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홍표 아주대 약학대학 교수
[김홍표의 과학 한 귀퉁이] 김치를 먹는 뜻은

촌수로는 멀지만 사는 곳은 지척이라 집에 자주 들렀던 형은 복성스럽게 밥 먹기로 소문이 났었다. 보리 섞인 고봉밥을 젓가락으로 꾹꾹 누른 다음 길게 자른 김치를 똬리 틀 듯 얹고 아삭 소리 나게 먹어치우는 모습을 구경 삼아 보던 어머니는 숭늉 한 그릇 슬며시 마루턱에 가져다 두곤 했다. 소비량은 줄었다지만 여전히 밥상 한 귀퉁이를 차지하는 김치에는 어떤 영양소가 들었을까?

농촌진흥청 자료를 보면 김치 주재료인 배추에는 단백질과 탄수화물 말고도 비타민과 무기 염류가 풍부하다. 햇볕 세례를 적게 받은 배춧속은 비타민A 함량이 높을수록 더 노란빛을 띤다. 그리고 우리 소화기관이 미처 처리하지 못하는 섬유가 배추 100g당 1g이 넘는다. 이 배추를 소금에 절여 물기를 쫙 빼면 그 비율은 더욱 커질 것이다.

사람의 몸 가운데를 지나는 소화기관은 길이가 8m를 넘는다. 밥과 고기처럼 우리 입에 찰싹 붙는 음식물의 소화와 흡수는 대개 소장에서 끝난다. 소장은 긴 데다 표면적은 왕청뜨게 넓어서 영양소 단 한 분자도 놓치지 않겠다는 해부학적 의지를 드러낸다. 탄수화물은 소장의 앞과 중간, 지방은 소장 끝에서 흡수된다. 옛말에 ‘이밥에 고깃국’은 과연 소장을 염두에 둔 속담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우리 소화기관에는 엄연히 대장도 있다. 길이 1.5m가량인 대장은 빛도 들지 않고 산소도 적은 험한 곳이지만 거기에도 생명체가 살아간다. 그것도 아주 많이.

한때 ‘10% 인간’이란 말이 유행했다. 당시 생리학자들이 우리 몸에 상주하는 미생물 숫자가 인간을 구성하는 세포의 10배가 넘으리라 추정해서 나온 말이다. 수에 천착함으로써 생물학을 새롭게 바라보려는 이스라엘 바이츠만 연구소, 론 밀로는 여러 논문을 자세히 분석한 뒤 인간 세포와 장 미생물 숫자가 얼추 비슷하다고 결론지었다. 그렇게 따져도 장 미생물의 무게는 0.2㎏이 넘는다. 2012년 미국 보건원 인간 미생물 프로젝트를 진행했던 과학자들은 건조한 미생물 무게가 0.3㎏이 넘는다고 보았다. 장에 사는 세균도 엄연한 생명체다. 이들도 먹어야 산다.

캘리포니아 대학 생물학과 테렌스 화는 소장을 지나 대장으로 들어오는 음식물 찌꺼기의 부피가 1.5ℓ에 이른다고 분석했다. 이를 둘러싼 저간의 사정을 좀 더 살펴보자. 끼니때마다 나오는 침과 위산, 췌장 소화액, 마시는 물을 전부 합치면 하루 10ℓ다. 혈액이 5ℓ라는 점을 참작하면 소화하는 데 상당한 양의 물이 필요하다는 점을 한눈에 알 수 있다. 이 물 대부분은 영양소와 함께 흡수되어 먼저 간을 통과한다. 서둘러 ‘입국 절차’를 밟아야 하기 때문이다.

이런 대차대조표를 따라 대장에 도달한 음식물 찌꺼기 중 똥으로 몸 밖을 나서는 양은 약 150㎖다. ‘쌀이 시신으로 변하기(똥)’ 전에 미생물은 앞다투어 대장 입구로 와 자신의 몫을 냉큼 챙겨야 한다. 그게 우리가 김치를 먹는 행위에 정당성을 부여한다. 현미처럼 가공을 덜 한 곡물이나 고구마, 쑥갓 같은 채소 혹은 제철 과일에 든 식이 섬유는 온통 미생물 차지다. 미생물이 배를 곯지 않아야 대장 점막이 무사하다. 당단백질로 구성된 탓에 점막 표면은 쉽게 미생물의 표적이 되기 때문이다. 본의는 아닐지라도 인간이 혹 소장만 귀히 여겨 달고 가루로 만든 음식물로만 배를 채운다면 대장 미생물은 언제든 분연히 일어설 것이다.

문제는 그것만이 아니다. 입으로 들어오는 신관에게 벼슬자리를 내주는 구관(舊官)은 홀로 행차를 꾸리지 않는다. 놀랍게도 똥을 따라 매일 몸 밖으로 나가는 장 미생물은 전체의 절반에 이른다. 이에 세균은 대장에 도달하는 음식물 찌끼에서 영양소를 얻어 절반이 성세를 회복해야 한다. 이들은 소장에서 소화가 덜된 저항성 전분이나 섬유를 발효하여 주로 짧은 사슬 지방산으로 바꾼다. 대장 벽에서 흡수되어 혈액 안으로 들어온 이들 지방산은 숙주의 영양소이자 면역 조절 물질로 쓰인다.

최근 들어 뇌과학자들은 지방 화합물이 뇌의 기능까지도 조절한다는 결과를 거푸 쏟아내고 있다. 지방산을 몸 안으로 들여오는 대신 숙주는 중탄산을 장으로 방출한다. 대장이 산성 환경으로 변하는 것이다. 이 상황을 반기는 세균 무리가 대장 생태계를 점령한다.

대장 안에 물의 양이 많아 산성도가 떨어지면 장 미생물 분포가 달라진다. 그러므로 대장 환경을 일정하게 유지하면서 그 안의 주인인 미생물을 든든히 먹여야 한다. 그들이 곧 귀인(貴人)이다.

김홍표 아주대 약학대학 교수

김홍표 아주대 약학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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