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육관 공청회와 ‘찐 농촌다움’

정은정 농촌사회학 연구자

새해엔 ‘농촌공간 재구조화 및 재생지원에 관한 법률’, 일명 ‘농촌공간계획법’이 시행된다. 농촌을 농촌답게 하기 위해 농촌 난개발과 지역 불균형을 막겠다는 취지다. 산업으로서의 농업만이 아니라 공간으로서의 농촌을 주목하고 주민 주도의 농촌공간을 계획하면 정부는 지원하겠다는 것이다. 신임 농림축산식품부 장관 후보 송미령 박사의 전문분야이기도 하다. 일각에선 국토교통부가 버티는데 농식품부가 힘있게 추진할 수 있을지 회의적이라 해도 잘 추진되길 바란다.

12월26일, 경기 남양주시에 겨우 남아 있는 농촌지역이자 청정지역인 수동면 주민 체육관에 다녀왔다. 물이 도는 곳이어서 수동이며 축령산 자연휴양림과 수동계곡이 유명하고 요양시설도 많다. 상수원 지역의 운명이 그렇듯 주민들은 개발 제한으로 불편을 겪었으나 덕분에 반딧불이도 살아가고, 우물을 여전히 쓰는 마을이 있을 정도의 자연환경이 살아남았다. 그런데 이런 마을에 무려 62만평짜리 골프장이 들어서려 한다. 천연기념물 하늘다람쥐가 산다는 축령산 일대에 기습적인 벌목이 이루어졌고 몇 그루나 베었는지, 베어낸 나무가 잣나무인지 소나무인지조차 모르겠다 대답하는 허술한 그런 주민 공청회였다. 기왕지사 나무도 잘려 나간 판에 골프장이나 넣어 지역발전을 하는 것이 낫지 않겠느냐고 말하고 싶었던 것 같다. 자료 한 장 주지 않고 치러진 ‘체육관 공청회’에서 업체는 환경 보전에 힘쓸 것이며 ‘회사가 매입한 땅이니 맘대로 해도 된다’ 정도의 대답만 늘어놓았다.

공청회장에는 호미는 손에 놓은 적 없어도 골프채는 들어볼 일이 없었을 주민들이 더 많아 보였다. 그래도 큰 회사를 이길 방법도 없고 동네에 물이 아니라 돈이 돈다니 찬성 쪽으로 마음을 굳힌 주민들도 많다. 가치도 없는 농사 집어치우고 땅이 상업용지나 택지로 용도 변경되길 바라며 늙은 부모를 등 떠민 자식들도 있을 것이다. 어떤 주민은 차라리 30년 전에 골프장 들어오겠다 했을 때 풀어줬으면 이 동네가 낙후되지는 않았을 것이라 목청을 높였다. 그러자 한 농민이 골프장이 들어와서 농약이 날아들면 내 농사는 다 망한다며 목청을 높였다. 누군가는 골프장 야간 불빛과 공사장 먼지, 지하수 오염은 어쩔 것이냐며 팽팽하게 서로 맞섰다.

감정이 격해지는 주민들을 말리기는커녕 시청 공무원들은 내내 뒷짐을 지고 있었다. 개발 업체는 이런 공청회에 이골이 났는지 시간을 채우자 자리를 털었고, 체육관 공청회는 끝났다. 저들은 “싸워라! 싸워라! 이기는 편 우리 편!”을 속으로 외치며 주민들끼리 더 치받길 바랐으려나. 늘 이기는 편은 자본이고, 주민들이 반목할수록 ‘단결’은 어려워 파괴는 더 쉬워진다.

충북도민 400만명의 식수원인 대청호를 낀 옥천군에도,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산인 지리산에도, 희귀생물종이 살아 있는 거제도 노자산 골프장도 마찬가지다. 골프장 건설 일타강사라도 있는지 업체와 지자체는 다 달라도 강행 방법은 똑같다. 용역회사의 부실한 환경영향조사여도 일단 보고서로 나왔으면 그걸로 끝내려 한다. 건전한 스포츠 문화를 육성하기 위해 파크골프장이나 체육관을 기부채납하고, 희귀생물의 대체 서식지와 녹지를 마련하겠으며 농약 관리를 잘하겠노라 서류상 약속을 한다. 이 모든 과정을 거쳐 서류상 적법성을 갖추었으므로 승인 도장 꽉! 이는 흡사 전두환을 대통령으로 뽑던 ‘체육관 선거’의 풍경이 이랬을 터다.

이런 판국에 정부는 ‘농촌공간계획법’이 실행되면 국민과 농촌 주민들이 농촌 가치와 ‘농촌다움’과 농촌의 바람직한 미래상 등을 생각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 한다. 하지만 농촌 곳곳에 골프장과 산업폐기물 매립장, 의료폐기물 소각장 건립 문제로 벌어지는 악다구니가 새해에도 맞이할 ‘찐 농촌다움’이다.

정은정 농촌사회학 연구자

정은정 농촌사회학 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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