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두율
전 독일 뮌스터대학 사회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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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두율 칼럼 오만과 편견 밤새 우크라이나에서 일어난 사건의 보도로 아침 뉴스가 시작된 지도 벌써 두 달이 되어간다. 주로 우크라이나의 공식적인 보도나 난민의 증언으로 전쟁의 참상이 시각매체를 통해 전달되기도 하지만 최근 들어선 서방 측에 중무기의 지원을 요청하는 우크라이나 정부의 다급한 목소리가 자주 들린다. 이런 요청에 적극 응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지만, 이는 사태를 더 악화시킬 수 있다는 신중론도 있다. 이와 함께 ‘러시아 이해’를 둘러싼 논쟁도 심심치 않게 나돈다. ‘러시아 이해’는 단어 그대로 러시아를 이해하자는 것이 아니라 ‘푸틴의 러시아’를 옹호하는 태도를 비판한다는 의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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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두율 칼럼 올리가르히의 초상 러시아 제일의 갑부이자 블라디미르 푸틴의 절친한 재정지원자인 로만 아브라모비치를 둘러싼 논쟁은 포르투갈에서도 뜨겁다. 유대계로 이스라엘과 영국의 국적도 가지고 있던 그가 포르투갈의 국적을 작년 말에 취득했기 때문이다. 또 그가 포르투갈의 국적을 취득할 수 있었던 법적인 근거도 특이하다. 그의 선조가 8세기 초엽 포르투갈에 살았던 유대인이었는데 가톨릭의 박해를 피해 러시아로 이주했다. 2013년과 2014년에 이베리아 반도에 속한 스페인과 포르투갈은 각각 이들의 후손에게도 국적을 회복할 수 있게 한 한시적인 특별법을 제정했다. 이에 따라 아브라모비치는 포르투갈의 국적을 취득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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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두율 칼럼 코로나와 우크라이나 세계는 지금 불안과 공포 그리고 무력감에 젖어 있다. 2년 넘게 지구촌의 구석구석을 헤집고 다니면서 근 600만의 목숨을 앗아간 코로나 바이러스의 위세는 여전히 꺾이지 않고 있다. 게다가 2월24일 새벽에 전격적으로 감행한 우크라이나에 대한 러시아의 침공은 지구촌의 운명이 앞으로 어디로 끌려 갈지 속단할 수 없게 한다. 코로나 바이러스와의 전쟁은 우선 인간이 지금까지 경험해 보지 못한 미시세계와의 힘든 싸움이지만, 그래도 과학의 힘을 빌린 예방과 치료를 통해서 점차 해결의 실마리는 보이고 있다. 이에 비하면 전쟁을 억제하는 평화체제의 구축은 인간이 함께 노력하면 충분히 가능하다는 신념이 일찍부터 있었다. 그럼에도 크고 작은 전쟁은 세계 곳곳에서 끝이지 않고 있으며, 유럽 대륙에서 다시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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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두율 칼럼 대선을 멀리서 지켜보며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대통령선거에 나의 귀중한 한 표를 행사했던 때는 박정희와 윤보선이 출마했던 1963년 10월의 5대 대통령선거였다. 당시 나는 혁명 주체세력으로서 ‘국가재건최고회의’ 최고위원의 한 사람이던 예비역 장성의 처남 가정교사를 했다. 그는 선거전에서 박정희 후보의 남로당 전력을 문제 삼아 총공세를 폈던 윤보선 후보를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나에게 물었던 것이 기억에 남는다. 근소한 표차로 결국 박 후보가 승리했다. 대선과 관련해서 가장 어이없고 실망스럽던 경험은 너무나 많은 희생을 치르고 쟁취한 1987년 말 직접선거로 치러진 대선에 김영삼과 김대중이 함께 뛰어들면서 노태우가 당선된 일이다. 무슨 셈법으로 김영삼과 김대중이 후보 단일화를 끝까지 거부하고 고집을 부렸는지 지금도 나에게는 수수께끼다. 김영삼 후보로 우선 단일화하고 차기에 김대중 후보가 나서면 민주화의 기틀이 더욱 공고하게 될 것이라고 나는 당시 확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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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두율 칼럼 동병상련의 세계 2년 넘게 사는 이곳 포르투갈의 해변휴양지에서 가깝게 지내는 젊은 부부가 있다. 남편은 프랑스, 부인은 이탈리아 출신이다. 런던에서 전도유망한 금융인의 길을 걷다가 스트레스 심한 대도시 생활을 청산하고 이곳에서 호텔을 운영하고 있다. 연말에 양가 부모가 사는 프랑스의 낭시와 이탈리아의 밀라노를 다녀오겠다고, 우리 내외를 할아버지와 할머니라고 부르는 아들과 함께 우리 집을 다녀갔다. 떠나고 일주일도 지나지 않았는데 낭시에서 급한 연락이 왔다. 부인이 코로나19 변이 바이러스 오미크론 테스트에서 양성 반응이 나와 격리에 들어간 것이다. 출발 하루 전에 우리를 만났기 때문에 우리도 빨리 코로나 테스트를 해보라는 내용이었다. 테스트 결과는 다행히 음성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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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두율 칼럼 대통령 자질론 반세기도 훨씬 넘긴 이야기다. 서독 유학길에 들렀던 도쿄에서 처음 만난 외할머니는 나를 이끌고 절을 찾았다. 먼 외국 땅에서 유학 생활을 시작할 외손자의 안녕과 성공 그리고 금의환향을 빌기 위해서였다. 주지 스님은 장도의 행운을 빈다면서 떠나는 나에게 ‘오마모리’라고 불리는 부적을 건넸다. 이 부적은 그 후 몇 년간 내 곁에 있었지만 이사하는 도중에 분실되었다. 이것이 내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지닌 부적이었다. 학위는 빨리 받았지만, 그 이후 금의환향은 이루지 못했으니 부적의 힘도 그저 그렇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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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두율 칼럼 공론(公論) 또는 공론(空論) 선거철이 아니더라도 이른바 ‘일요일 질문’이 거의 정기적으로 전화선을 타고 종종 내게도 온다. 독일에서는 선거가 항상 일요일에 있기에 ‘이번 일요일에 선거가 있다면 어느 당에 투표하느냐’라는 한결같은 내용이다. 그러나 선거와 관련된 여론조사가 예견한 결과와 너무 동떨어진 사례가 자주 발생하기에 여론조사를 도대체 믿을 수 있는지를 두고 벌어지는 논란은 여전하다. 물론 모든 여론조사가 그렇다는 식으로 싸잡아 비난할 수 없을 정도로 실제 결과에 아주 근사한 사례도 있다. 앙겔라 메르켈 여성 총리의 16년간에 걸친 장기집권을 마감하고 처음으로 사회민주당·녹색당·자민당으로 구성되는 연방정부가 출발할 수 있게 하는, 지난 9월26일 있었던 의회선거의 결과는 많은 여론조사의 그것과 별 차이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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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두율 칼럼 땅과 바다 이야기 며칠 전 남북연극교류위원회가 주관하는 ‘동에서 서로 남북을 걷다’라는 행사에 맞추어 나의 영상강연이 있었다. 비무장지대를 통과하는 남북종단은 불가능하기에 한반도의 허리를 동서로만 횡단할 수밖에 없는 가슴 아픈 현실을 다시 보았다. 마치 동물원의 우리에 갇힌 호랑이가 온종일 철책을 따라서 왔다 갔다 하는 모습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내가 2년 전부터 이주해서 살고 있는 포르투갈에서 기차를 이용해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직선거리는 1만여㎞지만 주행거리는 약 14만㎞로 2주 정도 걸려 중국과 한반도의 접경 지점까지는 별 어려움 없이 갈 수 있다. 그러나 한반도를 종단하기 위해서 통과해야 하는 마지막 노정을 폭 4㎞의 비무장지대가 막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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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두율 칼럼 아프가니스탄 바로 보기 지난 8월15일 탈레반이 20년 만에 다시 아프가니스탄 수도 카불에 입성하였다. 미국 대사관 직원의 긴급한 탈출을 돕기 위해 대사관 건물 위에 떠있는 미군 헬리콥터의 사진은 1975년 4월30일 미군 헬리콥터가 베트콩에 의해서 함락된 사이공에서 미 대사관 직원과 조력자를 급하게 실어나르는 장면을 곧 연상시켰다. 20년에 걸친 미국의 베트남전쟁에 이어 20년을 끌었던 아프가니스탄전쟁이 일단 막을 내리는 순간이었다. 아프가니스탄에서 불명예스러운 퇴각이 베트남에서의 악몽보다 미국에 더 곤혹스러운 것은 아프간 사회의 내부 무장세력인 탈레반과의 싸움에서 패배했다는 점이다. 이에 반하여 베트남전쟁은 애초부터 동서진영 간의 갈등을 내포한 국제전의 성격을 띠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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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두율 칼럼 배신의 풍경 대선을 앞둔 정국 때문인지 여야를 막론하고 후보의 과거 행적과 오늘의 행동거지를 둘러싼 설전이나 비방이 거칠어지는 것 같다. 집권당의 후보를 두고 과거 노무현 대통령의 탄핵에 가담했다는 비난이나, 야권의 후보를 두고 불과 얼마 전까지 현 정부의 고위관직을 지낸 경력을 문제로 삼아 심심치 않게 배신이라는 단어가 등장한다. 한마디로 신의를 쉽게 저버리는 사람이 어떻게 대통령이 될 수 있겠느냐는 윤리적인 전제를 깔고 있다. 배신은 누구나 경험할 수 있는 인간적인 행위임에도 불구하고 이에 대한 평가는 매우 혹독하다. 예수의 열두 제자 가운데 하나인 유다는 은전 30냥에 예수를 배반, 십자가에 못 박히게 했다는 배신의 화신이다. 단테의 <신곡> ‘지옥편’에서 하늘나라의 왕인 예수를 배신한 유다와 함께 지상의 제왕인 카이사르를 암살한 부르투스와 롱기누스는 지옥의 가장 깊은 곳에서 얼음 속에 고통스럽게 갇혀 있는 것으로 묘사되고 있다. 배신의 대가가 그만큼 무섭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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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두율 칼럼 세대 문제에 대한 단상 최근에 ‘이대남’이니 ‘이대녀’라는 신조어가 자주 등장한다. ‘386’이나 ‘586’으로 지칭되는 세대 문제와 관련된 조어가 등장한 지는 제법 오래되었다. 새로 등장한 이 조어가 남녀를 구분해 사용된다는 점에서는 과거와 다르다. 최근 한국 사회의 정치사회적 변화와 밀접한 연관 속에서 사용되고 있다는 것은 쉽게 감지할 수 있다. 일상적으로 자주 언급되는 ‘세대교체’처럼 세대는 우선 사회적 변화와 직접적으로 연결된 생물학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 사회 문제의 핵심으로 일찍부터 등장한 계급이나 계층 문제보다 세대 문제는 성(젠더) 문제와 함께 비교적 뒤늦게 학문적 연구 대상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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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두율 칼럼 언론과 검찰 반세기도 훨씬 넘은 이야기다. 대학을 졸업하고 제대로 된 직장을 구하기가 힘든 시절이었다. 인문계 학부를 졸업하고 취직할 수 있는 직종 가운데 신문기자는 그래서 단연 인기가 높았다. 당시에 ‘언론고시’라는 말은 없었으나 주요 일간지 기자 채용시험은 경쟁률이 높았다. ‘고등고시’ 또는 ‘사법시험’이라고 불렸던 법조계의 등용문을 통과하는 일은 하늘의 별 따기처럼 아주 어려운 시절이었다. 1972년 ‘10월유신’이 선포되면서부터 언론통제가 노골화되자 1974년 10월 동아일보의 일부 기자들이 ‘자유언론실천선언’을 발표했다. 이것이 빌미가 되어 12월 말부터 광고가 무더기로 해약되었고 이에 겁먹은 신문 경영진이 유신정권의 요구에 굴복하여 1975년 3월, 사내에서 농성 중이던 130여명의 기자와 사원들을 내쫓은 사건이 발생했다. 조선일보에서도 비슷한 사태가 일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