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1일의 삭발식

고병권 노들장애학궁리소 연구원

장애인들의 출근길 지하철 투쟁이 1년이 되었다. 장애인에게도 교육받고, 노동하고, 시설이 아닌 동네에서 살 권리가 있다는 당연한 말을 당연한 말로 만드는 것이 참 힘들었다. 20년 전부터 선로에 뛰어들고 도로를 기어가는 일을 숱하게 반복하고 나서야 이동편의증진법, 특수교육법, 장애인차별금지법, 발달장애인권리보장법 등이 제정되었다. 그런데도 장애인들의 권리는 제대로 보장되지 않았다. 미흡한 법률도 문제였지만 예산이 뒷받침되지 않은 탓이 컸다. 정부는 매년 예산이 아니라 말을 책정해왔다. ‘노력하겠다’, 이것은 말이지 돈이 아니다. 그리고 말로써는 권리를 보장할 수 없다. ‘장애인권리예산을 보장하라’는 요구를 담은 투쟁이 이토록 계속된 것은 정부가 자꾸 돈 대신 말을 내밀었기 때문이다.

고병권 노들장애학궁리소 연구원

고병권 노들장애학궁리소 연구원

지난주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는 출근길 지하철탑승시위를 잠정 중단하겠다고 밝혔다. 이달 국회에서 예산안이 어떻게 처리되는지를 지켜보기로 한 것이다. 참 반향이 큰 시위였다. 감히 출근길 대란을 일으키다니. 엄청난 비난과 욕설이 쏟아졌다. 하지만 그 덕분에 사상 처음으로 여당 대표와 TV 토론도 할 수 있었고 응원하는 사람들도 제법 생겨났다.

이 시위는 크게 두 장면으로 이루어져있다. 뉴스 화면에 잡히는 것은 주로 두 번째 장면이다. 출근길 대란, 열차의 연착, 열차 안의 다툼. 하지만 위대한 사건은 소란이 아닌 고요 속에 있다고 했던가. 정작 이번 시위가 왜 일어났는지를 말해주는 것은 거의 보도되지 않는 첫 번째 장면이다. 탑승 시위 전에 열리는 삭발 결의식. 삭발에 나선 당사자는 자신이 이 투쟁에 나선 이유를 들려준다. 겨우 3분, 5분, 10분의 시간에 그는 자신이 살아온 10년, 30년, 50년의 세월을 담는다. 웃으며 말할 때조차 그는 참석자 모두를 숙연케 한다. 그가 이야기를 마치고 삭발을 하고 나면 동료들은 그를 따라 객실 안으로 줄지어 들어간다. 이것이 지하철탑승시위다. 이 일이 무려 141차례 있었다.

141차례 다른 사람들이
141차례 다른 이야기를 꺼내며
모두 머리를 밀었다

그 아침의 욕설은 같았을지라도
모두 다른 아침이었다

인터넷 언론 ‘비마이너’에는 이 141차례 삭발식에서 178명이 꺼내놓은 이야기가 실려 있다. 첫날 삭발자였던 장애운동가는 곧 쏟아질 욕설들을 알고 있었다. “제가 지하철 선전전을 시작하면서 제일 먼저 하는 말이 ‘시민 여러분, 불편을 끼쳐드렸다면 정말 죄송합니다’입니다. 장애인으로 살면서 항상 무엇이 미안한지, 무엇이 죄송한지, 입에 껌딱지처럼 달고 말을 합니다.” 그는 지하철에서만 욕을 먹은 게 아니라고 했다. 길을 가다가 걸리적거린다고 욕먹었고, 엘리베이터 늦게 탄다고 욕먹었고, 식당에서 휠체어 때문에 공간 많이 차지한다고 욕먹었다고 했다. “오늘은 또 시민들이 얼마나 무시무시한 욕설을 할까요?” 그는 그날도 ‘죄송합니다’로 말을 시작했고 예상했던 대로 무시무시한 욕설을 들었다.

둘째 날의 삭발자는 이렇게 말했다. “시민 여러분들께 진심으로 사과드립니다. 저는 단지 지하철을 타는 우리 시민분들의 삶이 부러웠습니다.” 다섯째 날의 삭발자는 집에서 40년, 시설에서 15년을 살았노라고 했다. 태어나서 무려 55년 동안 학교를 다녀보지 못했고, 뒤늦게 야학을 다녔다고, 제발 장애인들의 교육을 보장해달라고 했다.

무려 500명이 넘는 사람들이 삭발했던 4월19일. 중증발달장애인 아들을 둔 어느 엄마는 이렇게 말했다. “저는 평생 ‘내가 우리 아들보다 하루만 더 살면 좋겠다’고 소망해왔습니다. 이제는 이런 소원 품지 않습니다. 제가 이 세상에 있든 없든 자식이 당당하고 평등하게 사는 게 제 첫 번째 소원입니다.” 중증발달장애인 손자를 둔 할아버지도 머리를 밀었다. “내 나이가 80을 앞두고 있으니 하루하루가 눈물입니다. 지금은 기력이 돼서 손자를 돌보고 있지만 딸에게 오롯이 손자를 안기고 인생을 어찌 떠날 수 있을까요. 죽어서도 계속 손자 곁을 맴돌며 눈물 지을 것 같습니다. 국가책임제가 만들어지는 그날까지, 제 여생을 바쳐 최후 순간까지 투쟁할 것입니다.” 한 장애운동가는 삭발 중에 옛 기억을 떠올리며 울먹였다. “아무 말도 못하고 (계단 앞에서) 30분을 그냥 있어본 적도 있었습니다.” 척수성근위축증을 앓는 어느 장애인은 “처절한 제 삶의 약함을 드러내며 함께 살고 싶다고, 저도 한 시민으로 존엄하게 살고 싶다고 용기를 내어 이 자리에 섰노라”고 했다.

이들 모두가 머리를 밀었다. “머리가 꾸밀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었다던 뇌병변장애인도, “시설에 있을 때 만날 머리를 빡빡 밀고 살아서 시설에서 나오고는 머리에 공을 많이 들인다”는 탈시설장애인도 머리를 밀었다. 그리고 이들과 함께하는 마음을 담아 활동가, 사회복지사, 기자, 의사, 연구자들이 머리를 밀었다. 141차례 다른 사람들이 141차례 다른 이야기를 꺼내며 모두 머리를 밀었다. 141일의 아침은 쏟아지는 욕설은 같았을지라도 모두 다른 아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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