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유정
강남대 교수·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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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유정의 영화로 세상읽기 공감 지능과 연민의 능력 미국의 법철학자 마사 C 누스바움의 <혐오에서 인류애로>는 소수자들의 인권투쟁을 다룬다. 부제는 ‘성적 지향과 헌법’인데, 예상하다시피 성적 지향에 대한 차별이나 금지를 헌법 차원에서 바로잡으려는 노력들에 집중한다. 이 책의 서문에서 누스바움은 한국에 성적 지향에 따른 차별금지를 포함한 포괄적 차별금지법이 없다고 지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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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유정의 영화로 세상읽기 마땅한 벌과 호모 나랜스 “악당이 성공할수록 작품도 성공한다.” 영화감독 앨프리드 히치콕은 1939년 컬럼비아대학교의 강연에서 이렇게 말했다. 악은 입체적이다. 선한 사람들만 등장하는 이야기는 밋밋하다. 심지어 아동을 위한 이야기에도 악당은 필수적이다. 하지만 사람들이 흥미를 느끼는 건 악 자체라기보다 처단이다. 악당이 응분의 처벌을 받을 때 분노와 몰입에 쓴 감정이 보상받는다. 미국의 작가 윌리엄 플레시는 이런 과정을 가리켜, 값비싼 신호(costly signaling)라고 부른다. 악당이 처벌받도록 이야기가 진화한 이유를 인류의 생존술로 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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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유정의 영화로 세상읽기 정치적 허구와 예측 복종 시대의 표현 “1954년 오펜하이머가 견뎌야 했던 고통과 치욕은 매카시 시대에 희귀한 일이 아니었다.” 영화 <오펜하이머>의 원작 <아메리칸 프로메테우스>의 한 구절이다. 원자폭탄 ‘셀럽’ 오펜하이머가 군축을 주장하자 미국 정부는 불법 도·감청과 미행을 감행해 8000쪽이 넘는 자료를 수집했다. 미 연방수사국(FBI) 국장 존 에드거 후버의 분노가 동력이었다. 한편 마틴 스코세이지의 영화 <플라워 킬링 문>은 데이비드 그랜의 역사 논픽션을 원작으로 삼고 있다. 그랜은 백인 사회가 협잡해 아메리칸 원주민의 부와 생명을 빼앗았던 범죄사를 기록했다. 백인들은 오세이지가의 석유와 돈 주위로 몰려들어 정략결혼을 서슴지 않았다. 문제는 결혼 후 오세이지가 사람들이 너무 빨리 세상을 떠났다는 것이다. 하지만 유전병을 핑계로 단 한 차례 수사도 없었다. FBI는 이 오래된 구조적 음모를 벗겨낸다. 당시 FBI 국장은 후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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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유정의 영화로 세상읽기 시민의 초능력은 시민의 것 “인민은 죄가 없다. 죄는 희생을 강요하는 자에게 있다.” 강풀 웹툰을 원작으로 한 드라마 <무빙>(사진)에 등장하는 대사이다. 웹툰 <무빙>은 ‘엑스맨’이나 ‘어벤져스’로 익숙했던 초능력자를 우리식 이야기로 재창조해냈다. 눈길을 끄는 건 그 과정에서 초능력자들이 상대해야 할 적이 초월적 외계인이나 평행 우주 속 악당이 아니라 ‘희생을 강요하는 자’로 바뀐다는 점이다. 변화는 서구식 영웅들과 다른 우리식 도피 서사에서 도드라진다. <무빙>의 초능력자들은 자신의 의도와 무관하게 초능력을 차출하는 국가조직, 현실 권력자들을 피해 도망친다. <무빙>의 초능력은 개인의 영달이나 부귀영화가 아니라 철저히 국가권력에 의해 소모된다. 희생을 강요하는 자들의 죄, <무빙>의 한국식 현실감은 바로 이 강요에서 비롯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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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유정의 영화로 세상읽기 콘크리트하이머 “1954년에 오펜하이머가 견뎌야 했던 고통과 치욕은 매카시 시대에 희귀한 일이 아니었다.” 오펜하이머 평전 <아메리칸 프로메테우스>의 서문에 쓰인 문장이다. <오펜하이머>의 한 장면은 영화를 보고 나서 오랫동안 맴돌았다. 원자폭탄이 완성된 이후, 군인들이 오펜하이머의 품에서 그 폭탄을 빼앗아 가는 장면이다. 폭발 실험에 성공하자마자 오펜하이머는 원자폭탄에 대한 권한과 권리를 모두 박탈당한다. 말 그대로 그의 손을 떠나버린다. 원자폭탄이 언제, 어떻게, 어디에 사용될지 조언은 하지만 요식 행위일 뿐이다. 그는 중대 결정 과정에서 제외된다. 결단은 정치인의 몫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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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유정의 영화로 세상읽기 됨됨이를 떠난 엄마와 딸 오늘날 엄마와 딸, 모녀관계를 논한다는 것은 여느 시대의 모녀를 이야기하는 것과 다르다. “우리 엄마들은 여기 그대로 서서, 딸들이 얼마나 멀리 왔는지 돌아보고 있어.” 자신의 딸 바바라의 이름을 따 바비를 생산한 루스 핸들러는 ‘바비’에게 이렇게 말한다. 마텔사의 첫 번째 생산품으로 1959년 탄생한 전형적인 바비는 전 세계 베스트셀러이자 스테디셀러다. 바비월드를 가능케 해 준 마텔사의 살림 밑천 맏딸이다. 영화는 그런 맏딸이 갑자기 우울증을 호소하며 굳건했던 바비 세계에 금이 가면서 시작된다. ‘가부장제’라는 단어가 숨 쉬듯 등장하니, 일찌감치 거부감을 표하는 관객들도 제법 있다. 그런데, 정작 <바비>(사진)에서 정말 읽어내야 할 행간은 바로 엄마와 딸에 있다. 아주 오래된 모녀관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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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유정의 영화로 세상읽기 시대와의 교감, 새로운 상상력의 올바름 미국 영화, 할리우드 영화라면 늘 상업성이 먼저 떠오른다. 매년 5~6월이면 마블산 블록버스터들이 수많은 관객을 끌어들인다. 그런데 원작이 된 만화는 이미 100살에 가깝다. 그러다 보니 오래된 상상을 자본과 기술로 우려먹는, 고갈될 공장처럼 여기게 되는 것이다. 크게 틀린 건 아니다. <아이언맨> 이후 전 세계 관객들의 사랑을 받아왔지만 <어벤져스: 엔드 게임> 이후 마블 블록버스터의 새로운 시도에 대해 대중의 반응은 싸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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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유정의 영화로 세상읽기 영화 진통제의 작용 한계 <범죄도시3>(사진)이 개봉했다. 첫 번째 <범죄도시>는 2017년 개봉해 688만 관객을 동원했다. 2022년 극장 내 거리 두기가 완화되고, 사람들이 극장을 찾기 시작할 즈음 개봉했던 <범죄도시2>는 1000만명 넘는 관객수를 기록했다. 두 편의 성공을 바탕으로 2023년 <범죄도시3>이 개봉했다. <범죄도시> 시리즈엔 공통점이 있다. 실제 있었던 강력범죄 사건을 소재로 하고 있다는 점이다. 중요한 건, 죄다 검거에 성공해 법적 처벌까지 끝난 사건이라는 것이다. 장첸이 등장하는 1편은 중국동포 조직폭력단 검거를 바탕으로, 악당 강해상의 2편은 2007년 무렵 동남아시아 일대에서 발생했던 한국인 납치, 협박, 살해 사건을 소재로 한다. 그리고 <범죄도시3>은 한국계 일본 조직폭력배 조직원의 마약 유통 사건을 모티프로 삼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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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유정의 영화로 세상읽기 꼭 예술가일 필요는 없다 영화 <파벨만스(Fabelmans)>(사진)의 제목을 보자마자, 우화를 만드는 사람이라는 뜻의 ‘페이블 맨(Fable Man)’을 연상했다. ‘파벨’은 다양한 언어권에서 플롯이나 이야기, 담화 등을 뜻한다. 그 조어를 파고들자면 아마도 말을 재미있게 지어내는 이야기꾼과 닿을 법하다. 세계적인 감독 스티븐 스필버그의 자전적 경험을 바탕으로 한 <파벨만스>를 플롯과 이야기에 대한 이야기로 읽는 게 엉뚱한 일은 아니란 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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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유정의 영화로 세상읽기 이야기꾼과 작가 사이 키가 2m쯤 되는 개구리가 갑자기 나타나 함께 도쿄를 구하자고 한다. 은행에서 융자관리를 한다지만 빚 독촉이 주 업무인 남자더러 지진의 원흉, 지렁이와 싸우자니 어리둥절하다. 지금 그가 도와주지 않으면, 지렁이가 2월18일 아침 8시 반쯤 도쿄를 덮쳐 15만명이 죽게 될 거라고 겁도 준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 <개구리군, 도쿄를 구하다>의 시작 부분이다. 소설은 1995년 고베 대지진 발생 4년 후인 1999년에 발표되었다.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애니메이션 <스즈메의 문단속>(사진)에 나오는 미미즈, 지렁이가 여기에도 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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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유정의 영화로 세상읽기 세속적 구원과 평범한 소통의 희망 알베르 카뮈의 <페스트>, 하인리히 뵐 <카타리나 블룸의 잃어버린 명예>, 윌리엄 골딩 <파리 대왕>, 책장에 꽂힌 고전들을 보자면, 공교롭게도 전쟁의 비극 이후 쓰인 작품이 많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고통과 죽음, 빈부 격차, 선과 악을 고민하지만 전쟁과 같은 극단적 부조리를 마주하자면 사유의 결과물들이 더 깊고 짙어질 수밖에 없다. 지난 3년여간 전 세계를 괴롭혔던 팬데믹도 그런 듯싶다. 유례없던 규모의 유행병이 정점을 지나고 접하는 영화에서 만나는, 세상에 대한 질문과 묘사가 만만치 않다. 2023년 아카데미 영화상 후보작들이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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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유정의 영화로 세상읽기 중요한 건 변하지 않는 마음 애니메이션 <더 퍼스트 슬램덩크>의 열기가 식지 않고 있다. 뒷심을 받아 최근 13일 내내 흥행 1위를 하며 250만 관객 동원을 눈앞에 두고 있다. 한국에서 200만 관객을 넘긴 일본 애니메이션은 드물다. 이런 추세라면, 260만 관객이 본 <하울의 움직이는 성>이나 최고 흥행기록을 가진 <너의 이름은.>의 379만명도 넘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엄밀히 말해, <슬램덩크>는 이미 30여년 전 그 내용이 다 소개된 작품이다. 모르는 내용이라 궁금해서 보는 게 아니라 오히려 알기 때문에 본다. <슬램덩크>가 주었던 어떤 ‘정서’를 위해 극장을 찾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