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홍표
아주대 약학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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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표의 과학 한 귀퉁이 콩 심은 데 콩 난다 처음 땅콩을 본 것은 전북 부안의 외가에서다. 산등성이를 개간해 만든 초가지붕 높이의 밭은 안방 뒷문을 어둡게 막아섰다. 밭을 매던 할머니의 몸은 땅콩밭과 그야말로 하나가 되어 무색옷이 아니었다면 구분하기도 힘들 지경이었다. 서해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솔잎을 때려 파도 소리를 내고 노란 땅콩꽃은 할머니 어깨를 따라 시나브로 움직였다. 그렇게 할머니와 땅콩밭이 그려낸 정물화는 지금도 내 뇌리에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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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표의 과학 한 귀퉁이 세균도 세상을 뜨는구나 지름 3㎝에 길이 6m인 관의 부피는 4000㎖가 넘는다. 이는 소장의 부피를 어림잡아 계산한 양이다. 생리학자들은 소장 안으로 하루 약 10ℓ의 액체가 들어온다고 말한다. 마신 물과 음식에 든 것 약 2ℓ에 소화효소나 침, 담즙의 양 약 8ℓ를 더한 값이다. 실로 어마어마한 양의 물이 매일 소장을 들락거리는 셈이다. 밥을 먹고 소화하는 동안에는 물과 으깬 음식물이 섞여서 우당탕 위와 소장을 지나가겠지만 잠을 자느라 먹지 못한 채 맞은 새벽에 소장에 든 물의 양은 얼마나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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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표의 과학 한 귀퉁이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다고? 아침마다 나는 500억개의 유산균이 든 요거트를 먹는다. 달고 맛도 좋다. 창밖으로 봄이 성큼 지나간다. 매화꽃이 피었나 싶더니 어느새 손톱만 한 열매가 초록 잎 뒤로 숨는다. 아마 살구와 앵두 열매도 모습을 드러냈을 것이다. 어린 과일이 여기저기서 열리고 땅으로는 봄나물이 빈 곳을 채우며 무성하지만, 슬쩍 데친 두릅나무 순처럼 과일과 나물의 봄맛은 쌉싸름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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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표의 과학 한 귀퉁이 힐러몬스터의 굶기와 폭식 위고비의 탄생 “한국인 71세 일생 중 음식물 27t 먹는다.” 이 기사는 1994년 겨울 한 일간지에 실렸다. 약 30년 전의 세상을 살았던 평균 한국인은 하루 약 1㎏이 조금 넘는 양의 음식물을 먹었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는 하루 얼마만큼의 음식물을 먹으며 살아갈까? 2022년 보건산업진흥원 통계를 보면 약 1400g이다. 그 가운데 300g은 동물성 식품이 차지한다. 우리는 체중의 약 2%에 해당하는 음식물을 죽을 때까지 매일 먹는다. 그뿐만이 아니다. 우리는 자주 먹는다. 잘 때를 빼곤 꼬박 세 끼를 챙겨 먹는다. 한 끼 식사를 마치면 소화기관은 서둘러 그 음식물을 소화해 흡수한다. 그런 뒤 다음 끼니를 맞이한다. 우리 장은 깨어 있는 동안 부지런히 움직이며 자신의 업무를 소홀히 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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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표의 과학 한 귀퉁이 겨울, 잎을 떨구다 “위험해 그 위로 가지 마!” 뭍으로 올라간 자식을 따라 물가까지 쫓아온 어미 물고기가 소리치는 모습을 그린 한 컷짜리 만화는 현재 육지에 사는 모든 네발 동물의 조상이 물고기라는 사실을 바탕에 깔고 있지만 한편으로는 왜 물고기가 멀쩡한 물을 떠나 육지를 향했는지 그 이유를 여태 모른다는 인간의 무지를 비웃는다. 좀 심술궂게 따지면 이 만화의 작가가 사춘기를 지나는 말썽꾸러기 자식을 두고 있는 것은 아닌지 빙긋 미소가 지어지는 것도 어쩔 수 없다. 이제 질문을 틀어보자. 어미 물고기가 있던 곳은 민물일까, 바닷물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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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표의 과학 한 귀퉁이 천재와 생활의 달인 남 말 하기 좋아하는 호사가는 흔히 천재 꼽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이를테면 개화기 조선의 3대 천재는 춘원 이광수, 육당 최남선 그리고 벽초 홍명희다. 이들은 시와 소설을 쓰고 사회적 파급력도 컸지만, 막상 천재를 정의하기는 쉽지 않다. 세계적으로는 지능지수를 기준으로 괴테와 아인슈타인 그리고 다빈치를 꼽기도 한다. 과연 그렇구나, 고개가 끄덕여진다. 그러나 서양 위주의 평가라는 생각도 없지는 않다. 확실한 것은 이들의 부모나 자식은 천재 당사자보다 유명하지 않다는 사실이다. 괴테는?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쓰고 식물학과 해부학에도 관심이 컸지만 그의 아들이 뭘 했는지는 알지 못한다. 마찬가지로 이광수의 아버지가 무엇을 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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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표의 과학 한 귀퉁이 손등의 쓸모 어른의 뼈는 남녀 구분 없이 206개다. 한쪽 손에는 27개의 뼈가 있다. 잠시 손바닥을 펴보자. 엄지를 뺀 나머지 네 손가락에서 12개의 마디를 볼 수 있다. 각 마디가 하나의 뼈다. 여기에 엄지의 마디 2개를 합치면 손가락뼈는 모두 14개다. 손바닥에 든 손허리뼈는 5개로 각 손가락에 하나씩 배당된다. 팔과 연결되는 부위인 손목에는 8개의 뼈가 있다. 발에는 26개의 뼈가 들어 있다. 발목뼈가 하나 적기 때문이다. 두 손과 두 발을 다 합치면 106개로 전체 뼈의 절반이 넘는다.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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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표의 과학 한 귀퉁이 나무는 땀을 흘리지 않는다 아, 계수나무다. 길을 걷다 무심결에 혼잣말이 나왔다. 걸음을 멈춰서 보니 잎 가장자리가 톱니 모양인 벚나무 잎과 부드러운 심장 모양인 계수나무 잎이 떨어져 섞여 있다. 가을인가 보다. 그런데 계수나무 잎이 사뭇 창백하다. 광합성을 끝낸 식물은 대개 잎에 붉고 노란 색소를 머금은 채 한 해를 마감한다. 고개를 들어 본 나뭇잎은 단풍이 들어간다기보다 말라비틀어져 떨어질 순간을 기다리는 듯하다. 처연하다. 다들 지난여름 고생했다, 또 혼잣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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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표의 과학 한 귀퉁이 나는 네가 지난여름에 한 일을 알고 있다 세상에는 결코 선택할 수 없는 것이 있다. 그것은 의지와 상관없이 우리에게 주어진 삶의 조건이다. 이를테면 우리는 생물학적 부모를 선택할 수 없다. 그들과 관련된 몇 가지 사항도 그대로 내 것이 된다. 부모에게 물려받은 염색체 두 묶음, 사방이 온통 누런 논으로 둘러싸인 집도 고스란히 나를 규정하는 환경이 된다. 그곳이 한반도 남쪽의 어디라는 사실도 바뀌지 않는다. 태양계에서 유일하게 다세포 생명체가 활보하는 지구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지구를 선택하지 않았다. 그저 거기 살고 있을 뿐이다. 지구인 모두는 대기권에 둘러싸인 지구공동체의 일원이다. 예외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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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표의 과학 한 귀퉁이 밥 먹듯 운동하자 호젓한 산길에서 집채만 한 개를 만나면 우리 몸은 어떻게 반응할까. 도망칠 태세를 갖추거나 주변에 무기가 될 만한 뭐가 있는지 눈을 부라리며 찾아야 할 것이다. 이런 일은 급하게 처리해야 할 것이기에 교감신경계가 활성화되고 콩팥 위 부신에서 아드레날린이 분비될 것이다. 심장 박동이 빨라지면서 서둘러 근육에 혈액을 보내야 한다. 당장이라도 수축과 이완을 거듭할 근육에 산소와 에너지를 공급해야 하기 때문이다. 다음엔 당질 코르티솔이라는 호르몬이 분비된다. 스트레스 반응 체계를 가동해 유기체의 적응 능력이 향상되는 일은 인간을 포함한 여러 종류의 동물에서 일관되게 발견된다. 스트레스에 노출되고 30분쯤 뒤에 최고치에 도달한 호르몬 수치는 1시간 정도가 지나면 원래 상태로 돌아간다. 물론 스트레스 요인이 사라진 후에 그렇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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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표의 과학 한 귀퉁이 잠도 자고 살도 빼자 요즘처럼 밤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날에는 자주 잠에서 깬다. 침대 끝에 걸터앉아 멍하니 어둠을 응시할 때도 있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자고 일어나면 키가 더 커진다는 사실이다. 해부학 논문을 보면 침대에 들기 전보다 아침에 15㎜ 정도 더 크다. 우리 몸 중심인 척추가 중력을 덜 받아서 그럴 것이라 짐작하지만 사실 밤에 무방비로 누워서 자는 동물은 인간 말고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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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표의 과학 한 귀퉁이 저 바다의 기억 입담 좋은 저술가 빌 브라이슨은 책 <바디>에서 인간의 몸이 59개의 원소로 구성되어 있다고 말했다. 그중 수소와 산소, 탄소, 질소, 칼슘과 인 등 6가지가 전체 원소의 99%를 점유한다. 무게로만 따지면 산소가 60%를 넘는다. 자연계에서 가장 가벼운 축에 속하는 산소와 수소 기체가 만나 무거운 액체인 물을 만들고 그 물이 우리 몸의 60% 넘게 차지하기 때문에 숫자로만 따지면 수소가 압도적으로 많다. 미량 원소들도 적지 않다. 예컨대 수소가 3억7500만개라고 치면 철은 2680개, 코발트는 1개, 요오드는 14개 존재한다. 하지만 숫자가 적다고 해서 이들 미량 원소를 무시할 수는 없다. 실제 인간의 체중을 고려하면 요오드의 양은 약 20㎎에 이르고 수도 셀 수 없이 많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