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직 고위공직자의 로비

정인진 변호사·법무법인 바른

한덕수 총리의 인사청문회에서
밝혀진 건 그의 무신경함뿐

변호사법 고쳐 전직 고위공직자의
로펌 활동과 처리 결과 밝혀야
회전문 인사의 고약한 행태 차단

사람의 판단력이나 인격, 넓게 보아 세계관은 평소에 잘 알기 어렵다. 문제적 상황에 처해서 하는 행동을 보아야 정확하게 안다. 공직자, 특히 고위공직자라면 공의와 개인적 이익이 충돌하는 상황, 그중에서도 법에서 말하는 이해충돌 상황에서 공익을 사익에 앞세워야 마땅하므로, 공직 취임 전에 이 문제에서 후보자가 어떤 사람인지를 가려내야 할 필요성은 클 수밖에 없다. 고위공직자가 퇴임 후 로펌이든 어디든 취업하는 것 자체를 나무랄 수는 없다. 문제는 그런 전력으로 로비를 하던 사람이 공직으로 복귀하는 것이다. 그런 복귀는 이른바 ‘회전문 인사’로 여러 폐해를 일으키지만, 그래도 기어이 복귀시키려면 과거의 로비가 법이나 양식에 어긋난 것은 아니었는지 따져 보아야 한다. 다음으로 새로운 공직이 과거의 로비와 어떤 관련이 있는지 살펴야 한다.

정인진 변호사·법무법인 바른

정인진 변호사·법무법인 바른

로비는 어떤 이슈에 관해서 정치인이나 공직자에게 영향력을 미치려는 행위다. 미국에서 로비를 규율하는 법률의 이름은 ‘로비활동공개법’이다. 무엇을 공개하라는 것인가. 고객의 명단, 로비활동 내역, 영향력을 행사한 법안의 번호, 로비활동에 따른 수입금액과 지출금액 등이다. 우리나라에서 로비는 불법일까?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은 공직자 등에 대한 ‘부정청탁’을 금지하고 있다. 그럼 정당한 청탁은 허용되나? 변호사법은 변호사 아닌 자의 법률사무에 관한 청탁행위를 처벌한다. 변호사의 청탁행위는? 대법원은 론스타의 외환은행 인수과정에서의 인수조건과 인수자격에 관한 협상 사무를 법률사무로 보고, 그 사무처리 중 청탁을 하고 론스타로부터 보수를 받은 변호사의 행위는 변호사 직무범위의 포괄성에 비추어 변호사법 위반이 아니라는 판결을 내렸다. 다만 “접대나 향응, 뇌물의 제공 등 공공성을 지닌 법률 전문직으로서의 정상적인 활동이라고 보기 어려운 방법을 내세워” 하는 청탁은 위법하다고 했다.

변호사 자격 없이 로펌에서 ‘고문’으로 일하며 보수를 받는 전직 고위공직자들의 ‘자문’(자문의 본뜻은 전문가에게 의견을 묻는 일이지만, 변호사업계에서는 통상 의뢰인의 의뢰에 따라 법적 조력을 해 주는 행위를 가리키는 것으로 쓰이고, 공직자의 이해충돌 방지법도 같은 의미로 쓰고 있다)은 변호사법에 위배되나? 관청의 사무는 대부분 법령 소정의 요건을 충족하는지 아닌지에 따라 처리할 수 있는 점에서 ‘법률사건’에 해당하겠고 또 의뢰인으로부터 사무 처리에 대한 보수를 받는 게 보통일 것이므로, 관건은 사무처리와 관련하여 청탁을 했는지 여부다.

변호사법은 공직에서 퇴임한 변호사 또는 변호사가 아니더라도 일정 직급 이상의 공직에 있었다가 법무법인 등에 취업한 자의 사건 수임 내역을 소속 지방변호사회에 보고하고 지방변호사회는 이를 다시 법조윤리협의회에 제출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런데 변호사가 아닌 퇴직공직자의 경우 보고사항은 “법무법인 등의 의뢰인 및 변호사 등 소속원에게 제공한 자문·고문 내역”이라고 되어 있을 뿐이다. 더욱이 내역서의 미제출이나 허위·부실 제출에 대하여는 아무런 제재 규정이 없다. 한편 지난 5월19일부터 시행된 공직자의 이해충돌 방지법에서는 고위공직자가 그 직위에 임용되거나 임기를 개시하기 전 3년 이내에 민간 부문에서 업무활동을 한 경우 그 내역(재직하였던 법인·단체 등과 그 업무 내용, 대리, 고문·자문 등을 한 경우 그 업무 내용을 포함)을 소속기관장에게 제출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이 조항은 일단 고위공직자가 된 후에야 적용할 수 있다. 전직 고위공직자가 공직으로 복귀하기 이전의 시점에서 로펌 등에서 어떤 활동을 했는지 상세히 밝히도록 강제할 마땅한 방도가 없는 것이다.

한덕수 총리에 대한 지난 인사청문회에서 질의는 그가 로펌에서 했을 법한 자문행위의 내용에 집중되었다. 하지만 밝혀진 것은 그가 김앤장 법률사무소에서 근무한 4년4개월 동안 총 4건의 자문행위를 했다는 것과 그 기간 중 받은 보수의 총액이 18억여원에 이른다는 사실뿐이었다. 정작 그가 해 주었다는 자문의 자세한 내용은 해명 중에 없었다. 그것도 모자라 그의 답변은 이해충돌 문제에 대한 무신경함을 드러냈다. 변호사법을 고쳐서라도 전직 고위공직자들이 로펌에 취업하여 처리한 사무 중 공무원을 접촉하여 수행한 것이 있는지와 그 내용, 의뢰인은 누구이고 사무처리의 결과는 어떠했는지를 상세하게 밝히도록 해야 한다. 그래야 고위공직과 로펌 고문직을 돌고 도는 기이하고도 고약한 행태를 조금이나마 막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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