됨됨이를 떠난 엄마와 딸

강유정 강남대 교수·영화평론가
[강유정의 영화로 세상읽기] 됨됨이를 떠난 엄마와 딸

오늘날 엄마와 딸, 모녀관계를 논한다는 것은 여느 시대의 모녀를 이야기하는 것과 다르다. “우리 엄마들은 여기 그대로 서서, 딸들이 얼마나 멀리 왔는지 돌아보고 있어.” 자신의 딸 바바라의 이름을 따 바비를 생산한 루스 핸들러는 ‘바비’에게 이렇게 말한다. 마텔사의 첫 번째 생산품으로 1959년 탄생한 전형적인 바비는 전 세계 베스트셀러이자 스테디셀러다. 바비월드를 가능케 해 준 마텔사의 살림 밑천 맏딸이다. 영화는 그런 맏딸이 갑자기 우울증을 호소하며 굳건했던 바비 세계에 금이 가면서 시작된다. ‘가부장제’라는 단어가 숨 쉬듯 등장하니, 일찌감치 거부감을 표하는 관객들도 제법 있다. 그런데, 정작 <바비>(사진)에서 정말 읽어내야 할 행간은 바로 엄마와 딸에 있다. 아주 오래된 모녀관계 말이다.

강유정 강남대 교수·영화평론가

강유정 강남대 교수·영화평론가

최근 들어 할리우드의 ‘딸’ 이야기는 현상에 가깝다. 2023년 아카데미 수상작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의 주제는 엄마와 딸의 우주적 화해라 할 수 있다. 엄마 품을 벗어나 돌변한 딸은 가히 우주 최강 빌런에 맞먹는다. 한국 극장가에서 잔잔한 반향을 일으키는 애니메이션 <엘리멘탈>의 별명은 ‘K-장녀 이야기’다. 불, 물, 공기 같은 원소들 이야기인데 왜 갑자기 장녀가 등장하는 것일까?

<엘리멘탈>은 가업을 잇기 바라는 아버지와 그 가업에 흥미나 재능이 없는 딸 앰버의 이야기이다. 아버지는 앰버가 태어나는 순간부터 이 가게는 앰버가 물려받게 될 것이라고 다짐하고, 약속한다. 앰버는 그게 마치 자신의 소망인 양 아버지의 가게를 물려받겠노라 입버릇처럼 되뇌며 성장한다. 사실 아버지의 가게는 상처의 소산이다. 고향 마을을 떠나오며 아버지는 할아버지로부터 부정되고 무시당한다. 이주민으로서 아버지는 성공해야만 했다. 이 모든 과정을 위해 아버지는 자신을 희생한다.

그런데, 희생은 일종의 덫이다. 아버지의 희생은 앰버의 꿈을 억압하고 앰버에게 죄책감을 심어 준다. 앰버는 사실 아버지의 가게를 물려받고 싶지 않지만 그런 마음을 갖는 것 자체가 스스로에게 혐오감과 죄책감을 준다. 이주지에 멋지게 정착하고 성공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건 사실 아버지의 꿈이다. 자신의 꿈을 자식을 통해 대리 실현하고자 하는 모습은 우리 사회에서 빈번히 본다. 앰버와 웨이드의 사랑이야기지만 부녀관계 이야기로 읽히고, 북미에선 흥행하지 못했지만 유독 우리나라에서 성공한 맥락이기도 하다.

이런 희생의 방식은 모녀관계에서 더욱 심각하게 재현된다. 한국 사회에서 자녀의 사회적 성공에는 엄마의 희생이 전제되곤 한다. 출산, 양육, 진학, 취업에 이르는 과정에서 엄마는 당연한 듯 스스로를 희생한다. 심각한 건 그다음이다. 이젠 딸의 육아까지 도와주며 희생의 연속을 자처한다. 이런 과정 속에서 딸은 사회의 구조적 문제를 탓하기보다 스스로를 자책한다. 자아실현의 욕망과 이기심을 책망하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 관계 속에서 엄마 역시 딸에 대한 지배력과 애착을 잃지 않으려 한다는 점이다. 군림하는 부모가 거역하기 더 쉽다. 희생하는 부모는 그래서 더 지배한다.

<바비>의 가부장제에 대한 묘사나 비판은 선언적 수준에 불과하다. 하지만 모녀관계에 대한 집착은 꽤나 문제적이다. <바비>에서 가장 살아 있는 대사는 “사춘기 딸들은 엄마만 괴롭히지”라든가, “다정한 엄마로 보이지만 남들 앞에서 애들 이야기를 하면 안 돼” 같은 사회 속 모성과 관련된 것들이다. 사춘기 딸이 엄마로부터 독립을 선언하자 우울증에 빠져버린 엄마 글로리아는 바비랜드 전체를 붕괴 위기로 끌고 간다. 이 관계는 바비를 창조한 루스 핸들러와 최초의 바비 인형의 관계로 반복된다. 마텔사가 처음 만들어낸, 맏딸 바비는 스스로 독립적으로 지낸다 생각했지만 사실 생산품이었고, 잊고 있던 생산자, 엄마를 만나 관계를 회복한 후 진짜 ‘나’로 다시 태어난다. 회복에 필요한 건 바로 ‘엄마’였던 것이다.

개인 양육이 시작된 근대 이후, 심리학은 아이가 엄마로부터 건강하게 떨어지는 애착에 대해 말해왔다. 어느새 엄마가 된 그 세대에게 정작 중요한 것은 인형과 작별하듯, 딸을 놓아주는 거다. 지금의 모녀관계에서 문제는 애정이라는 이름의 지배이다. 엄마보다 친구를 좋아하던 사춘기 딸이 다시 엄마, 아빠와 가족여행을 떠나는 게 해피엔드라면, 이것이야말로 엄마의 퇴행적 욕망 아닐까? 엄마됨, 딸됨 그 모든 가족 구성원이 됨됨이를 버리고 어머니도, 딸도 아닌 무엇으로 만날 때, 그게 바로 관계의 시작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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