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장철은 아직 멀었다

정은정 농촌사회학 연구자

살림살이하기 참 힘든 한 해다. 농촌 살림살이는 말할 것도 없다. 가장 안정적인 판로라 여겼던 학교급식도 전염병 상황에서는 힘을 쓰지 못했다. 중국산 김치를 많이 쓴다 해도 그나마 국산 농수산물을 많이 소비하는 외식업이 정지 상태가 돼버렸다. 올해는 하늘마저도 가혹하게 굴었다. 최장 기간의 장마와 태풍으로 작물들이 햇빛 볼 날이 적었다. 하나 기특하게도 잘 자라서 과일 좌판에는 여름 사과인 ‘아오리’와 가을의 시작을 알리는 조생종 사과 ‘홍로’가 배턴터치를 무사히 하고 있다.

때마침 여러 언론에서는 ‘금채소’ ‘금과일’ 보도를 쏟아낸다. 배추와 무, 고추, 호박과 당근, 사과와 포도 등 농산물 가격이 금값으로 치솟아 밥상물가에 이어 추석물가도 위협한다는 논조다.

정은정 농촌사회학 연구자

정은정 농촌사회학 연구자

새삼스럽지 않다. 해마다 태풍과 장마 관련 뉴스에는 농산물값 폭등이 연관되기 때문이다. 물가에는 사람들이 민감하고, 특히 먹지 않고 살 수 없으니 식품 가격의 등락에 관심이 높다. 다만 소비자들은 자기가 선호하는 과일과 채소를 기준점으로 삼다 보니 유난히 가격이 올랐다고 느끼는 경우가 많다.

물가 통계에서는 채소값의 전반적인 상승세를 말하지만, 개별 품목마다 사정이 다르다. 나도 올해 채소가 비싸졌다고 느낀 것은 거의 떨어뜨리지 않고 먹는 채소 중에 오이 가격이 괜찮았기 때문이다. 값이 ‘괜찮았다’라는 표현이 대체로 ‘비싸다’라는 말로 뒤바뀌곤 하지만 초여름 오이 반 접(50개)을 2만원에 사다 오이지 담가서 잘 먹었다. 작년에는 반 접에 1만5000원 정도였으니 체감으로는 많이 비싸졌지만, 따지고 보면 개당 400원 정도다. 오이지 한 개면 밥 한 공기는 너끈히 먹을 수 있으니 소금 한 바가지 값을 더해도 500원 내외로 한 끼 반찬을 꾸려나갈 수 있었다.

긴 장마와 태풍이 지나가면서 고기값보다 상추값이 더 비싸다며 상추에 고기를 싸먹는 셈이라 해도 올해 상추는 반짝 8월 한 주 정도가 비쌌다. 반면 깻잎값은 낮았다. 게다가 코로나19로 고깃집에 잘 가지 않아 산지에서는 쌈채소 소비 부진으로 어려움을 겪었다.

배추가 많이 비싸져서 ‘금추’라고는 해도 본래 8월에는 날씨가 뜨거워 배추가 녹아버리고 가격이 1년 중 제일 비쌀 때다. 그리고 김장철 배추는 이제야 심는다. 밭에서 여름 채소 빼내고 그 자리에 김장 배추와 무를 심을 때인데 벌써 비싸다 하면 김장을 포기하게 만든다.

김장 재료의 핵심 멤버인 배추와 무는 가을의 기상 상황에 따라 많이 달라질 것이다. 비가 그치면서 배추값은 떨어지고 있고 9월 중하순이 되면 추석 대비 출하가 늘어 배추와 무는 평년 수준을 유지할 것이라고 농촌경제연구원은 전망했다.

반면 건고추의 값이 많이 올랐다. 습기에 약한 작물인 데다 올해 인력난도 심했다. 화건 고추 600g의 가락시장 도매가가 작년에 비해 두 배 정도 올랐다. 다만 고추농사가 크게 망가져 내다 팔 고추가 없어 결국 생산자들 수중에는 돈이 들어오지 않는다.

작년에는 추석이 9월 초순이어서 너무 일렀다. 하여 추석용 사과인 홍로 사과 농가가 어려움을 겪었다. 추석 시기에 홍로가 익지 않아 성수기를 놓쳤기 때문이다.

올해 홍로값이 유난히 비싼 이유는 출하량이 감소해서지만 작년에 워낙 폭락세여서 더욱 비싸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리고 올해 추석은 10월 첫 주, 기특하게도 태풍을 이겨내고 나무에 매달려 있는 홍로는 무사히 출하될 것이다. 그리고 그때쯤에는 홍로만이 아니라 중생종 사과도 함께 쏟아져 나온다. 게다가 올해는 배값이 낮다.

채소나 과일이 ‘금값’이라고도 하고 금보다 더 비싸다고까지 호들갑을 떨긴 하지만, 지금 최고점을 찍었다는 금 한 돈이 2003년 이래 가장 비싸다는 홍로 사과 특상품 30㎏ 값이다. 설마 아무리 비싸다 한들 금보다 비싼 채소와 과일이 세상에 어디 있으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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