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한 운동 끝에 죽은 세포들

김홍표 아주대 약학대학 교수
[김홍표의 과학 한 귀퉁이] 극한 운동 끝에 죽은 세포들

몸을 다친 탓에 으레 세포 안에 있어야 할 미토콘드리아가 혈액 안을 배회하면 무슨 일이 벌어질까? 놀랍게도 면역계는 이들 미토콘드리아를 ‘남’으로 여기고 면역 반응을 개시한다. 잠시 자리를 벗어났다는 이유만으로 면역세포는 한때 세균이었던 미토콘드리아의 과거 행적을 들어 꼬투리를 잡는 것이다. 면역계는 철두철미하다. 세균이 우리 몸에 들어왔을 때 선봉에 나서는 세포는 둘로, 간이나 뇌처럼 주로 조직에 머무는 대식세포와 활동 무대가 혈관인 호중구가 그들이다. 이 두 세포는 세포벽처럼 보편적인 세균의 특성을 인식하자마자 서둘러 작전에 돌입한다.

김홍표 아주대 약학대학 교수

김홍표 아주대 약학대학 교수

세균이든 미세먼지든 닥치는 대로 삼키는 대식세포가 먼저 나서지만 위험 신호가 혈액까지 몰려오면 이제 호중구가 전투에 뛰어든다. 호중구는 수가 많다. 유튜브 과학 채널을 운영하며 <면역>이란 책을 쓴 필리프 데트머는 하루에 분화하는 호중구가 1000억개라고 말했다. 이 세포가 갖춘 비장의 무기는 두 가지다. 하나는 세균을 공격할 화학 물질 가득한 과립 주머니, 또 하나는 DNA 그물이다. 알다시피 DNA는 핵 안에 든 유전 물질이다. 호중구는 세포 저 깊은 곳의 DNA를 쏘아 세포 밖에 덫을 치고 혈액 속 세균을 옭아맨다. 이 두 무기를 갖춘 호중구는 집중력도 좋은 데다 헌신적이다.

마땅히 세포 안에 자리해야 한다고 간주하지만 사실 우리 혈액 안에는 소량의 DNA가 늘 존재한다. 일부 죽은 세포가 세포 밖(cell-free)으로 DNA를 내보내는 것이다. 외상을 입거나 감염된 사람, 혹은 암 환자에게서 ‘세포 밖 DNA’의 양은 많이 늘어난다. 손상을 입은 세포와 면역계 세포가 피할 수 없는 싸움을 벌인 결과다. 다행스럽게도 평균 170개 염기 정도인 작은 DNA 절편의 수명은 짧아 15~60분에 불과하다. 아마도 혈액이 간을 지나는 동안 제거되는 모양이다.

격한 운동을 해도 혈액 안에 세포 밖 DNA 양이 늘어난다. 이스라엘 연구진은 러닝머신에서 숨차게 40분 정도 뛰면 세포 밖 DNA의 양이 평소보다 20배가량 증가함을 밝혀냈다. 마라톤을 완주한 선수 혈액에서는 그 양이 40배로 늘었다. 혈액 안의 DNA는 반감기가 짧아 이내 사라진다. 생리학자들은 격하게 운동하는 동안 골격근육이나 심장근 세포가 다쳤으리라 추측했지만 틀렸다. 남성의 골수를 이식받은 뒤 실험에 참여한 여성 피험자를 분석하자 혈액에서 남성의 DNA가 늘어났다는 결과가 나왔기 때문이다. 골수의 조혈모세포에서 비롯된 세포가 운동 후 손상되었을 개연성이 커진 것이다. 좀 더 세밀한 분석을 거쳐 과학자들은 혈액에서 늘어난 DNA가 대체로 호중구 핵에서 나왔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마라톤처럼 극한 운동을 했을 때는 더러 심장 근육 세포가 다치고 DNA가 나오기도 했지만 그 양은 무시할 정도로 적었다.

면역계는 운동을 마치 세균이 침범한 일과 비슷하게 여기는 것일까? 물론 그러지는 않을 것이다. 격하게 운동하는 동안 체온이 올라가고 근육에 산소를 먼저 공급하느라 저산소 상태에 처한 부위의 세포는 언제든 다칠 수 있다. 이럴 때를 대비해 밖에서 세균 침입이 없더라도 면역계는 활성화된다. 우리 몸 곳곳에 세균이 상주하기 때문이다. 사실 세찬 운동을 하면 소화기관 장벽이 느슨해져서 대장 속 세균이 혈액 안으로 들어올 수 있다.

게다가 야생에서 사냥하다 다칠 가능성은 인간의 진화 과정에서 늘 맞닥뜨릴 수 있는 사고였다. 자신을 희생하고 더 큰 사고를 예방하도록 호중구가 ‘진화적으로’ 나서는 일이 나쁘지 않았을 것이다. 이런 가설은 실험적으로도 뒷받침되었다. 쳇바퀴에서 미리 훈련한 실험 동물에게 세균을 감염시키면 그러지 않은 동물보다 훨씬 잘 버틴다. 운동으로 잡도리한 쥐들이 호중구 DNA로 덫을 만들고 혈액 안의 세균을 제거할 수 있었던 덕분이다.

메이요병원 카밀레리 박사는 마라톤 선수의 오줌이나 설사에 피가 보이는 증상을 심부 체온이 올라가는 일과 관련 있다고 파악했다. 근육에 산소를 공급하느라 소화기관을 무심코 내버려 두면 골치 아픈 일이 생길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통째로 운동이 문제라는 뜻은 아니다. 꾸준히 운동하면 이런 현상이 줄고 면역계와 근육기관, 소화기관의 소통이 원활해질 것이기 때문이다. 붙박이처럼 앉아 전화기 화면을 응시하며 손가락만 까닥거리는 일이 더 큰 문제다. 인간이 두 발로 선 이유가 있을 것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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