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인진 변호사·법무법인 바른

중앙선관위원장과 상임위원은
정치 편향 비난 소지 없어야 하고
경험 갖춘 명망가 위원장으로 선출
위원장을 상임직으로 바꿀 필요성

신뢰 회복은 선관위 절체절명 과제

지난 17일 김세환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사무총장이 대선에서의 사전투표 부실관리에 책임을 진다면서 사의를 표명하더니, 다시 17개 시·도선관위의 상임위원들이 노정희 중앙선관위원장에 대하여 거취 표명을 요구하는 건의문을 전달했다. 중앙선관위원장에 대한 불신임의 집단적 의사표시는 사상 유례 없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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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쿠리 투표’라는 말을 듣는 대선 사전투표의 부실 관리는 그 근본적 책임이 투표소 현장의 선관위 직원들에게 있다고 보기 어렵다. 지난 4·15 총선은 코로나19라는 비상사태에서도 무사히 치렀는데, 중앙선관위는 여기에 지나친 자신감을 가지게 되었는지 대선의 사전투표 관리를 망쳤다. 코로나19의 확산을 감안했다면 당연히 필요한 프로그램과 매뉴얼을 만든 다음 여러 차례의 시뮬레이션과 예행연습을 거듭해서 문제점을 발견하고 해결했어야 한다. 공직선거법의 규정을 따르자면 확진자 등의 투표지를 넣을 투표함을 따로 만들 수는 없었겠지만, 그렇다고 “기표된 투표지를 사무원이 받아 일반 투표함에 전달하라”라는 지침을 내릴 일은 아니었다. 소쿠리 따위를 사용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으려면, 본투표에서처럼 투표시간을 따로 정하면 될 것이었다. 이 정도의 방안을 강구하지 못했다니, 좀 어이없다.

문재인 정부가 중앙선관위 위원을 임명하면서 정치 편향을 저지른 것이 관리 부실의 원인이라고 말하는 일부 언론의 주장에 동조하기는 어렵다. 선거사무를 경험한 사람들은 각급 선관위가 회의체인 위원회와 사무조직인 사무처 또는 사무국의 두 부서로 구성되어 있고 그 기능과 업무가 기본적으로 다르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선관위 직원들이 보통 하는 말로는, 상대적으로 대선은 중앙선관위가 치르기 어렵고, 총선과 지방선거는 하급 선관위가 치르기 어렵다고 한다. 내가 보기에 사전투표의 난맥상은 일차적으로 중앙선관위 사무처 지휘부의 리더십에 문제가 있음을 드러낸 것이다. 이와 달리 지난 총선에 관련된 선거소송에서 드러난 투표지 등의 문제는 하급 선관위의 사무처·사무국에 주된 책임이 있을 것이다. 이는 공무원들의 기강 해이, 사명감과 책임감 저하가 가져온 결과다.

그렇다고 중앙선관위원장이나 그 위원들에게 책임이 없다는 것은 물론 아니며, 또 하나의 책임은 정치권에 있다. 중앙선관위원장은 공직선거법상 위원들의 호선으로 선출하게 되어 있지만, 선거사무에 전문성이 없는 대법관이 관례적으로 맡아 왔고 그 대법관은 대법원장이 지명하는 중앙선관위원 3인 중 한 사람이다. 한편 중앙선관위의 상임위원은 보통 중앙선관위의 사무총장 등 사무처의 주요 보직을 거친 사람으로 임명되며 그 임무는 위원장의 보좌와 사무처의 사무 감독으로 규정되어 있는데, 법상 호선하게 되어 있지만 사실상 대통령의 의사를 존중하여 선출된다. 일전에 조해주 상임위원의 임기가 만료되기 전 시도된 윤석근 전 선거정책실장의 상임위원직 진입이 불발되면서, 문재인 정부는 사의를 밝힌 조 상임위원의 사표를 반려하였고, 끝내 조 상임위원이 사퇴하자 대선 전에 인사청문회를 거칠 시간적 여유가 없다고 하여 상임위원직을 공석으로 남겼다. 결국 대선 기간 중 사무처를 감독할 책임이 있는 상임위원이 없는 사태가 벌어졌는데, 그 상태로 선거를 치른 것이 문제의 한 원인일 수도 있다. 그런가 하면 국민의힘은 문상부 전 상임위원을 국회 몫의 중앙선관위원으로 추천했는데, 그는 상임위원직에서 퇴임한 후 국민의힘에 입당한 경력이 있다. 과거 상임위원직에 있던 사람이라고 해서 정당에 입당하는 것을 굳이 나무랄 수는 없겠지만, 그런 전력을 가진 사람이 만약 다시 선관위원이 되었다면 아주 나쁜 선례가 될 뻔했다. 조 상임위원이 과거 문재인 후보자의 대선 캠프에 관여한 경력이 있는데도 임명을 강행한 전례도 마찬가지다. 지난 1월 중 선관위 직원들이 조 상임위원의 사퇴를 촉구하는 집단행동을 하는 사태가 발생한 것도 이런 사정이 원인으로 작용했을 것이다. 문재인 정부가 들어선 이래 선관위의 중립성이 정치권에 의해 큰 상처를 입었음은 부인할 수 없다.

중앙선관위의 위원장이나 상임위원은 정치적으로 편향되었다는 비난을 받을 소지가 없어야 한다. 인사의 기준은 능력이어야지 ‘내 사람’이냐 아니냐여서는 안 된다. 또 위원장을 맡게 될 대법관은 적어도 시·도선관위 등 각급 선관위에 재직하면서 선거를 치러 본 사람으로 지명하여야 옳을 것이다. 중앙선관위에서는 꼭 대법관이 아니더라도 경험과 명망을 갖춘 인물을 위원장으로 선출하고 위원장을 상임직으로 하는 내용으로 제도를 바꾸는 것도 검토할 만하다. 이제 신뢰 회복은 선관위의 절체절명의 과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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