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병권 노들장애학궁리소 연구원

단속과정서 인권 보호하겠다는
말은 참 허망하기 그지없다

불법에 대한 이런 단속이 내게는
인간이 인간에, 생명이 생명에게
저지르는 거대 범죄의 일부 같다

또 계절이 온 모양이다. 지난 5일 법무부는 두 달 동안 불법체류자 집중단속을 벌이겠다고 발표했다. 법무부, 경찰청, 고용노동부, 국토교통부, 해양경찰청 등이 모두 나서 범정부 차원에서 합동단속을 벌인다고 한다. 몇 줄 안 되는 보도자료라서 그런지 더욱 결기가 느껴진다. 흡사 범죄와의 전쟁 선언 같다. 하지만 단속 대상은 흉악범들이 아니라 비자기간을 넘긴 외국인들이다. 불법이라고는 했지만 사법적 처벌이 아니라 행정조치의 대상들이다.

고병권 노들장애학궁리소 연구원

고병권 노들장애학궁리소 연구원

불법을 단속하겠다는데 무슨 시빗거리가 되나 싶겠지만 그렇지가 않다. 법무부는 이번 조치가 “국익에 도움이 되는 유연한 외국인 정책의 전제는 ‘엄정한 체류질서의 확립’ ”이라는 장관의 말에 따라 이루어졌다고 했다. 집중 단속 분야도 따로 밝혀두었다. “택배·배달 등 일자리 잠식 업종”과 “유흥업소·마약범죄 등 사회적 폐해가 큰 분야”이다.

‘일자리 잠식 업종’이 먼저 제시된 것은 무엇 때문일까. 웬만큼 글을 읽는 사람이라면 여기에 어떤 뉘앙스가 담겨 있음을 놓치지 않을 것이다. 국민 일자리를 잠식한 업종을 ‘엄정히’ 단속하겠다는 것은 국민이 원하지 않는 일자리에는 ‘유연하게’ 대처하겠다는 뜻이다. 조금 더 적극적으로 읽어본다면, 노동력을 구하기 힘든 업종에서는 ‘알아서 쓰라’는 암묵적 메시지이기도 하다.

이런 메시지의 해독 과정에서 손발이 맞지 않아 문제가 생기는 경우도 있다. 농민신문 보도에 따르면 지난 5월 부여의 농산물 산지유통센터에 단속반이 들이닥쳐 선별작업 중이던 노동자들을 연행해갔다고 한다. 이에 농민들이 “수확철에 그것도 영농현장에 직접 와서 단속하는 것은 농사를 짓지 말라는 말과 같다”며 크게 반발한 모양이다. 내국인 노동자는 아예 오지 않고 합법체류 노동자에게는 “월급에 4대보험까지 가입해주어야 하는데” 그렇게는 농사를 지을 형편이 안 된다는 것이다. 이 말을 바꾸면 보험 가입도 없이 저임금으로 노동력을 사용하려면 불법체류자가 필요하다는 뜻이다. 인상적인 것은 출입국관리사무소의 반응이다. 전면적 단속이 아니라 “신고가 들어와서” 단속했다는 것이다.

이 기사를 보고 예전에 읽은 연구보고서 하나가 떠올랐다. 당시 법무부가 발주한 것으로 ‘불법체류 외국인의 적정 규모 추정’에 대한 연구였다. 불법의 적정 규모? 보고서 집필자도 어색한 표현이라고 느꼈는지 “논리적으로는 성립하지 않지만 현실적으로는 쓸 수밖에 없다”고 했다.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우선 수많은 사람들이 국경을 넘나드는 오늘날에는 비자기한을 넘겨 머무는 이들이 생겨날 수밖에 없고 이것을 막을 방법도 없다. 다음으로 이들의 노동력을 간절히 원하는 업종과 업체들이 있다. 산업상의 필요가 있는 것이다. 그래서 많은 나라들이 관리 가능한 불법체류자 비율을 목표치로 갖고 있다. 저수지 수위를 관리하듯 경제상황을 보아가며 밸브를 열었다 조였다 하는 것이다.

실제로 불법체류 노동자의 불법 상태는 단속의 이유이기보다 노동력에 대한 이용과 관리의 조건일 때가 많다. 그 덕분에 업체들은 이들의 노동력을 4대보험 없이 저렴하게 이용할 수 있고 당국은 언제든 처분 가능한 상태, 밸브만 열면 언제든 내보낼 수 있는 상태로 관리할 수 있다. 불법이어서 단속한다기보다 불필요할 때 불법을 이유로 퇴거에 들어간다고 하는 게 현실에 가깝다.

이제 곧 끔찍한 일이 일어날까 두렵다. 단속과정은 통상 ‘토끼몰이’로 불린다. 한때는 정말로 그물총을 쏘기도 했다. 인권침해 논란이 일자 그물총은 사라졌지만 단속의 전체적 풍경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이 과정에서 어김없이 사람이 죽는다. 법무부는 단속과정에 관한 ‘적법절차 및 인권보호준칙’을 마련해 이달부터 시행한다고 했다. 주거지나 영업장에 들어갈 때는 관리자에게 사전 동의를 구하고 외국인의 인권보호에도 각별히 신경을 쓸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이번 보도자료에는 “정당한 이유 없이 단속을 거부하는 행위에 대해서는 압수수색 영장을 발부받아” 적극 대응하겠다는 위협도 함께 담았다.

단속과정에서 인권을 보호하겠다는 말은 참 허망하다. 애초부터 미등록이주자들은 인권박탈 상황에 놓여 있었다. 노동할 때는 언제든 퍼 쓸 수 있는 저수지의 물이었고, 단속반이 덮칠 때는 숨을 헐떡이며 산으로 도망치는 토끼였고, 포획된 후에는 외국인보호소라는 곳에서 등이 꺾이는 새우였다. 마치 서로 맞물려 돌아가는 착취 시스템 같다. 불법에 대한 이런 단속이 내게는 인간이 인간에게, 생명이 생명에게 저지르는 거대한 범죄의 일부처럼 보인다.


Today`s HOT
휴전 수용 소식에 박수 치는 로잔대 학생들 침수된 아레나 두 그레미우 경기장 UCLA 캠퍼스 쓰레기 치우는 인부들 호주 시드니 대학교 이-팔 맞불 시위
인도 카사라, 마른땅 위 우물 갱단 무법천지 아이티, 집 떠나는 주민들
마드리드에서 열린 국제 노동자의 날 집회 폭우로 주민 대피령 내려진 텍사스주
경찰과 충돌한 이스탄불 노동절 집회 시위대 케냐 유명 사파리 관광지 폭우로 침수 올림픽 앞둔 프랑스 노동절 시위 해리슨 튤립 축제
경향신문 회원을 위한 서비스입니다

경향신문 회원이 되시면 다양하고 풍부한 콘텐츠를 즐기실 수 있습니다.

  • 퀴즈
    풀기
  • 뉴스플리
  • 기사
    응원하기
  • 인스피아
    전문읽기
  • 회원
    혜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