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는 빨라야 할까

정희진 월간 오디오매거진 <정희진의 공부> 편집장
[정희진의 낯선 사이] 뉴스는 빨라야 할까

신문(新聞)에 대한 오랜 개념 중 하나는 ‘새로운 소식을 신속, 정확하게 널리 알리는’ 정기 간행물이다. 신문은 이미 아는 이야기, 즉 구문(舊聞)과 대비되는 속도의 매체라는 것이다. 지금은 사라진 호외(號外)도 그 연장선상에 있었다. “윤전기를 세웠다”는 표현이 긴급한 뉴스를 대신하던 시절 역시 비슷한 시기의 일이다. 이런 맥락 때문에 종이 신문과 인터넷 신문은 경쟁이 안 되고, 종이 신문은 사양 산업이라는 통념이 생겼다.

정말, 신문 산업의 미래는 신속성의 문제일까. 주지하다시피 현실이 모두 뉴스가 되지는 않는다. 무엇이 현실이고 사실인가 자체가 논쟁거리다. 뉴스에는 ‘가짜 뉴스 vs 진짜 뉴스’가 아니라 다른 차원의 두 종류가 있다. 뉴스로 선택받은 현실과 그러지 않은 현실이 그것이다. 이처럼 가시화된 현실과 드러나지 않은 현실을 중심으로 생각한다면, 신속성은 중요한 특성이 아니게 된다. 빠른 보도는 신문 발생 초기, 1883년 한성순보(漢城旬報) 시절부터 불과 몇십년 전까지의 이슈였다. 속도를 다투다 보면 팩트를 더 철저히 체크해야 한다는 식의 논리가 가능했다.

특정 세력에 의해 급한 뉴스로 선택된 현실은 예전에는 TV, 지금은 인터넷으로 전파된다. 인터넷은 간혹 사용자 집중으로 과부하가 걸리긴 해도 바로 회복된다. ‘누가 먼저 보도했는가’가 특종의 기준이었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 속도에서 인터넷이 승자가 된 듯하지만, 역설적으로 뉴스는 빠른 것이라는 속설을 변화시킨 인프라는, 인터넷의 등장이다. 인터넷이 속도를 무기로 신문의 정의를 ‘신속에서 콘텐츠로’ 바꾼 셈이다.

속도 조절이 콘텐츠

뉴스의 의미는 근본적으로 변했다. 요즘 신문의 개념을 신속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느린 속도와 빠른 속도가 있을 뿐이다. 이는 권력이 속도를 조절, 즉 어느 시점에 어떤 뉴스를 내보낼 것인가를 결정함으로써 사람들의 관심사와 콘텐츠를 조작(making)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이제 속도를 대신하여 콘텐츠는 온-오프를 가리지 않는 가장 중요한 기준이 되었다. ‘종합일간지’든 지역에 거점을 두고 있는 신문이든 인터넷 신문이든, 중요한 것은 무엇을 알게 되는가이지 결코 먼저 아는가가 아니다.

빠름은 수직적, 종적(縱的) 사고방식으로부터 나온다. 내용을 중심으로 생각하면, 읽을거리의 취향이나 질이 우선시된다. ‘정보의 바다’를 다 마실 수는 없다. 뉴스 생산자도 선택하지만, 수용자도 선택을 해야 한다. 읽을 만한 글, 재미있고 유익한 글을 생산하려면 시각의 전환이 필요하다. 신속과 새로움은 별개의 범주다. 신속하다고 해서 새로운 것이 아니다. 새로운 관점은 속도를 줄일 때 숙고 속에서 나오는 것일지도 모른다. 독자가 알고 싶은 것이 뉴스 그 자체일까, 뉴스에 대한 해석일까를 생각해보면 더욱 그렇다.

인터넷은 지식을 공유하는 연결망이 아니다. 특정한 현실을 솎아내고 취사(取捨)하여 가공한 그물로, 사회적 인식 수준을 드러내는 자화상 같은 것이다. 뉴스가 우리를 문명케 하는 것이 아니라 뉴스를 생산하는 상황이 우리 자신을 드러내는 지표가 된다. 뉴스는 전달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이다.

게다가 특정한 이해 집단이 만든 매체(메시지)를 온 국민이 일상적으로 손에 쥐고 있는 당대. 이처럼 위험한 자발적 파시즘도 없을 것이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발표한 ‘2022 스마트폰 과의존 실태 조사’ 결과에 따르면 고위험군과 잠재적 위험군을 포함한 과의존 수치는 23.6%이다. 실제보다 훨씬 축소된 수치로 보인다. 어느 대중교통 수단에서도, 어떤 모임에 가도 사람들은 시간, 장소, 상황과 무관하게 스마트폰을 보고 있다(“돌아왔다, 오프-라인…되찾았다, 온-전한 나”, 경향신문 10월28일자 참조).

대중성, 즉 많은 사람들이 일시적으로 한꺼번에 같은 행동을 하는 상황에서, 읽히는 뉴스는 짧고 익숙하면서도 자극적인 글들이다. 많은 전문가들이 지적하듯 인터넷 뉴스가 하향 평준화된 보편성을 추구한다면, 그런 뉴스는 누구에게, 왜 필요할까. OTT 서비스는 자본이 예술을 쥐락펴락하는 시대의 산물이다. 인터넷 뉴스 생산 과정도 마찬가지다. 이제 자본은 무조건 빠름이 아니라 그들이 원하는 시간에 뉴스를 내보낼 수 있다. 속도 조절은 매우 중요한 콘텐츠가 되었다.

배우 마약 혐의 뉴스와 정치

중요한 정치 뉴스가 대중문화예술인들의 사생활, 음주운전, 마약 관련 사건에 묻힌다는 얘기는 비단 이번 정부에서만의 일은 아니다. 여느 정권에나 있었다. 뉴스가 데이터로 축적되면서, 권력이 위기 상황 때 ‘모아둔 파일’을 꺼내는 일은 더욱 쉬워졌다. 팩트가 아니라 시기가 뉴스를 결정하는 시대가 본격화되었다. 더구나 한국처럼 중앙집권적 사회, 사람들의 시선이 한곳을 향하는 패권 사회에서는 뉴스도 패권적이 된다.

안민석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얼마 전 YTN 라디오에서 유명 연예인들의 마약 혐의 입건과 관련해 “정치는 타이밍의 예술이라고 하는데, 바보가 아니라면 누군가 의도하고 기획했을 수 있다”고 말했다. 이경 민주당 상근부대변인도 지난 21일 SNS에 “김건희씨와 고려대 최고위 과정 동기인 김승희 비서관 딸이 학폭 가해자로 전치 9주 상해를 입혔다”며 “사면 복권해 김태우를 강서구청장 선거에 내보낸 윤석열 대통령에게 책임을 묻고 있는데, 이런 기사가 유명 배우의 마약 의혹으로 덮여가고 있다”고 언급했다.

그렇다. 시민은 “바보가 아니다”. 그렇지만 본질적인 문제는 ‘덮기’가 사실이냐 아니냐가 아니다. 덮기 논란의 이전 상황이 더 중요하다. 하나의 기사가 전 매체에 도배되어 사람들의 관심사를 독점하는 때다. 뉴스들이 각각 부분적 현실을 반영하고, 수용자가 다양한 매체에 접속한다면 이런 논란은 불필요한 것이다. 연예인 관련 뉴스가 가진 가장 커다란 힘은, 그들을 타자화하는(활용하는) 문화와 동일한 매체(스마트폰)를 모두가 소유하고 있다는 점에 있다.

그런 면에서 인터넷 뉴스는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다. 빠르다고 간주될 뿐이다. 인간의 경험이 전부 재현되는 세상은 없다. 어떤 현실을 드러낼 것인가에 대한 뉴스 생산자-개인, 공동체, 권력-의 이해관계에 따른 선택이 있을 뿐이다. 그런 면에서 뉴스는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취재(‘발견’)한 것이 아니라 관점에 따른 관심사에 의해 ‘발명’되는 것이다.

통치 세력의 치부만 은폐되는 것이 아니다. 소외계층의 ‘어두운’ 이야기도 덮어지기 쉽다. 아니, 말 그대로 매장(埋藏)되기 쉽다. 10여년 전 모 신문사 기자로부터 인터뷰 제안이 있었다. 수차례 거절하다가 그의 ‘상록수 정신’에 감복, 만난 적이 있다. 그는 개인적으로 우연히 친족 성폭력, 특히 친부에 의한 자녀 성폭력 현실에 대해 알게 되었다고 한다. 너무 충격적이었는지, 내게 이런 일이 정말 많냐고 여러 번 물었다.

그의 조사와 연구는 방대하고 꼼꼼했다. 나중에 연락이 왔다. 베테랑 기자인 그가 쓴 가족 내 성폭력 기사가 삭제됐다는 것이다. 경영진의 이유는 단 하나, 기사가 “어둡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세상사는 어둡다. 어두운 현실은, 분노할 만한 현실과 결이 다르다. 어두운 현실을 직면하기 위해서는 고통을 감수할 용기가 필요하다. 그러니, 마음의 평화를 위해 신문을 보지 말아야 한다는 말이 생기는 것이다.

가짜 뉴스 논쟁은 팩트를 떠난 문제다. 가짜든 진짜든 수용자가 인식하면 그만이다. 가짜 뉴스는 객관성의 이면이자 산물로, 피할 수 없는 문제다. 현실과 언설은 일치하지 않기 때문이다.

요즘 시대에 뉴스를 늦게 혹은 빨리 알아봤자, 반나절 차이도 나지 않는다. 모든 사람이 똑같은 속도로 모든 뉴스를 알아야 하는 것도 아니다. 속도는 경쟁 요소가 아니다. 그런 의미에서 인터넷 뉴스가 종이 신문에 비해 월등한 경쟁력을 갖는 것도 아니다.

종이 신문이 새로운 매체에 밀렸다는 사고는 발전주의에서 나온 것이다. 시대는 언제나 전후(前後)가 혼재, 연결되어 있고 나중에 나온 것이 무조건 좋은 것도 아니다. 인터넷의 등장은 빠름이 아니라 콘텐츠의 시대를 열었다.

무엇이 중요한 기사인가? 유명 배우의 위법 혐의인가, 최상위 통치 세력의 불법과 부패인가. 콘텐츠 측면에서 후자를 덮을 이유는 충분하다.

정희진 월간 오디오매거진 <정희진의 공부> 편집장

정희진 월간 오디오매거진 <정희진의 공부>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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