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희진
월간 오디오매거진 ‘정희진의 공부’ 편집장
최신기사
-
정희진의 낯선 사이 대화의 목적은 합의가 아니다 모든 문제에 대해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면,어떤 일도 진전이 없을 것이다특히 약자들의 생존 문제에 사회적 합의 강조는‘그들을’ 인정하지 않겠다는 추방의 선동이다대화가 생산적이기 위해선 합의가 아니라현실을 돌파할 수 있는 새로운 언어를 만들어야 한다 여성, 성소수자, 장애인을 흔히 “사회적 약자·소수자”라고 통칭하지만, 이들은 ‘국민’의 절반을 훨씬 넘는다. 이러한 사실은 소수자 개념이 만들어진 것임을 보여준다. 약자는 지배 집단의 필요에 의해 임의적으로 배제된 이들이다. 0.1%(?)의 사람들과 그들의 입장에 주체적으로 종속된 이들이 마치 다수인 것처럼 포장된 것이다. -
정희진의 낯선 사이 무기 수출국의 걱정? 남북관계에서 누가 위협받고 있는가.한국은 북한 국내총생산의 1.7배를 국방비에 쓰고 있다.이미 충분한 군사 강국이다 대기업 국제 경쟁력이반드시 방위 산업으로부터 가능한지,무기 수출 자체를 검토하는 사회적 여론 형성이 필요하다살상 무기 수출하면서도 우리에겐 피해가 없도록 해야 한다는논리가 다양한 ‘다른 목소리’로 전환되길 기대한다 -
정희진의 낯선 사이 1980년 광주, ‘그들’이 있었던 곳 광주 공동체에서는 모두가 똑같은 존재였다.그 공동체는 계급적 열망감으로 고통받았던 이들에게 지키고 싶었던 존재였다.상대방의 기존 신분을 모를 때 새 공동체의 평등이 가능하다.혁명은 ‘동지’를 모르는 상태에서만 가능하다.‘진정한’ 연대는 죽은 자와 산 자 사이에서만 가능하지 않을까.죽은 자와 대화를 위해 현재의 ‘성취’를 부정하는 상상력이 필요하다. -
정희진의 낯선 사이 성폭력, 빌 코즈비의 경우 성폭력 피해는 개별 여성의 몸에서 감각된다계량화나 법정에서 정확히 다루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그럼에도 지금처럼 가해 남성의 계급에 의해피해액이 정해지는 것은 성폭력을 성매매화하는 것이다사회적 논쟁이 불가피하지만, 논의를 시작하는 것에서부터문제 인식이 시작될 수 있을 것이다 성폭력 해결이 어려운 이유 중 하나는 가해자의 계급과 사회적 위치에 따라 피해의 성격과 피해자의 상황이 규정된다는 것이다. 특히 피해 배상금 문제는 성폭력 인식에 큰 영향을 미친다. -
정희진의 낯선 사이 ‘여성의 몸’에서 사람의 자아로 거식증을 겪는 이들은 무기력한 환자가 아니다. 주체적으로 먹지 않고, 몸을 통제할 수 있다고 믿는 경우다자기 뜻대로 되는 일이 없고 자신이 잠수함의 토끼처럼 느껴질 때, 유일하게 자신의 힘을 사용할 대상은 자기 몸뿐이다문제는 이러한 방식의 자기 통제는 자신에게 ‘해롭다’는 것이다. 나의 몸은 나의 것이 아니다. 몸이 바로 나다 -
정희진의 낯선 사이 ‘혐중’에 대처하는 ‘강한 객관성’ ‘강한 객관성’은 주체와 대상 간의 관계를 알고,충분히 인지하고, 의식하고, 쓰고, 연구하는 것이다.더 나아가 ‘강한 객관성’은 ‘강한 성찰성’을 동반하는데,자기가 하는 말의 의미를 끊임없이 되돌아보는 것이다.“중국개입, 선거부정”을 외치는 이들과 ‘우리’가 인식해야 할 것은,표현의 자유가 아니라 표현의 내용과 표현의 책임이다. -
정희진의 낯선 사이 교제 폭력, 남성 개인의 변화가 관건 올해 출간된 책 중에서 <헤어지다 죽은 여자들-가장 조용한 참사, 교제 폭력을 말하다>(경향신문 여성서사아카이브 플랫 지음, 동녘)는 저자들의 문제의식과 간절한 문체가 돋보이는 책이다. 여성 기자들이 쓴 이 집단 창작물은 여성으로서 정체성과 기자로서의 정체성이 잘 융합된, 글쓰기의 모델이다. ‘교제 폭력’은 그간 “데이트 폭력”으로 낭만화, 사소화되었던 폭력과 살인 사건을 재명명한 것이다. 교제 폭력은 일상화된 폭력이지만 분석이 쉽지 않다. 성폭력(rape)이 여성의 몸에 대한 남성의 해석과 폭력을 행사할 수 있는 남성의 권리 구조에서 발생한다면, 그리고 아내 폭력이 가정 내 성역할에 대한 성차별적 해석에서 발생한다면(남편은 아내의 ‘잘못을 손봄으로써’ 가정을 유지한다는 이데올로기), 교제 폭력은 성폭력과 아내 폭력의 특징이 교차하는 경우다. -
정희진의 낯선 사이 종묘 앞 고층 건물 발상의 서울 중심주의와 식민주의 서울 종로구 소재 종묘(宗廟) 앞에 145m가량의 건물을 짓겠다는 오세훈 서울시장의 계획과 이에 반대하는 논리는 ‘보존 대 개발’의 이분법일까. 보존과 개발의 의지가 대칭적이지 않다는 의미에서 두 가지 가치는 이미 한쪽으로 기울어져 있다. 이 논쟁에는 어떤 형태로든 ‘도시 재생’이라는 이름의 개발 논리가 전제되어 있기 때문이다. 한편 보존 논리를 주장하는 이들은 부분적 개발, 유네스코의 권고 수용, 절차적 민주주의, 종묘 주변 건물들의 재생 계획을 이야기한다(‘주간경향’ 1655호, 박송이 기자, “‘녹지축’ 포장하면 종묘 일대 개발 가능?” 기사 참조). -
정희진의 낯선 사이 여성주의의 ‘쓸모’ 경기 용인시 최초의 독립서점인 ‘책방 우주소년’을 방문했다. 이 서점은 용인시 동천동 주민들의 마을 만들기 중심 공간으로, 여러모로 감탄할 만한 훌륭한 공간이었다. 그러나 나의 감동은 같이 간 지인이 “왜 하필 ‘소년’이냐, ‘우주소녀’는 없나?”라고 지적하면서 작은 논쟁으로 이어졌다. 나는 페미니즘이 ‘소년’을 ‘소녀’로 대체하는 사유가 아니라고 말했다. 물론 남성 명사가 인간을 대표하는 것은 문제다. 그러나 내가 생각하는 페미니즘은 여성의 언어를 포함해 모든 명명(命名)은 누군가/무엇인가를 배제하는 현실에 대한 문제 제기다. -
정희진의 낯선 사이 소통이 안 되는 이유 독일의 신학자 게르하르트 로핑크의 책 <죽음이 마지막 말은 아니다>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나온다. “모든 사람에게는 비밀스러운 세계가 있다. 가장 아름다운 순간으로 빛나고, 가장 끔찍한 날로 상처 입은 그 세계는 다른 이들에게는 결코 열리지 않는다.” 소설가 박완서가 아들을 잃고 쓴 고통의 일기, <한 말씀만 하소서>에도 이 구절이 나온다. -
정희진의 낯선 사이 한국 남성의 성구매 문화 아직 인사청문회가 남았지만 원민경 여성가족부 장관 후보자는 이재명 정부의 국무위원 중에서 가장 잘된 인선이라고 생각한다. 특히 돋보이는 점은 차별금지법 제정에 대한 원 후보자의 지지 입장과 여성에 대한 폭력(gender based violence)과 관련한 활동 이력이다. 그중에서도 주목할 것은 반(反)성매매 운동 참여다. 원 후보자는 성산업 종사 여성들을 지원하는 여성운동 단체인 사단법인 막달레나공동체 이사(2006~2020)와 성매매방지중앙지원센터 모니터링위원회 위원(2015~2017), 성매매문제해결을위한전국연대 부설 보다상담소 운영위원장(2018~2023)을 지냈다. -
정희진의 낯선 사이 ‘강선우 사태’와 여성의 사회 진출 이재명 정부의 국정 지표는 ‘국민주권, 실용주의’다. 이번 정부가 잘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이 정책의 진정성과 절실함에 문제 제기할 생각은 없다. 윤석열 정권의 계엄과 내란 기도를 극복하고(국민주권), 진영 논리를 벗어나자(실용주의)는 현 정부의 철학은 상당히 설득력이 있다. 하지만 국민주권과 실용주의는 반드시 전제가 필요한 담론이다. 때문에 통치권자에게는 자승자박의 여지가 많은 언설이다. 국민주권이 실현되려면 국민의 범주에서 소외되거나 배제되는 이들이 없어야 한다. 주권은 모든 국민에게 예외 없이 적용되어야 한다. 현 정부가 차별금지법 제정에 대해 이전의 “(사회적 약자 문제는) 나중에” 논리에서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로 말바꿈을 하고 있는 지금 상황은, 국민주권의 원리와 정면충돌한다. 사회적 합의라는 명분으로 배제의 원칙을 분명히 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