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약한 사고의 시대

나는 첫 저서 <우리는 차별에 찬성합니다>에서 개인을 구원한다는 능력주의가 공동체를 어떻게 파괴하는지를 조명했다. 관련 강연도 수백번 했다. 차별과 혐오의 씨앗을 일상에서 찾아보자는 내용이다. 시험을 만병통치약으로 여기는 빈약한 사고가 누군가의 삶을 납작하게 찌그러트리는 무례한 상상력으로 이어져서는 안 된다는 경고를 하면 꼭 이런 반응이 등장한다. “그럼 대안이 뭐죠?” 대안을 찾자는 게 아니라, 현 상황에 어떤 문제점이 있는지를 따져보는 것 자체에 의미가 있다고 친절히 말해도 반응은 차갑다. “학교라도 그만두라는 건가요?” 고정관념을 지지하는 중심부로 갈수록 빈정거림은 커진다. “선동하지 마세요!”

오찬호 <세상이 좋아지지 않았다고 말한 적 없다> 저자

오찬호 <세상이 좋아지지 않았다고 말한 적 없다> 저자

방송에서 ‘결과의 평등’을 자주 이야기했다. ‘경쟁의 결과에 상관없이 누구나 존엄하게 살 평등한 권리가 있다’라는 의미임을 차근차근 말해도 ‘미친 소리’라는 반응이 압도적이다. 불평등을 조정하자는 건 모두가 기계적으로 평등하자는 것이 아니라, 아래쪽을 조금이라도 올려 양극화를 완만히 하는 것이라고 말해도 “북한에서 사세요!”라는 조롱이 넘쳐난다. 첫째 질문을 던지고 둘째, 셋째, 넷째를 아무리 이어가고 있어도 처음 번뜩거렸던 관성적이고 원초적인 의문만을 그대로 뱉는다. 둘째부턴 이해하기 싫다는 것인지, 안 해도 된다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중요한 건 저 자신감이다. 세상을 복잡하게 이해할 필요가 없다는 단호함이 무서울 정도다.

빈약한 사고가 넘쳐나는 시대다. 학력주의를 따져 물을 때만 등장하는 일이겠는가. 불평등이 너무 만연하니, 체념의 두께만큼 ‘평등’은 추상적이고 모호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여기저기 오직 개인의 무용담만 넘쳐나더니 ‘현상의 사회적 맥락’ 따위는 시궁창에 던져진다. 역사와 문화가 어떻게 지금과 얽혀 있는지를 따져보는 것은 귀찮은 일이다. 차별이 심하면 차별을 극복하거나 받아들이고 살면 될 뿐, 구조적으로 원인을 분석하고 문제를 줄이기 위한 정책을 생각하는 건 시간낭비일 뿐이다.

성평등 주제에선 논의의 납작함이 하늘을 찌른다. 젠더라는 표현이 생물학적 성별 구분의 한계를 보완하자는 맥락이지만, 밑도 끝도 없이 남자와 여자는 다를 뿐이라는 신념만이 나부낀다. 다를지언정 그게 차별로 이어지는 고정관념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해도, 차별이 아니라 차이일 뿐이라면서 발끈한다. 왜 여성의 근속연수가 짧은지를 따지자고 해도, ‘노동시간이 다른데 성별 임금 차이가 왜 문제냐’는 애초의 편견을 결코 깨지 않는다. 차별금지법 논쟁에선 화룡점정이다. 차별을 금지하자는데, ‘차별을 못하는 차별은 부당하다’는 발상이 당당하게 말과 글로 등장한다. 성소수자가 사회에서 배제되는 것을 줄여나가자는 법안은 십수년째 ‘동성애를 싫어할 권리가 있다’는 궤변의 벽을 쉽사리 넘지 못하고 있다.

한 방송국이 올림픽 개회식을 중계하면서 국가 소개에 괴상한 설명을 곁들였다. 백신 접종률은 선진국과 후진국, 유럽과 비유럽이라는 고전적인 분류를 견고하게 하는 필요 없는 정보였을 뿐이다. 체르노빌 원자력발전소 폭발, 대통령 암살 등이 소개된 게 단순한 에피소드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길들여진 대로 떠오르는 것을 나열해도 별문제가 없는 일상의 누적이 없고선 불가능한 실수 아니겠는가.


Today`s HOT
보랏빛 꽃향기~ 일본 등나무 축제 연방대법원 앞 트럼프 비난 시위 러시아 전승기념일 리허설 행진 친팔레스타인 시위 하는 에모리대 학생들
중국 선저우 18호 우주비행사 뉴올리언스 재즈 페스티벌 개막
아르메니아 대학살 109주년 파리 뇌 연구소 앞 동물실험 반대 시위
최정, 통산 468호 홈런 신기록! 케냐 나이로비 폭우로 홍수 기마경찰과 대치한 택사스대 학생들 앤잭데이 행진하는 호주 노병들
경향신문 회원을 위한 서비스입니다

경향신문 회원이 되시면 다양하고 풍부한 콘텐츠를 즐기실 수 있습니다.

  • 퀴즈
    풀기
  • 뉴스플리
  • 기사
    응원하기
  • 인스피아
    전문읽기
  • 회원
    혜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