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홍표 아주대 약학대학 교수
[김홍표의 과학 한 귀퉁이] 술 취한 장 미생물

망년회 대신 송년회라는 말이 대세다. 이름이야 어찌 됐든 그 자리에 술이 빠지는 일은 드물다. 술은 ‘위(胃)에서 천천히 흡수되고 소장에서 빠르게 흡수되어 몸 전체에 널리 분포하는’ 수용성 화합물이다. 생리학자들은 빈속에 농도가 20~30%인 술을 마실 때 알코올의 흡수가 가장 빠르다고 말한다. 술을 마시고 약 1시간 뒤면 혈중 알코올의 양이 최댓값에 이른다. 그다음에는 그 양이 일정하게 줄어든다. 간(肝)에서 알코올을 꾸준히 제거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혈액에서 전부 빠져나가기 전까지 알코올이 온몸에 퍼져 있다. 화학적으로 알코올은 물과 비슷하기에 수용성이 떨어지는 지방 조직에는 덜 쌓인다. 체중에 맞게 양을 조정하더라도 피하조직이 풍부한 여성은 상대적으로 혈액과 조직에 알코올 농도가 높을 수밖에 없다. 게다가 태반을 지나 태아에 영향을 끼칠 수 있는 탓에 여성은 술 마시는 일에 좀 더 신중해야 한다.

90%가 넘는 알코올은 간에서 대사된다. 나머지는 오줌이나 땀으로 배설되거나 날숨에 섞여 날아간다. 알코올을 처리하는 인간의 능력은 탁월하다. 1000만년 전 우리 조상이 이전 세대보다 40배나 성능 좋은 알코올 분해 돌연변이 효소를 진화시킨 덕택이다. 그러나 알코올을 분해하는 능력은 사람마다 다르다. 얼마나 자주, 많이 마시느냐에 따라서도 달라진다. 필요에 맞춰 알코올을 분해하는 효소의 양이 늘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곤 해도 술을 많이 마시면 당연히 간에 무리가 간다. 이를테면 위스키 반병에 든 알코올을 물과 이산화탄소로 분해하는 일은 아스피린 500g을 처리하는 만큼의 ‘대사’ 부담을 간에 떠넘기는 격이다. 머리 아프다고 약국에서 정제 1000개를 사서 한꺼번에 입에 털어 넣었다고 생각해보자.

대사 용량을 넘어서까지 간을 혹사하지 않으려면 위장관에서 흡수되는 알코올의 양을 줄이면 된다. 술을 천천히 마시거나 밥을 든든히 먹는 일도 좋다. 어른들께 늘 듣던 말이다. 이제 시선을 돌려 소화기관을 둘러보자. 위장에서 술이 더디게 흡수된다는 말은 곧 그곳에 머무르는 알코올 양이 늘어난다는 뜻이다. 위(胃)에는 헬리코박터가 살고 대장만큼 분주하진 않겠지만 소장에도 많은 수의 미생물이 살아간다. 환경이 허락할 때 미생물은 빠르게 그 수를 늘려 1시간이면 2배로 늘어난다. 위장에 알코올이 있으면 그곳에 자리한 미생물의 생애가 몽땅 알코올로 점철될 수 있는 것이다. 술을 자주 마시면 위장에 알코올이 오래 머물고 ‘주태백’ 미생물이 득세할 개연성이 커진다. 최근 생물학자들은 알코올을 영양분 삼아 증식하는 소장 미생물 집단을 찾아냈다. 장 미생물 분포가 정상과 달리 균형을 잃고 숙주인 인간에게 괜히 트집 잡는 상황이 벌어진다.

알코올을 남용하는 사람은 주변에 많지만 그들 모두가 간질환에 시달리지는 않는다. 알코올은 간질환의 필요조건이지만 그것만으로 충분치 않다고 생리학자들이 말하는 근거다. 뭔가 다른 요인이 있어야 한다. 머잖아 역학 연구자들은 환자 혈액에 장 미생물이 만든 내독소(endotoxin) 양이 늘어난 현상을 목격했다. 그들에게 항생제를 투여해 장 미생물을 제어하거나 항염증 활성이 큰 유산균을 이식해 혈중 내독소 양을 줄이자 간질환의 예후가 개선되었다. 확실히 알코올성 간질환 환자의 장 미생물 구성은 술을 마시지 않는 사람과 사뭇 다르다.

짐작하다시피 알코올은 위장에서 대부분 흡수된다. 대장에 도달하지 못한다는 뜻이다. 술을 마시는 동안 식이섬유를 멀리하거나 대장 미생물을 굶기면 설령 알코올이 몸에서 영양소로 쓰인다고 해도 그곳 상주 세균은 굶주리게 될 것이다. 굶주린 세균은 우리 대장 점막을 노략질한다. 아직 정확한 사정은 속속들이 모르지만 술을 자주 마시면 대장 미생물도 불균형 상태에 빠진다. 산소가 적은 시커먼 대장 속은 아직 인류에게 오리무중이다. 놀랍게도 그곳에는 탄수화물을 알코올로 바꾸는 미생물이 살아간다. 최근 본색을 드러낸 이 미생물이 만든 알코올도 간에서 대사된다. 알코올 생성 미생물이 잘 자라는 대장 환경을 갖춘 어떤 사람이 공교롭게 간 대사 효율이 떨어지면 술을 전혀 마시지 않아도 지방간이 생길 수 있다.

이래도 미생물, 저래도 미생물. 그들이 배후에 있다. 몸 안에서 알코올 주도권을 미생물이 쥐락펴락하는 것처럼 보인다. 아는 것만큼 알아야 할 것도 는다. 이젠 미생물의 주사(酒邪)마저 꼼꼼히 보살필 때가 되었다.

김홍표 아주대 약학대학 교수

김홍표 아주대 약학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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