접경 지역 50미터?

[정희진의 낯선 사이] 접경 지역 50미터?

지난 19일, 더불어민주당은 윤석열 대통령의 서울중앙지검장 재직 당시 업무 추진비를 문제 삼아 국민권익위원회에 조사를 요청했다. 민주당 ‘검찰독재정치탄압대책위원회’에 따르면, “윤 대통령과 고위 검사들이 2017년부터 2019년까지 경기 성남시 청계산 유원지에 있는 유명 한우집을 여섯 차례 방문해 943만원을 사용했다”는 것이다.

흥미로운 점은 당시 회식에 참가했던 한동훈 법무부 장관의 음식점 장소에 대한 개념이다. 한 장관은 한우집이 “서초구에서 50m 떨어진 접경 지역”이어서 “공직 수행 과정에서 사용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반면, 민주당은 “서울중앙지검 건물에서 객관적으로 10㎞ 떨어진 유원지”여서 “소고기 파티가 검사의 업무와 무관하다”고 주장했다. “공식 업무냐 소고기 파티”냐의 판단은 근무처와의 거리를 기준으로 한 것 같은데, 이 점에서는 양측 모두 어불성설이다. 온라인상에서도 같이 업무를 볼 수 있고, 외국에 나가서도 회의를 할 수 있다.

특히 행정 구역상 접경 지역을 논리로 내세운 한동훈 장관의 말은 궤변이다. 10㎞는 50m의 200배이다. ‘200배’는 이 이슈를 바라보는 관점의 차이를 극명하게 드러낸다.

육상 경기가 아닌 이상,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실제 거리인가라는 계산은 언제나 임의적이다. 행정 구역인 경우는 더욱 그렇다. 서울에서 부산까지의 거리를 의정부시와 “접경지대”인 서울시 북부 지역부터 부산시의 최남단 지역으로 계측하면, 경부고속도로 417.4㎞를 훨씬 넘을 것이다. 이런 예는 끝이 없다. 서울과 제주의 거리는 각각 중간 지점을 기준으로 하면 470㎞이지만, 서울의 도봉산과 제주의 마라도 사이로 측정하면 더 멀 것이다. 가파도나 마라도는 제주도(濟州道)다. 실측해보면, 제주도는 (서울이 한반도를 대표하는 지역은 아니지만) 서울과의 거리보다 중국 대륙과 가깝다.

이처럼 공간은 문맥에 따라 만들어지는 개념이다. 업무 추진과 고급 한우 식사의 연관성은, 객관적인 거리의 멀고 가까움이 아니라 그 거리 차이를 누가 어떤 방식으로 규정하느냐에 달려 있다.

세계 2차 대전이 끝난 후 폴란드가 독일로부터 해방되고 국경이 조정되기 시작할 무렵, 연합군의 일원이었던 구소련의 관리가 폴란드 농민을 찾아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이제부터 당신 집은 러시아가 아니라 폴란드 영토입니다.” 그 폴란드인은 크게 기뻐했다. “아, 이제 그 지긋지긋한 추위를 피할 수 있게 되었군요!” 집터의 국적이 바뀐다고 날씨가 달라지지는 않겠지만 러시아 대륙의 얼음 땅 이미지가 그런 발언을 가능케 했을 것이다.

김포시의 서울시 편입 논란을 필두로 한, 수도권 도시들의 편입 이슈는 서울의 본질을 묻는 사건이다. 서울은 행정 구역을 넘어 일종의 ‘특별한’ 상징이다. 서울로 편입된다고 해서 객관적 거리가 축소되지 않는다. 서울은 균질적이지 않다. 서울과 비서울보다 서울 내부의 차이가 큰 경우도 많다. 서울의 25개구 중 중구나 종로구 등 내륙 지역(?) 외에는 대개 경기도와 접경을 이루거나 경기도와 가깝다.

30평형대 아파트가 3억원대인 곳도 있고, 그 10배, 20배가 넘는 곳도 있다. 거대 도시는 분업을 이룬다. ‘여의도’ ‘강남’ ‘서초동’이 서울이라는 인식은 착각이다. 행정 구역상 서울이라 해도 삶의 양상이 모두 ‘서울적’이지는 않다.

차별을 만들기 위한 차이

차이는 현대 인문학의 키워드다. ‘차이가 차별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언설은 무의미하다. 인종, 젠더, 지역 등 모든 차이는 차별을 위해 발명된 범주이기 때문이다. 차별을 주장, 정당화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차이가 필요하다. ‘원래부터의 차이’는 존재하지 않는다. 자명한 차이는 없다. 모든 차이는 특정 집단의 이해를 위해 발명된 것이다.

인종과 젠더는 대표적으로 만들어진 차이다. 어느 흑인 소녀가 쓴 시는 이를 잘 표현하고 있다. “태어날 때 내 피부는 검은색/ 자라서도 검은색/ 태양 아래 있어도 검은색/ 무서울 때도 검은색/ 아플 때도 검은색/ 죽을 때도 나는 여전히 검은색이죠/ 그런데 백인들은 태어날 때는 분홍색/ 자라서는 흰색/ 태양 아래 있으면 빨간색/ 추우면 파란색/ 무서울 때는 노란색/ 아플 때는 녹색이 되었다가/ 또 죽을 때는 회색으로 변하잖아요/ 그런데 백인 당신들은 왜 나를 유색인종이라 하나요?”

차별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차이에 대한 개인적 판단들 즉 관용과 배려를 강조하기보다, 누구의 관점에서 차이가 말해지는가에 대한 분석과 실천이 중요하다. 차이와 차별을 구분하는 것 자체가 차별을 봉인하는 행위다. 차이는 단순한 다름이 아니라 근본적으로 구별 짓기(distinction)이기 때문이다.

차이를 만들어내는 권력처럼 본질적이고 무서운 권력도 없다. 차이의 내용과 기준이 룰로서 제시되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한국사회에서 검사는 독특한 직업이다. 검사의 기소와 불기소를 판정하는 업무가, 개인과 집단의 인생을 좌우할 수 있는 차이를 만드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그야말로 ‘하지 못할 일이 어디에도 없다’는 뜻의 무소불위(無所不爲)의 힘이다. 그런 권력의 존재 자체가 문제인데, 여기에 합법적 공권력의 프레임까지 동원하고 있으므로 검사들이 어느 편에 설 것인가는 국민의 삶과 직결되어 있다.

사실 페미니즘이 예전부터 제기했던 내용이지만, 조르지오 아감벤의 <호모 사케르>가 호소력을 가졌던 이유는 ‘벌거벗은 생명’의 존재라기보다는 글로벌 자본주의 시대 경계의 임의성을 정확히 지적했기 때문이다.

이전의 권력이 경계 설정 자체였다면, 이후 세계는 경계를 규정하는 극소수의 자본가가 지배하는 자본주의 사회가 되었다. 대표적으로 일론 머스크를 보라. 억압적이나마 하나의 룰이 있을 때와 룰조차 없는 예측할 수 없는 권력은 피억압자의 상황 인식과 투쟁을 어렵게 한다.

검사, 차이를 만드는 권력

현재 대한민국의 시민권은 검사와 검사가 아닌 사람으로 구분한다 해도 과언이 아닌 듯하다. 검사 출신 한동훈 장관의 접경지대 발언은 일부 보도에서 언급하는 “해명”이 아니다. 그의 발언은 수사권 행사와 비슷한 습성일 수 있다. 원래 법치주의는 없다. 법치는 본디 인치이다. 사람이 하는 일을 대타자(The Other)인 법의 이름으로 합리화하는 것이다.

여섯 차례에 걸친 1000만원에 가까운 회식비가 그들에게 큰돈이 아닐 수도 있다. 술값도 포함되었을 것이다. 민주당을 포함, 남성 문화에서 하룻밤 술값이 몇백만원이라는 사실은 새로운 뉴스가 아니다. 야당의 문제 제기를 “접경으로 치면 50m”라고 합리화하는 대신, ‘야당은 안 그런가?’라는 물귀신 작전이 차라리 더 큰 설득력을 가질 수 있지 않았을까.

“접경 지역”이라니! 앞서 나는 “궤변(詭辯)”이라고 썼는데 한 장관의 말은 단지 궤변이라고 하기엔, 두려운 말이다. 국어사전에 의하면, 궤변의 의미는 다음과 같다. “상대편을 이론으로 이기기 위해 상대편의 사고를 혼란시키거나 감정을 격앙시켜 거짓을 참인 것처럼 꾸며대는 논법.”

검사는 범죄자를 처벌하는 사람인가, 범죄자를 만드는 사람인가. 한 명의 검사는 기소와 불기소를 결정하는 독립 기관이다. 검찰 권력의 성찰성이 중요한 이유는 그들이 차이를 결정하기 때문이다. 이런 권력에는 애초 책임감이 따를 수 없다. 검사는 국민을 억울한 피해로부터 보호해주는 법률 서비스 제공자이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보이스 피싱에서조차 검사를 사칭하는 사람들이 무수히 등장하고, ‘검찰 독재’라는 말이 널리 사용되고 있다.

약자의 주관성은 주관성에 그치지만, 권력자의 주관성은 객관성 심지어 국민의 세금으로 수행해야 할 임무로 인식된다. 이런 상황에서 법률 서비스는 국민 보호가 아니라 국민을 겁박하는 폭력이 된다.

요점은 공금이 쓰인 식당의 위치가 아니다. 10㎞든 50m든 수사에 불과하다. 검사 이미지를 대표하는 인물 한동훈 장관의 ‘50m 이론’은 우연이 아닌 듯하다. 그가 다른 정치인과 달리 비교적 즉답에 능한 이유는, ‘스마트한 우익’이어서가 아니라 언제나 자기 편의대로 즉 자신을 기준으로 말하는 데 거침이 없기 때문은 아닐까. 누구든 자기 우주 안에서 자기 논리는 완벽한 법이다. 이러한 현상이, 대체로 언변이 변변치 못한 한국 정치인들의 수준에서, 그를 그나마 ‘돋보이게’ 한 것은 아닐까.

정희진 월간 오디오매거진 <정희진의 공부> 편집장

정희진 월간 오디오매거진 <정희진의 공부>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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