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수의 딜레마 게임과 ‘대장동 게이트’

국제정치학에서 게임이론은 국가 간 전략적 사고와 행동을 분석하는 데 곧잘 차용된다. 상대 국가가 하나든 여럿이든 주어진 상황에서 자국에 가장 유리한 선택을 하려고 할 때 상대방이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를 미리 예상하고 대안을 마련하는 분석틀 중의 하나가 게임이론이다. 게임이론을 소개할 때 약방의 감초 격으로 등장하는 것이 ‘죄수의 딜레마’ 게임이다.

이병철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

이병철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

죄수의 딜레마 게임을 국민의 공분을 사고 있는 대장동 비리 사건에 적용할 경우, 대장동 사건에 가담한 일당 중 두 사람이 구속되어 있다고 가정한다. 검찰은 이들이 사전에 입을 맞출 것을 우려하여 이들을 분리한 후 각자에게 자신들의 협조 여하에 따라 발생할 수 있는 세 가지 상황에 대해 조건부 제안을 한다.

첫째, 두 사람 중 어느 한 사람(‘갑’)이 대장동 사건과 관련한 전모를 자백하면 그 사람을 곧바로 석방하고 여생을 편하게 보낼 수 있도록 약속한다. 하지만 대장동 사건의 ‘빅 픽처’(big picture)를 계속 부인하는 다른 용의자(‘을’)는 대장동 비리를 ‘독박’으로 뒤집어쓰고 무기징역에 처할 수 있음을 알려준다. 반대로 ‘을’이 자백하고 ‘갑’이 부인하는 경우 당연히 ‘을’만 석방되고, ‘갑’은 기약 없이 철장 신세를 진다. 둘째, 두 사람 모두 끝까지 전모 밝히기를 부인할 경우 두 사람은 다른 사소한 죄목으로 가볍게 처벌만 받는다. 셋째, 두 사람 모두 각자 전모를 자백하면 무기징역보다는 다소 낮은 징역살이를 한다.

죄수의 딜레마 게임은 양자(兩者)의 대칭적 심리전이기에 ‘갑’과 ‘을’ 모두가 가장 선호하는 (그러나 최종적으로 결정하지는 않을) 경우의 수는 자신은 검찰에 협조하여 (상대방이 독박을 써서) 석방되는 경로이다.

다음으로는 ‘갑’과 ‘을’ 모두 대장동 비리에 마치 약속이나 한 듯 모르쇠로 일관하여 다른 경미한 죄목으로 이내 출소되는 시나리오이며, 세 번째로는 ‘갑’과 ‘을’ 모두 대장동 부패 스캔들을 이실직고하여 (감형된) 죗값을 치르는 결말이다.

한 번만 죄수의 딜레마 게임을 한다고 했을 때 ‘갑’과 ‘을’이 선택하는 ‘균형점’(상대방이 선택을 했을 때, 자기 혼자만 선택을 바꿔 더 선호하는 결과를 얻을 수 없는 상태)으로 ‘갑’과 ‘을’ 모두 대장동 게이트의 전모를 이실직고해서 무기징역 아래 단계인 장기징역을 사는 결과치가 나온다. 이처럼 상대방이 어떻게 나오든 간에 협조(묵인)하는 것보다는 배반(이실직고)하는 전략이 항상 더 나은 이익을 가져다주기에 비협력적 죄수의 딜레마 게임에서 갑과 을은 애당초 ‘깐부’가 될 수 없다.

대장동 개발사업 비리의 추악한 얼개가 (이 글을 쓰는 현재까지는) 법조·정치권력과 담합한 극소수의 공모자들만이 천문학적 돈을 몽땅 쓸어가는 독식 구조였음이 차츰 드러나고 있다. 독버섯처럼 음지에서 교활하고, 위선적인 부패 카르텔이 공동체의 뿌리를 송두리째 갉아먹고 있었던 셈이다. 대장동 게이트는 오래전 장전되어 있었다.

그래서일까. 문재인 대통령은 정확히 2주 전 “대장동 사건에 대해 검찰과 경찰은 적극 협력해 신속하고 철저한 수사로 실체적 진실을 조속히 규명하는 데 총력을 기울여달라”고 말했다. 이보다 앞서 “엄중하게 생각하고 지켜보고 있다”고만 언급했었던 청와대가 묘한 시점에 결이 다소 다르게 느껴지기에 충분한 발언을 내놓았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퇴임을 앞둔 문 대통령이 게임을 시작했다, 학맥으로 얽힌 유력 정치인이 연루되어 있다는 등 여러 억측이 난무하고 있지만 좀 더 두고 볼 일이다. 광풍이 휘몰아칠 때는 뛰어갈 필요가 없다. 물에 빠진 시신은 떠오르게 되어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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