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존의 조건

조희원 참여연대 활동가

계곡물에 발을 담그자 천국이 펼쳐졌다. 가만히 있어도 땀이 맺히고 짜증이 나는 요즘 날씨에 절대 느낄 수 없을 것 같은 한기였다. 입술이 파랗게 변할 정도로 물이 찼다. 한 5분쯤 발을 담그고 있었을까. 천국을 느끼는 것도 잠시, 지인들과 나는 다시 차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우리가 데려온 강아지 때문이었다. 동반한 반려견을 보고 황급히 입구에서부터 우리를 따라온 산림청 직원은 난감한 표정으로 말했다. 반려견 출입이 금지된 곳이니, 나가 달라고.

조희원 참여연대 활동가

조희원 참여연대 활동가

아니, 강아지보다 사람이 자연에는 더 해가 될 텐데! 순간적으로 화가 났지만, 이미 정해진 자연휴양림의 정책에 반기를 들 정도는 아니었다. 반려견을 키우지 않는 사람의 불편함을 이해한다. 수많은 반려동물 관련 사고가 어떻게 일어났는지도 잘 알고 있다. 그런데도 마음은 편하지 않다. 강아지를 키운 지 2년, 가족 같은 강아지를 데리고 갈 수 있는 곳이 너무 없다는 걸 배우는 시간이었다.

반려견 정책을 이야기할 때 꼭 언급되는 나라가 독일이다. 독일의 반려견은 모든 공원을 자유롭게 출입한다. 대부분의 공원에는 목줄 없이 놀 수 있는 놀이터도 마련되어 있다. 공원뿐만 아니라 식당, 카페 등도 자유롭게 이용한다. 물론 보장된 자유만큼 책임도 뒤따른다. 독일은 엄격한 반려동물 등록제도를 실시하고 있다. 특수한 경우를 제외하고 반려견에는 세금이 매겨지며, 반려인은 반려견을 키우기 위해 면허 시험까지 치러야 한다. 이처럼 까다로운 조건, 그러나 공존을 목적으로 잘 닦인 제도 안에서 인간과 반려견은 공생한다.

공생이란 어느 한 명의 노력으로 이룰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공존하기 위해서는 나와 타인이 함께 노력해야 한다. 이를 강제할 제도도 필요하다. 그래서 더 어렵다. 반려동물의 경우로 말하자면, 우리나라에 태어나는 모든 동물에 등록번호를 매기기도, 그 동물을 데려다 키우는 사람을 대상으로 면허 시험을 만들기도 너무 힘든 거다. 함께 살기 위해 필요한 노력을 제도가 하지 않으니, 그 제도 안에서 사는 사람들이 가장 쉽게 선택하는 것은 뻔하다. ‘쫓아내는’ 것이다.

생각해 보니 고작 반려견과 휴가 한 번 가기 어렵다는 건 삐칠 일도 아니다. 함께 살기 어렵다고 눈앞에서 보지 않기를 택해 버린 경우는 많다. 어린이를 위해 조금의 불편을 감수하기보다 어린이와 같은 공간에 있지 않기를 택한 노키즈존도 그중 하나다. 그뿐만 아니다. 지난달엔 철도공사가 나서서 서울역 주변 홈리스의 물품을 폐기 처분하는 일도 있었다. 이와 달리 장애인 활동가들이 10년 넘게 외쳐온 탈시설 운동은 주목할 만하다.

공동체가 쉽게 추구하는 편리는 필연적으로 약자를 그 공동체에서 내보낸다. 일상에서 약자를 찾아보기 어려운 사회, 누군가의 의도적인 배려가 없으면 약자가 공존하기 어려운 사회. 이들과 함께 사는 공동체를 고민하기보다 익숙한 ‘편리’를 핑계로 누군가를 배제한 결과다. 함께 살기보다 ‘쫓아내기’를 선택한 결과다. 나와 다른 존재가 함께 살기 위해 우리는 어느 정도의 노력을 했는가. 인식을 개선하자고 말하기는 쉽다. 그러나 제도를 바꾸는 것은 어렵다. 공존의 조건, 더 이상 편리를 핑계로 누군가를 배제하지 않겠다는 약속이 모든 분야에 세워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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