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홍표
아주대 약학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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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표의 과학 한 귀퉁이 이이제이(以夷制夷) 범 잡는 담비란 속담이 있다. 호랑이는 먼발치로나마 본 적이 있지만 담비는 족제비 비슷한 동물이라고 짐작할 뿐이다. 잠시 찾아보니 놀랍게도 담비는 한반도 최상위 포식자라고 한다. 백두대간 험산 준령을 쩌렁쩌렁 호령하는 호랑이도 없고 마침 늑구도 잡혀 제집으로 돌아간 터에 콧날 매끈하고 몸집 자그마한 동물이 고라니의 개체 수를 조절한다니 담비의 사냥법이 자못 궁금하다. 방송국 제작진이 사냥하는 모습을 화면에 담으려 했지만 담비의 발자국을 번번이 놓치는 통에 실패한 듯 보인다. 범접할 수 없는 나무타기 실력에 종횡무진 숲을 뛰어다니는 날렵하고 작은 유선형 몸을 카메라가 도저히 따라잡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꿩의 뼈와 깃털이 발견된 곳에 남긴 발자국을 보고 서너 마리의 담비가 협동 작업을 했으리라 추측하고, 사냥감 상흔을 분석해 목 뒤에서 눈과 귀를 끈질기게 물고 늘어졌으리라 담비의 사냥 기예를 평가한다. 이렇게 어울려 약점을 급습하는 방식으로 그들은 지금도 어둠 속에서 멧돼지를 노린다. -
김홍표의 과학 한 귀퉁이 적혈구 산에 오르다 마실 물 구하기로 따지면 사막이나 바다나 어렵기는 매한가지다. 수상가옥이나 뗏목 위에 사는 까닭에 ‘바다 유목민’으로 불리는 인도네시아 바자우(Bajau)족은 육지나 섬으로 가서 물통에 물을 길어온다. 아버지가 지게 양쪽, 2개의 물통에 길어온 물로 밥하고 씻고 마셨던 내 어린 시절과 크게 다를 바 없는 생활이다. 그러나 바자우족은 바다에서 작살로 물고기를 잡고, 해삼을 채집하고, 산호를 모아 장신구를 만들어 파는 것을 생업으로 삼았다. -
김홍표의 과학 한 귀퉁이 겉보다 속이 먼저 늙는다 동물의 배설기관인 콩팥이 일하는 방식은 매우 특이하다. 세포를 뺀 혈액(혈장) 안의 물건을 모두 밖에다 내놓은 다음 소량의 쓰레기만 버리고 대다수 필요한 것을 죄다 다시 거둬들이기 때문이다. 콩팥이 왜 이런 폐기물 처리 방식을 진화시켰는지는 잘 모르지만 숫자로 보면 그 어처구니없음이 더욱 도드라진다. 인간은 하루에 혈장을 약 60번 여과한다. 혈장의 총량이 평균 3ℓ임을 떠올리자. 달리 표현하면 1분에 125㏄의 혈장을 하루로 치면 180ℓ 여과한다. 그 가운데 오줌으로 배설되는 양은 고작 1ℓ에 불과하다. 나머지는 콩팥에서 재흡수된다. -
김홍표의 과학 한 귀퉁이 말은 발톱으로 걷는다 쟁기나 괭이 같은 농기구를 쟁여놓던 광 뒤 흙담에 매달린, 원통형 대나무 어리 안 길게 놓인 횟대에는 닭 몇 마리가 졸고 있었다. 둥그런 횟대에 올라 두 다리로 완벽하게 균형을 잡고 선 닭을 어린 나는 늘 신기한 눈으로 바라보곤 했다. 나중에 군 훈련소에서 외줄타기를 하다 거꾸로 대롱대롱 매달리던 경험까지 떠올리면 조류의 균형 잡기는 그야말로 어마어마한 기예가 아닐 수 없다. -
김홍표의 과학 한 귀퉁이 웃음은 전신운동 살며시 미소 지을 때 우리는 얼굴 근육 15가지를 쓴다. 하지만 놀랍게도 파안대소(破顔大笑)할 때 동원하는 근육의 종류는 무려 231가지라고 한다. 손바닥을 치고 몸을 활짝 열어젖히며 웃는 모습을 떠올리면 여러 벌의 근육이 움직인다는 데 의심할 여지는 없겠지만 저 숫자의 크기는 자못 놀랍다. 해부학자들은 우리 몸이 약 650개의 근육으로 이루어졌다고 말한다. 그러니 맘껏 웃을 때 우리는 근육의 3분의 1을 쓰는 셈이다. -
김홍표의 과학 한 귀퉁이 턱 뭔가 골똘히 생각하거나 궁리할 때 흔히 우리가 쓰는 신체 기관은 턱이다. 오른쪽 손등으로 턱을 받치고 있는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을 떠올려보자. 닿을 듯 말 듯 두 손가락을 살포시 턱에 댄 반가사유상의 우아한 자태도 생각하는 인간의 자세를 드러내는 듯하다. 턱은 사유의 밈(meme)이다. 이때 턱(chin)은 생물학자가 위턱이나 아래턱을 지칭할 때의 턱(jaw)이 아니다. 양손 바쁠 때 가끔 반찬통을 눌러 잡거나 방향을 지시할 때 쓰는 턱은 어금니가 촘촘히 박힌 턱과 쓰임새가 사뭇 다른 것이다. -
김홍표의 과학 한 귀퉁이 아빠 힘내세요 “딱 세 살만 덜 먹었으면 저 젊은것들을 확 제꼈을 턴디.” 언젠가 가을 운동회날 1등 상 몫의 노트 세 권을 아깝게 놓친 어머니가 무심코 했던 말이다. 해마다 이맘때면 황토 먼지 자욱한 운동장, 향나무 아래 앉아 먹었던 붉지도 달지도 않은 우린감과 어머니 탄식이 생각난다. 아마 어머니는 여름방학 내내 아침마다 싸리 빗자루로 학교 운동장 쓸고 받았던 어린 아들의 노트 한 권을 떠올렸음이 분명했다. 그 어머니는 내 세포 하나하나에 미토콘드리아를 가득 남겼다. 세포 발전소라는 이름에 걸맞게 그 미토콘드리아는 수십년 지난 지금도 근육세포에서 맹활약하며 내 발걸음을 재촉한다. -
김홍표의 과학 한 귀퉁이 거위의 간 “내겐 꽃 시절이 없었어.” 김지하의 시 ‘무화과’에 나오는 한 구절이다. 술 취해 집으로 돌아가는 길목에서 비틀거리던 친구가 이렇게 말하자 바로 위로하는 장면이 나온다. “꽃 없이 바로 열매 맺는 게 그게 무화과 아닌가.” 사람을 위로하는 말로는 어떨지 모르지만 생물학적으로 위 구절은 틀렸다. 무화과(無花果)도 엄연히 꽃을 피우기 때문이다. 다만 눈에 보이지 않는 탓에 저런 이름이 붙었을 뿐이다. 다음 질문은 이것이다. 그렇다면 무화과의 꽃은 어디에 있을까? -
김홍표의 과학 한 귀퉁이 더위 먹다 덥다. 올 7월 평균 기온은 28.6도로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대략 10도 안팎인 일교차를 감안하면 한낮에 30도가 넘었다는 뜻이다. 온도가 올라가면 몸속 분자의 움직임이 빨라진다. 얼마나 빨라질까? 10도 증가할 때마다 화학 반응 속도는 약 2배 빨라진다. 이 사실을 밝혀낸 사람은 놀랍게도 생물학자가 아니라 천문학자였다. 미국 캘리포니아주 윌슨산에는 한때 세계에서 가장 큰 천체망원경을 갖춘 천문대가 있어서 당대의 천문학 연구를 이끌었다. 20세기 초반 할로 섀플리는 구름이 껴 하늘을 볼 수 없는 날이면 전망대 앞마당에 쪼그려 앉아 개미를 관찰했다. 그냥 구경만 한 게 아니라 기온과 개미가 움직이는 속도를 측정해 그래프를 그렸다. 기온이 10도 올라가면 개미는 2배 빠르게 쏘다녔다. 개미의 움직임은 외골격에 달라붙은 근육의 수축과 이완을 뜻하고, 에너지 통화 물질의 화학 반응이 이 과정을 주관한다. 같은 맥락에서 우리 몸 안의 분자도 온도 증가에 따라 빠르게 움직인다. 이를테면 아침나절보다 점심 때 물의 충돌 속도가 2배 빨라진다. 그러나 반응 속도가 똑같이 증가한다고 해도 겨울과 여름의 상황은 사뭇 다르다. 동짓날 아침 6도로 시작해 낮에 16도가 된 경우와 여름날 27도에서 37도로 올라간 경우, 분자의 충돌 빈도는 최대 8배까지 늘어난다. -
김홍표의 과학 한 귀퉁이 콩 심은 데 콩 난다 처음 땅콩을 본 것은 전북 부안의 외가에서다. 산등성이를 개간해 만든 초가지붕 높이의 밭은 안방 뒷문을 어둡게 막아섰다. 밭을 매던 할머니의 몸은 땅콩밭과 그야말로 하나가 되어 무색옷이 아니었다면 구분하기도 힘들 지경이었다. 서해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솔잎을 때려 파도 소리를 내고 노란 땅콩꽃은 할머니 어깨를 따라 시나브로 움직였다. 그렇게 할머니와 땅콩밭이 그려낸 정물화는 지금도 내 뇌리에 남아 있다. -
김홍표의 과학 한 귀퉁이 세균도 세상을 뜨는구나 지름 3㎝에 길이 6m인 관의 부피는 4000㎖가 넘는다. 이는 소장의 부피를 어림잡아 계산한 양이다. 생리학자들은 소장 안으로 하루 약 10ℓ의 액체가 들어온다고 말한다. 마신 물과 음식에 든 것 약 2ℓ에 소화효소나 침, 담즙의 양 약 8ℓ를 더한 값이다. 실로 어마어마한 양의 물이 매일 소장을 들락거리는 셈이다. 밥을 먹고 소화하는 동안에는 물과 으깬 음식물이 섞여서 우당탕 위와 소장을 지나가겠지만 잠을 자느라 먹지 못한 채 맞은 새벽에 소장에 든 물의 양은 얼마나 될까? -
김홍표의 과학 한 귀퉁이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다고? 아침마다 나는 500억개의 유산균이 든 요거트를 먹는다. 달고 맛도 좋다. 창밖으로 봄이 성큼 지나간다. 매화꽃이 피었나 싶더니 어느새 손톱만 한 열매가 초록 잎 뒤로 숨는다. 아마 살구와 앵두 열매도 모습을 드러냈을 것이다. 어린 과일이 여기저기서 열리고 땅으로는 봄나물이 빈 곳을 채우며 무성하지만, 슬쩍 데친 두릅나무 순처럼 과일과 나물의 봄맛은 쌉싸름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