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병상련의 세계

[송두율 칼럼]동병상련의 세계

2년 넘게 사는 이곳 포르투갈의 해변휴양지에서 가깝게 지내는 젊은 부부가 있다. 남편은 프랑스, 부인은 이탈리아 출신이다. 런던에서 전도유망한 금융인의 길을 걷다가 스트레스 심한 대도시 생활을 청산하고 이곳에서 호텔을 운영하고 있다. 연말에 양가 부모가 사는 프랑스의 낭시와 이탈리아의 밀라노를 다녀오겠다고, 우리 내외를 할아버지와 할머니라고 부르는 아들과 함께 우리 집을 다녀갔다.

송두율 전 독일 뮌스터대 사회학 교수

송두율 전 독일 뮌스터대 사회학 교수

떠나고 일주일도 지나지 않았는데 낭시에서 급한 연락이 왔다. 부인이 코로나19 변이 바이러스 오미크론 테스트에서 양성 반응이 나와 격리에 들어간 것이다. 출발 하루 전에 우리를 만났기 때문에 우리도 빨리 코로나 테스트를 해보라는 내용이었다. 테스트 결과는 다행히 음성이었다.

올해 1월 포르투갈은 유럽에서 코로나 상황이 가장 심각한 나라 가운데 하나였다. 구급차의 사이렌 소리와 나돌아다니지 말고 집에 있으라는 순찰차의 경고방송은 봉쇄로 죽은 듯이 음산한 거리의 정적을 갈랐다.

백신이 언제 우리가 사는 이 해변 마을에까지 차례가 올지 모르는 상황이기 때문에 늘 긴장 속에서 시간을 보냈다. 5월 중순에 드디어 두 차례 백신 접종을 끝내고 11월 말에는 부스터 접종까지 마치고 나니 코로나로 말미암은 오랜 불안으로부터 우선 해방되었다.

한국의 의료수준은 세계적이나
공공의료 수준은 매우 낮아 우려
오미크론은 인류의 공생 일깨워
나뉨이 아닌 동병상련의 공간서
공생의 인간숙명 음미할 필요

코로나 위기가 유럽에서 가장 심각했던 포르투갈은 현재 전 인구의 90%가 코로나 백신 접종을 마쳐 유럽에서 접종률이 가장 높은 나라가 되었다. 보건체제가 일원화되어 모든 보건행정이 중앙정부의 통제 아래 수행되는 포르투갈에서 차질 없는 백신 접종을 진행하는 데 무엇보다 군대의 역할이 컸다.

다른 나라에서도 코로나 사태와 관련, 군의 병참기지가 일정 정도 지원에 나서지만, 포르투갈에서는 아예 군이 보건행정 조직이 원활히 움직일 수 있도록 나섰다. 지난 9월 말, 전투복 차림으로 “우리는 전투에서는 일단 이겼다. 그러나 코로나 바이러스와의 전쟁에서도 그럴는지는 아직 모른다. 이것은 세계대전이다”라고 한 책임자 엔리크 구베이아 에 멜로 해군소장의 기자회견은 아주 인상적이었다.

그의 말처럼 전쟁은 끝나지 않았다. 또 언제 끝날지 지금 누구도 확답할 수 없다. 코로나 백신만 나오면 모든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는 기대도 너무 성급했다. 돌파감염은 물론, 부스터 접종을 받았지만 사망에 이르는 경우까지 생겼다. 현재 상황이 비록 그렇지만 그래도 백신에 의존하고 이미 알려진 예방수칙을 철저히 지키는 수밖에 다른 해결책이 없다는 것이 전문가의 일치된 견해다.

봉쇄나 백신 접종 의무화와 같은 조치는 코로나 위기를 핑계 삼아 국가가 개인의 자유를 억압한다는 비판과 함께 심한 저항도 있다. 이 문제와 관련해 포르투갈은 다른 모습을 보인다. 코로나 방역으로 사회적 통제와 더불어 심지어 군대까지 투입된 상황이지만 이에 대한 별다른 저항이 없다.

이의 주된 원인을 두 가지 관점에서 볼 수 있다. 먼저 국가에 대한 신뢰 문제다. 코로나 사태 이전에 자국 정치체제에 대한 신뢰도에서 포르투갈은 유럽연합 국가 중 프랑스와 더불어 중위권에 속했다. 상위권엔 스웨덴, 노르웨이, 핀란드, 덴마크, 독일, 스위스 그리고 하위권에는 그리스, 이탈리아, 스페인, 헝가리가 속했다.

2008년 시작된 재정위기 속에서 포르투갈은 이른바 ‘트로이카’로 불리는 유럽중앙은행, 국제통화기금 그리고 유럽집행위원회가 제시한 재정지원의 엄격한 조건을 감수하면서 2014년부터 위기에서 빠져나왔다. 유럽연합 내 총생산의 4분의 1을 차지해 사실상 이의 맹주라고 볼 수 있는 독일과 심한 갈등을 빚은 그리스나 이탈리아와 달랐다. 그러나 당시의 쓰라린 경험은 많은 포르투갈인에게 코로나 때문에 다시 경제위기에 빠져서는 안 된다는 경각심과 함께 그들의 국가와의 일체감을 높였다.

또 군대가 방역체제 전면에 나선 것에 오히려 시민이 안도감 속에서 방역에 적극 협력하는 배경에는 1974년 4월25일의 ‘카네이션 혁명’에 대한 기억이 있다. 36년 동안이나 철권을 휘둘렀던 살라자르 독재정권을 무너뜨린 좌익 청년 장교단은 2년 만에 민주적 선거를 통해 제3공화국을 탄생시켰다.

시민이 국가가 세운 방역정책을 신뢰하고 이에 자발적으로 협조하는 분위기지만 전파력이 강한 오미크론이 이제 주종을 이루는 유럽에서 포르투갈도 예외로 남을 수 없게 되었다. 1년 만에 다시 포르투갈의 상황은 반전, 이번 연말과 새해를 맞아 일상생활에 심한 통제가 시작되었고 4차 접종까지도 논의되는 상황이 되었다.

이렇게 높은 백신 접종률을 보이지만 오미크론의 확산 탓에 코로나 방역이 안정적으로 관리되지 못하고 있는 이유는 무엇보다도 포르투갈의 경제구조에 있다. 국내총생산의 10~15%가 관광산업이기에 국경을 쉽게 봉쇄할 수 없기 때문이다. 유럽대륙에서 일조량이 가장 많은 포르투갈 남부지방 해변을 영국인이 특히 많이 찾는다. 이것이 화근이었다.

이곳 포르투갈에서도 종종 한국의 코로나 사태 현황과 방역에 대한 뉴스가 보인다. 방역을 모범적으로 잘했고 백신 접종률도 상당히 높은 수준이나 최근 들어 코로나 감염환자가 급속히 증가한다는 내용이다. 문화와 역사적 배경이 다르고 경제와 사회적 구조도 다른 두 나라의 코로나 방역체계를 단순비교하는 것은 무리다.

전체적 조망을 위해 몇 가지 비교지표를 보자면 면적에선 남한과 거의 비슷한 포르투갈 인구는 서울시와 비슷한 1000만 정도로 남한의 5분의 1에 지나지 않는다. 2020년 국내총생산이 세계 10위인 한국에 비해 포르투갈은 48위다. 1인당 국민소득이 한국은 3만1846달러로 세계 30위, 포르투갈은 2만3132달러로 43위다.

포르투갈은 ‘사우드’라 불리는 공공의료제도를 이미 1970년대 말에 수립해 모든 국민은 물론, 이주민들도 거의 무상으로 의료혜택을 누릴 수 있다. 이미 언급된 재정위기 탓에 그의 서비스 질도 나빠져 일정 정도 의료 부문의 민영화를 피할 수 없었다. 현재 포르투갈의 공공의료 수준은 비록 북유럽 국가나 스위스의 그것에는 못 미치지만 그래도 만족스러운 상태로 평가되고 있다. 쾌적한 기후조건도 있지만 이런 이유로 포르투갈은 얼마 전부터 유럽에서 은퇴 후 삶을 누리는 데 조건이 가장 좋은 나라로 부상했다.

코로나 방역은 모든 나라에서 공공의료제도의 현주소를 가늠하는 척도가 되었다. 올해 초 포르투갈은 걷잡을 수 없이 악화 일로를 걸으며 공공의료시설과 병상이 부족해 일부 사립병원을 강제로 접수, 환자를 수용토록 했으며 독일 연방군의 의료지원을 받기까지 했다.

서울아산병원이나 삼성서울병원이 상징하는 한국의 의료 수준은 세계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에 걸맞지 않게 공공의료 부문은 상당히 취약하다. 공공의료가 주축을 이루는 포르투갈은 물론, 또 이의 비중이 비교적 낮은 미국과 일본에 비해서도 한국의 수준은 현저하게 낮다. 한국의 코로나 사정은 아직 심각하지 않지만 그렇다고 안심할 수 있는 환경도 아니다. 사립병원 위주 의료체계의 문제점과 함께 공공의료의 중요성에 더 깊은 관심을 돌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12월 초 포르투갈 정부는 약 600만회분의 코로나 백신을 포르투갈의 과거 식민지였던 앙골라, 모잠비크, 동티모르 등에 무상공여한다고 발표했다. 한국 정부도 우리 교포가 많이 거주하는 태국과 베트남, 그리고 핵 문제로 미국과 각을 세우는 이란에도 백신을 무상공여한다고 발표했다. ‘백신민족주의’라는 말까지 나오고 각자도생해야 하는 분위기 속에서 듣는 희소식이다.

모든 것이 연결되어 있는 이 지구촌에서 자기만 안전하게 살겠다고 겹겹이 울타리를 치고 칩거하는 삶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오미크론은 다시 일깨워준다.

현실은 물질적이거나 아니면 정신적인 것으로, 또 육체 아니면 영혼으로 나누어진 공간이 아니라는 포르투갈의 국민시인 페르난두 페수아(1888~1935)의 말도 동병상련의 공간에서 함께 살 수밖에 없는 인간의 숙명을 이야기하고 있다.

같은 병을 앓는 사람들이 서로 더 잘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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