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진통제의 작용 한계

강유정 강남대 교수·영화평론가
[강유정의 영화로 세상읽기] 영화 진통제의 작용 한계

<범죄도시3>(사진)이 개봉했다. 첫 번째 <범죄도시>는 2017년 개봉해 688만 관객을 동원했다. 2022년 극장 내 거리 두기가 완화되고, 사람들이 극장을 찾기 시작할 즈음 개봉했던 <범죄도시2>는 1000만명 넘는 관객수를 기록했다. 두 편의 성공을 바탕으로 2023년 <범죄도시3>이 개봉했다.

강유정 강남대 교수·영화평론가

강유정 강남대 교수·영화평론가

<범죄도시> 시리즈엔 공통점이 있다. 실제 있었던 강력범죄 사건을 소재로 하고 있다는 점이다. 중요한 건, 죄다 검거에 성공해 법적 처벌까지 끝난 사건이라는 것이다. 장첸이 등장하는 1편은 중국동포 조직폭력단 검거를 바탕으로, 악당 강해상의 2편은 2007년 무렵 동남아시아 일대에서 발생했던 한국인 납치, 협박, 살해 사건을 소재로 한다. 그리고 <범죄도시3>은 한국계 일본 조직폭력배 조직원의 마약 유통 사건을 모티프로 삼았다.

이 사건들은 모두 경찰의 화려한 성과들이기도 하다. <범죄도시>의 흥행은 이렇듯 사법처리까지 완벽하게 끝난 사필귀정의 완결성과 연관된다. 더불어 여기엔 마동석이라는 배우로 인격화된, 정의로운 경찰 영웅이 있다. 순박하고 유머러스하지만 대단한 신체 능력으로 악을 맨손으로 제압하는 경찰, 마석도(마동석 분)는 한국식 사법 정의 실천의 아이콘이다. 아이언맨이나 스파이더맨처럼 자본과 기술, 정보력과 초능력으로 초우주적 악당과 상대하는 게 아니라 단백질 보충제와 헬스로 키운 근력으로 악당을 부숴버린다. 한국의 보급형 현실 영웅으로 관객을 상대하는 것이다. 마석도 형사의 개연성은 실화 사건이 보장한다. 이미 공권력의 승리로 기록된 강력범죄들을 장면화함으로써, 마석도라는 캐릭터가 가진 비현실성을 보충하는 것이다.

하지만 다른 한국 영화 속 공권력의 모습은 어떨까. 여전히 해결되지 않는 실제 사건을 다루는 영화들에서 말이다. 정주리 감독의 <다음 소희>는 2017년 이동통신사 콜센터 현장 실습생으로 근무했던 여고생의 죽음을 다뤘다. <범죄도시>처럼 <다음 소희>에도 사건을 주목하고 해결하고자 하는 경찰, 유진(배두나 분)이 등장한다. 하지만 마석도와 달리 유진이 아무리 애를 써서 조사하고 수사해도 소희를 죽음으로까지 내몬 부당함은 소명되지 못한다. 영화화되기 전에 SBS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도 다뤘지만 제목처럼 다음 소희들은 끊임없이 희생되고 있다. 유진 같은 경찰이 있다 해도, <범죄도시>와 달리 영웅의 완력이나 유머로 사건은 예방되지도, 해결되지도 않는다.

현실적으로 풀어내기 어려운 문제들, 학교폭력 피해자나 사회적 약자들이 처한 구조적 모순은 ‘한 방’으로 해결되지 않는다. 문제는 영화적 판타지를 통해서라도 구조적 모순을 건드리던 영화적 발언마저 점점 줄고 있다는 것이다. <더 글로리> 식의 호소 공간도 좁아지는 것이다. 현실적 모순의 보상 작용인 판타지가 완결된 사건으로 대체되고 진짜 해결되어야 할 문제는 덮이거나 봉합된다.

안타까운 것은 관객들도 이러한 문제로부터 멀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허구적 영웅 서사와 달리 현실의 문제는 풀기 더 어렵다. 진짜 악은 특정한 악당 한 사람이 아니라 우리가 살아가는 삶의 구조 속에 스며들어 있기 때문이다. 소희의 죽음을 뒤늦게 알게 된 경찰 유진이 학교에 가도, 노동청에 가도, 교육청 담당자를 만나도, 심지어 회사 간부를 만나도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다. 아니 책임을 물을 수가 없다. ‘소희들’은 죽고 있는데, 책임질 사람은 없다. 구조적 질서가 문제라면 감독이나 영화는 무엇을 할 수 있냐고, 관객이 따져 물었던 것이다.

답답해서 그랬을 것이다, 그 관객도. 그러나 영화는 해결된 쾌감과 일망타진의 판타지만 주는 게 아니다. 정말 중요한 것은 질문이다. 이 질문이 바로 누구를 검거하고, 구속시키고, 수감시키지는 못해도 적어도 다음의 소희들에 대한 사회적 관심을 일으킬 수 있다. 그리고 그 관심이 진짜 문제를 해결할 실마리가 된다. 악당 하나를 흠씬 두들겨 팬다고 현실이 정화되는 것은 아니다. 영화는 분명 허구적 해결의 쾌감을 준다. 그러나 영화가 그렇게 즉효 성분의 판타지에만 매달린다면 구조의 모순은 훨씬 더 강하게 엉겨 붙어버릴 것이다. 진통제처럼 마석도는 현실을 잠깐 잊게 해준다.

하지만 진통제엔 중독성이 있다. 현실에 고통이 있다면 때론 각성 상태로 그걸 견뎌야 한다. 진통적 영화의 지속 시간은 짧고, 원인을 제거할 순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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