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경재배 농산물에 유기농 인증, 굳이 왜 주려 하는가

정은정 농촌사회학 연구자

딸기 철에 접어들었다. 모든 농사가 힘들지만 딸기는 열세 달 농사라 할 정도로 고되다. 쪼그린 자세로 하는 작업도 많고 매일 따야 해서 과채류는 농민들 근골격을 틀어놓는 대표작물이다. 버스는 저상이 편하지만 농작업은 고상이 훨씬 편하다. 하여 근래에 수경재배를 기본으로 하는 고설재배가 많아지고 있다. 무나 고구마를 잘라 물통에 담아 놓고 이파리가 얼마나 올라오는지 살펴본 경험이 있을 텐데 이것이 수경재배다. 수경재배는 흙 대신 배지에 작물을 꽂은 뒤 물을 공급해 기르는 ‘무토양농법’이다. 다만 취미용 아닌 다음에야 맹물로만 길러 수확을 얻기란 만무하다. 그래서 비료(양분)를 녹인 ‘양액’을 주어 기르는 ‘양액재배’이고 스마트팜도 대체로 양액재배를 택한다.

딸기, 토마토, 파프리카, 화훼 작물에 수경재배가 많고 근래엔 오이, 엽채류도 확산 중이다. 신체 부담이 덜한 것도 장점이지만 연작피해를 줄이려 주로 택한다. 땅에서 특정 작물만 반복적으로 심으면 지력 상실로 연작피해가 난다. 돌려짓기나 섞어짓기를 해야지만 시장성 있는 농산물이 한정되어 쉽지 않다. 이런 이유로 수경재배를 택하는 농가가 늘어가지만 작물을 기르고 남은 양액 찌꺼기, 즉 ‘폐액’이 땅과 하천으로 흘러들어 환경오염을 유발할 위험이 있다. 양액재배를 먼저 시작한 네덜란드는 폐액을 재활용하는 ‘순환식 수경재배’가 의무지만 한국은 폐액을 그대로 흘려보내는 ‘비순환식’이 90% 이상이다. 친환경적인 농업이라 홍보해도 농생태계 전체를 보자면 진정 친환경적인지는 따져봐야 한다.

여전히 ‘토경재배’를 이어가는 농민들이 있다. 수경재배는 투자비용이 높아 부담이 커서 농산물값이 급락하면 큰 손해가 나고 양액이 오염되어 병이 들면 속수무책이다. 게다가 소수 유기농 농민들에게 토경재배는 선택이 아닌 필수다. 유기농산물은 단순히 농산물에 농약 잔류량이 있느냐 없느냐의 차원이 아니다. 유기농은 생물 다양성을 증진하고, 토양의 비옥도를 유지하면서 환경을 건강하게 보전하기 위해 허용물질을 최소한으로 사용하는 농법이라 국내법에 정의하고 있다. 최종 산물인 유기농 딸기만 보는 것이 아니라 흙과 지렁이, 미생물이 공존하는지가 핵심이며 물을 깨끗하게 유지하는지가 유기농을 가르는 핵심 기준이다. 이는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유기농업의 정의다. 하나 살충제와 제초제를 치지 않는 농사가 얼마나 고되겠나. 친환경 농가도 점점 줄어들어 전체 농가의 4.96%에 불과하다. 친환경농업은 국가가 기후위기 시대의 대안으로 삼겠다는 의지로 받쳐주어야 겨우 이어갈 수 있건만 그나마 내년 관련 예산도 14%나 줄이겠다 한다. 역대 정부는 농업의 고령화 문제, 기후위기의 대응으로 ‘스마트팜’에 대한 적극적인 육성 기조를 이어왔다. 야당인 윤재갑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스마트농업으로 수경재배한 유기식품 등에 유기 인증을 할 수 있도록 특례를 부여하는 ‘스마트농업 육성 및 지원에 관한 법률(스마트농업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한 상황까지 벌어졌다.

농업기술 혁신은 매우 중요하다. 나도 청년 농민들에게 토경재배 대신 스마트농업 기술을 익혀 자신의 농업에 적용해 보라 권한다. 허리, 무릎 다 비틀어질 텐데 땅 살리자고 사람을 잡을 수는 없어서다. 수경재배 농산물도 안전한 국내산 농산물이고 절대 미각 아닌 다음에야 토경 딸기냐 수경 딸기냐를 구분하기도 어렵다. 지금도 조건만 갖춘다면 수경재배 농산물에도 무농약인증을 내준다. 그런데 굳이 유기농 인증까지 내주자는 속내가 무엇인가. 이렇게라도 유기농 인증을 억지로 늘려 친환경농업을 진흥하고 있다는 티를 내자는 건가, 설비업자들 배를 불리자는 것인가. 꿋꿋하게 농사짓는 유기농 농민을 허탈하게 만들고 소비자는 무늬만 유기농 딸기를 먹는 일을 굳이 왜 벌이겠다는 것인지 그것이 알고 싶다.

정은정 농촌사회학 연구자

정은정 농촌사회학 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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