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홍표 아주대 약학대학 교수
[김홍표의 과학 한 귀퉁이] 살아야 죽는다

인간의 몸을 구성하는 세포는 무척 역동적이다. 매일 약 2000억~3000억개의 세포가 죽는다. 또 그만큼의 세포가 새롭게 만들어진다. 성인 몸 세포 약 40조개의 0.5%가량이 매일 교체되는 셈이다. 그렇게 얼추 200일마다 우리 몸은 새롭게 태어난다. 하지만 이 말은 절반만 옳다. 세포에 따라 수명이 제각각이기 때문이다.

김홍표 아주대 약학대학 교수

김홍표 아주대 약학대학 교수

심장근육 세포나 1000억개에 이르는 뇌 신경세포는 수명이 상당히 길다. 압도적으로 숫자가 많은 적혈구는 120일을 살지만 1초에 200만개씩 태어나고 죽어간다. 테니스장 넓이의 소화기관 상피세포는 4~5일마다 교체된다. 엄마 배 속에 있을 때부터 죽을 때까지 우리 세포는 쉼 없이 살고 죽기를 되풀이한다. 활성 산소 탓에 단백질이나 유전자가 상처를 입어서든 발생 과정에서 손가락 사이의 갈퀴를 제거하고자 세포 스스로 죽든, 이유는 다양하지만 우리는 죽은 세포를 깔끔히 처리해야 한다. 미적거리다 죽은 세포막이 터지면 면역계가 득달같이 달려들어 원치 않는 면역 반응이 시작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리 보면 세포가 잘 죽는 것도 생명체로서는 복이다. 죽어가는 세포와 세포 시체 처리를 전문으로 하는 식세포(phagocyte)가 서로 신호를 주고받으며 시의적절하게 움직여야 하기 때문이다. 이런 전문 식세포는 배아 난황낭에서 출발한 줄기세포가 여러 조직으로 퍼져 분화한 것들이다. 본디 식세포는 세균처럼 ‘내 것 아닌’ 것을 보는 족족 잡아먹는다. 선천성 면역을 담당하는 식세포가 세균뿐만 아니라 죽은 세포를 먹어치우는 일은 무척 자연스러운 일이다. 어찌 보면 죽은 세포는 반쯤은 남인 셈이다.

죽어가는 세포는 ‘날 찾아(find me)’ 신호 물질을 세포 밖에 노출해 주변의 식세포를 유인한다. 그러면 식세포는 죽어가는 세포에 달라붙어 한입 크게 베어 문다. 짐작하겠지만 식세포는 빠르게 순환하는 세포를 가진 조직에 상주하지만 사고로 갑자기 세포가 많이 죽어갈 때는 핏속을 타고 도는 식세포까지 동원해야 한다. 알코올과 같은 독성물질을 제거하는 간에는 쿠퍼 세포가 전문 식세포이다. 다친 세포가 막 안쪽 인지질인 ‘포스파티딜세린’을 뒤집어 대문에 금줄 달 듯 표시하면 쿠퍼 세포는 그 세포를 정확히 찾아 제거한다. 바로 포스파티딜세린이 꼬마선충에서 인간에 이르기까지 진화적으로 잘 보존된 ‘날 찾아’ 신호 물질이다.

성숙해지는 동안 적혈구도 이런 전술을 이용한다. 오롯이 산소만을 운반하는 적혈구 안에는 이 기체에 달라붙는 헤모글로빈으로 가득하다. 유전자를 보관하는 핵도 없다. 그러니 단백질을 만들 소포체도 없고 미토콘드리아도 없다. 핵을 제거할 때 적혈구는 이 소기관을 저 막 인지질로 둘러싼다. 그러면 해체 전문 소기관인 리소좀이 이 핵을 먹어버린다. 죽을 세포가 아니라 앞으로 석 달 동안 일할 멀쩡한 적혈구가 이렇게 핵을 없앤다니 사뭇 놀랍다.

이렇듯 죽어가는 세포를 감쪽같이 처리하는 일이 식세포의 주된 업무다. 죽은 세포에서 뭔가 새나오면 곧장 면역계가 작동한다. 수술이나 사고로 크게 다친 외상 환자의 세포에서 급작스레 쏟아진 미토콘드리아나 에너지 통화인 ATP가 면역 반응을 유도하는 일은 잘 알려져 있다. 매일 죽어가는 수천만개의 세포가 면역계를 활성화하면 인간은 하루도 맘 편히 살지 못할 것이다.

사는 일도 죽는 일도 큰일이다. 죽은 세포 빈자리를 서둘러 채워야 생명체가 살 수 있다. 영원히 산다는 히드라에서도 세포 증식 신호는 세포사멸 반응이다. 재생 능력이 뛰어난 생명체인 플라나리아, 도마뱀은 물론 인간의 간에서도 죽고 재생하는 과정을 거쳐 조직이 자신의 정체성을 이어간다.

앞에서 말했듯 식세포는 죽은 세포뿐만 아니라 세균이나 바이러스도 먹어치운다. 세균의 세포벽 성분이나 바이러스의 유전자를 인식하는 능력이 뛰어난 덕택이다. 그렇지만 인간 면역결핍 바이러스나 에볼라 바이러스는 ‘세포사멸 모방’ 전략을 써서 숙주 안으로 잠입한다. 면역세포이자 식세포가 이들을 덥석 물 때 이들 세포 안으로 들어와 안전한 곳에 숨는 것이다. 세상은 온통 놀라움투성이다.

이렇듯 세포는 끊임없이 죽지만 살아 있는 동안은 끊어짐 없이 대를 이어왔다. 몸속 곳곳에 포진한 식세포는 지속해서 대물림하면서 죽은 세포를 처리하고 세포 재생에 공을 들인다. 세포는 계속 죽지만 그 세포가 이룬 개체는 한 생애를 무사히 살아간다. 죽음이 삶의 토대다. 그게 생명의 본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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