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틴은 ‘21세기 히틀러’이다

이병철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기 전까지 20년 기간을 전간기(戰間期)라 부른다. 당시 유럽의 지식인들은 전쟁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아야 한다는 각성에서 국제관계를 진단했다. 이때 나온 처방전이 ‘자유주의적 이상주의’였다. 처방전 속에 앵글로 색슨 중심의 집단안보체제인 국제연맹과 부전(不戰)을 선언한 ‘켈로그-브리앙 협정’이 들어 있었다.

이병철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

이병철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

1차 대전이 종료되고 미국 대공황이 발생하기 전까지 유럽에서는 화해와 평화 분위기가 지배적이었다. 심지어 패전국 독일이 국제연맹 상임이사국이 되는 일까지 벌어졌다. 독일이 패전국 법적 지위에서 탈피하는 순간이었다. 평화를 향한 각종 군축회의도 개최됐다. 그러나 이런 분위기는 서유럽에만 국한됐다.

전후 처리에 있어 가장 큰 피해를 입은 소련과 독일은 1926년 중립·불가침조약을 체결했다. 내용은 두 나라 중 한 나라가 3국의 공격을 받을 경우 다른 나라는 중립을 지키고, 두 나라 중 한 나라를 경제 보이콧의 대상으로 하는 어떤 동맹에도 가담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국제연맹이 어떤 사안에 만장일치를 하더라도 독일의 동의를 전제로 하지 않으면 이를 따르지 않겠다는 오만한 선언이었다.

1차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이탈리아에서는 1922년 10월 극우 파시스트 무솔리니 정권이 들어섰다. 무솔리니는 1926년 11월 알바니아를 자신의 영향권으로 편입하는 동맹조약을 체결하고, 이어 헝가리와도 제휴했다. 2차 세계대전의 전운이 유럽대륙을 뒤덮기 시작했다. 급기야 미국 월가에서 시작한 대공황은 국제정치 질서를 대혼란에 빠뜨리면서 히틀러의 등장을 격발하는 예광탄이 됐다.

대공황이 발발하자 패전국 독일의 경제는 더욱 피폐해져 독일 국민들의 좌절과 분노는 정점을 향해 치닫고 있었다. 히틀러의 나치당이 이들에게는 구세주로 비춰졌다. 중산층까지 가세했다. 영리한 히틀러는 ‘게르만주의’를 내세워 영토 확장의 명분을 쌓았다. 파죽지세, 광기의 서막이었다.

블라디미르 푸틴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유럽 전역으로 번지는 공포감은 전간기 혼돈과 흡사하다. 우선, 악화되는 세계경제 상황이다. 미국이 러시아에다 경제봉쇄에 준하는 조치들을 잇달아 내놓으면서 그 여파가 글로벌 경제를 뒤흔들고 있다. 전간기에 만들어져 쓰나미 효과를 본 경제제재가 오늘날 제재 레짐의 효시가 된 것이 우연은 아니다.

다음으로, 푸틴 역시 히틀러처럼 말과 행동을 일치시키려 한다. 히틀러가 전쟁의 명분을 쌓았듯이 푸틴 역시 우크라이나 침공의 정당성을 내세우면서 전선이 확대될 수 있음을 협박하고 있다. 나토 회원국 폴란드 국경선에서 불과 25㎞ 떨어진 우크라이나 서부지역에다 순항미사일을 발사했다. 우크라이나에 생화학무기 사용까지 거론되는 극한도발이다.

마지막으로, 대공황과 히틀러의 등장으로 온통 관심이 유럽으로 옮겨진 사이 일본이 만주 진출이라는 천재일우의 기회를 잡았듯이 중국은 이참에 대만 침공 시나리오를 구체화했을 것이다. 물론 이는 올 하반기 3연임을 확보하여 향후 최소 5년 더 집권할 시진핑에게 미국이 더는 유일 패권국이 아니라는 확신이 없이는 불가능한 시나리오이긴 하다.

핵무기가 없던 시절 이상주의자들이 만든 처방전은 히틀러의 도발로 휴지조각이 됐다. 이를 두고 E H 카는 <20년의 위기>에서 전간기의 이상주의자들을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보는 데 실패한 ‘유토피안’으로 깎아내렸다. 대표적 현실주의 정치학자 한스 모겐소는 나치의 악마성을 거론했다.

푸틴은 ‘21세기 히틀러’이다. 매몰비용 딜레마에 빠져 인류의 종말로 이어질 수 있는 핵무기 사용 카드까지 꺼내들었다. 남은 문제는 누가, 언제, 어떻게 푸틴의 광기 어린 도박을 멈추게 하느냐이다. 춘래불사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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