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별금지법이 가져올 천국

오찬호 <세상이 좋아지지 않았다고 말한 적 없다> 저자

청소년들과 이들의 보호자를 상대로 비대면 강연 중이었다. 흐름상 질의응답은 강연 끝에 진행하기로 협의했다. 주제는 인권, 평등 등 꽤나 평범한 내용이었지만 누군가는 이를 낯설게 받아들이면서 짜증을 감추지 않는다. 불쑥 들어오는 아무개의 이야기를 막을 순 없었다. 요약하자면 이렇다. “왜 학생들 앞에서 동성애를 선동해요?”

오찬호 <세상이 좋아지지 않았다고 말한 적 없다> 저자

오찬호 <세상이 좋아지지 않았다고 말한 적 없다> 저자

나는 동성혼이 세계 곳곳에서 인정받고 있는 건 결혼의 기본값을 이성끼리의 결합‘만’으로 고정시킬 수 없다는 신호라고 말했을 뿐이다. 이성애자들은 이성애자 만나서 이러쿵저러쿵 원래대로 살면 된다. 선동은, “소수자의 인권이 국민 다수의 인권보다 우선시될 수 없다”는 궤변과 괴담 속에 있다. 누군가가 차별받지 않을 변화가, 누군가를 예전처럼 차별할 수 없다는 이유와 함께 저울추에 올라갈 순 없다.

여전히 차별금지법은 수면 아래에 있다. 대선 후보들은 사람의 존엄성을 표로 계산해 애매모호한 의지를 보여주거나 과장된 우려를 더 과장해서 본인이 특정 종교와 궤를 같이하고 있음을 강하게 드러낸다. 국회의원은 이 법이 나라를 망하게 한다는 논조의 간담회를 개최하고 여기에 최적화된 사람을 초빙하여 ‘차별금지법에 반대하는’ 여론을 조성한다. 언론인 사장 아무개는 이 법이 취재를 위축시킨다면서 동성애자 사이의 살인사건에서 동성애를 조명하지 못한 점을 예로 든다. 그럼 이성애자의 살인, 강도, 강간, 절도, 폭력, 사기, 아동학대, 범죄은닉은 가해자의 성적지향을 부각해 심층취재라도 했단 말인가. 동성애자 아무개의 사건사고를 보도하면서 ‘애’가 아니라 ‘동성’에 방점을 찍어선 안 되는 건 평등을 향한 타당한 노력이어야 하는데, 2021년에도 쉽지 않다.

물론 차별금지법도 토론의 대상이다. 나 역시, 하위법들이 지나치게 세밀해지는 현대사회의 추세에 반대 입장이다. 촘촘한 그물이 필요하다는 건 십분 이해하지만, 왜 그래야 하는지에 대한 체계적인 교육이 없는 상태에서는 빈틈을 찾는 사람도 그만큼 많아진다. 하위법을 능수능란하게 다루는 법조인이 헌법에 위배되는 판결을 이끌어내는 건 그리 낯선 풍경이 아니다. ‘성폭력+변호사’로 검색하면 고발당한 사람에게 빠져나갈 구멍을 어떻게든 찾아주겠다는 변호사들을 쉽게 만날 수 있는 것처럼 말이다.

세부조항도 충분히 논쟁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블라인드 테스트를 안 하면 학력차별인가 같은 질문은 중요하다. 특히나 과학 분야처럼 학교마다, 교수마다 전공 분야가 정밀하게 개척되는 형태라면 블라인드는 효율성도 없고 궁극적으로 국민들이 과학발전의 수혜를 얻지 못한다. 이런 논쟁은 차별하지 않는 방법을 세련되게 찾기 위한 아름다운 과정이다. 그런데 그런 대화가 토론회장에서 오간 적이 있는가? 최근에 들었던 질문은 이슬람에 대한 차별도 하지 말자는 거냐면서 상당히 파격적이었는데, 내 대답은 간단했다. “네.”

차별금지법이 통과되면 학교에서 동성애 의무교육을 하는 등 새로운 독재가 등장한단다. 좋은 징조다. 그 교육은 ‘타고난’ 이성애자의 운명을 바꾸는 게 아니라 ‘그렇게 태어난’ 동성애자를 배제하지 말자는 것이니 말이다. 운명을 바꿀 수도 있겠다. 차별금지법 눈치 보고 진심이든 아니든 평소와는 다른 행동을 한다면, 분명 천국이 가까워졌을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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