있었다. 이런 비극이 이때가 처음은 아니었다. 처음이었던 것은 이것을 더 이상 용납하지 않는 비문명적 장애인들의 등장이다. 2008년 장애인들은 한강대교의 자동차들을 막고는 휠체어에서 내려 다리 위를 기었다. 몇 시간이 걸렸고 많은 장애인들이 실신했다. 2014년에는 불타 죽은 동료의 시신이 든 관을 시청 앞에 내려놓고 곡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 비문명적 행동으로 활동보조인서비스 제도가 마련되었고 또 확대되었다.

지난 20여년간 이들의 비문명적 행동은 모두 나열할 수 없을 만큼 많다. 정치인들은 이들을 방치했는지 모르지만 경찰은 그러지 않았다. 이들은 경찰서에 끌려가 조사를 받았고 무거운 벌금을 선고받았고 감옥살이까지 했다. 그동안 선량한 시민들은 이들을 욕했고 학식 높은 지식인들은 혀를 찼으며 지체 높은 정치가들은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이번에는 이들을 향해 비문명이고 실정법 위반이라며 게거품을 물고 훈계하는 젊은 정당 대표까지 나타났다.

‘문명’ 걱정은 언제쯤 사라질까

언제쯤에나 이들이 사라질까. 중국인과 북방 오랑캐를 갈라놓은 거대한 장성을 두고서 물었던 카프카의 소설 속 화자처럼 나도 묻는다. “이 거대한 장성이 누구를 막아준다는 말인가.” “찢어진 아가리와 날카로운 이빨들이 삐죽삐죽 솟은 턱”을 가졌으며, 손과 발이 뒤틀렸고, 알아듣기 힘든 소리를 내는 야만인들. 이들이 울먹이며 정권을 담당할 이들에게 한 달의 시간을 통보했다. 매일 한 사람씩 머리를 밀면서 기다리겠단다. 게다가 이 무리에 합류하는 이들이 계속해서 늘고 있다. “평화로운 정자”에 앉아 문명을 걱정하는 정치가들의 근심이 참 크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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