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성소수자 혐오반대의날

박한희 공익인권변호사모임 희망을만드는법 변호사

5월이 되면 많이 듣게 되는 단어가 ‘가정’이다. 어린이날, 어버이날, 부부의날 등 가정, 가족과 관련한 기념일이 많아 5월은 가정의달이라고 불린다. 5월15일은 국제 가정의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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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5월은 성소수자에게도 의미 있는 달이다. 5월17일 국제 성소수자 혐오반대의날이 있기 때문이다. 1990년 세계보건기구가 동성애를 질병목록에서 제외한 것을 기념하여 제정된 국제적인 기념일이다. 그보다 앞서 미국정신의학회는 1973년 동성애를 정신질환 진단 및 통계 매뉴얼에서 삭제하면서 다음과 같이 이야기했다. “동성애가 그 자체로 판단력, 안정성, 신뢰성, 또는 직업 능력에 결함이 있음을 의미하지 않으므로, 미국정신의학회는 고용, 주택, 공공장소, 자격증 등에서 동성애자에 대해 행해지는 모든 공적 및 사적 차별을 개탄한다.”

그리고 미국정신의학회의 위 입장으로부터 50년이 지난 2023년 2월 유사한 이야기가 법원으로부터 나왔다. 서울고등법원은 동성배우자에 대해 건강보험 피부양자 지위를 인정하지 않은 국민건강보험공단의 처분을 취소하며 다음과 같이 이야기했다. “사회보장제도를 포함한 공법적 관계를 규율하는 영역에서 성적 지향을 이유로 한 차별은 더 이상 설 자리가 없다고 할 것이다.”

이처럼 성소수자가 성적 지향을 이유로 받는 차별은 어떠한 경우에도 정당화될 수 없다는 것은 이미 수십 년 전부터 국제적으로 확립된 원칙이다. 그럼에도 여전히 많은 영역에서 성소수자에 대한 차별이 남아 있다. 대표적인 곳이 가정이다. 이성 간에만 법률상 혼인이 인정되고 혼인과 혈연으로 이뤄진 관계만이 가족으로 인정되고 법적인 보호를 받는 제도하에서, 동성 부부는 가족으로서의 어떤 권리도 누리지 못한다.

차별은 건강보험, 주택, 연금 등 구체적인 제도상 혜택의 부재로만 드러나지 않는다. 사랑하는 이와 함께 살아가는 관계가 가족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치부되는 것은 이들의 존엄성을 훼손한다. 이러한 관계의 불인정은 앞서의 서울고등법원 판결에서도 나타났다. 법원은 동성 배우자도 피부양자로서의 지위를 인정받을 수 있다고 하였지만, 판결문에서는 동성 결혼이 아닌 ‘동성 결합’ ‘배우자’가 아닌 ‘결합 상대방’이라는 용어를 사용했다. 이후 법원은 기자들에게도 이 용어를 사용하라고 안내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정치권에서는 종종 ‘동성애자에 대한 차별은 반대하지만 동성혼은 합의가 필요하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동성 간 혼인이 법적으로 인정되지 않는 것, 성별과 성적 지향에 따라 일부의 사람만 혼인이 가능한 상황 자체가 차별이라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말들이다. 차별 문제는 개인의 존엄성에 대한 침해라는 점에서 합리적인 것으로 정당화될 여지도 없다. 인권과 평등의 문제는 정치와 사회가 책임을 지고 해결할 문제이지 합의의 대상도 아니다.

다행히 변화는 만들어지고 있다. 동성 배우자의 법적인 지위를 보장하는 최초의 판결이 나온 것에 더해 최근에는 국회에서 ‘생활동반자의 관계에 대한 법률’이 발의되었다. 모두 이성 간의 혼인과 혈연만으로 한정된 가족의 개념에 문제를 던지고 변화를 만들어내는 과정들이다. 이러한 변화가 여기서 그치지 않고, 궁극적으로는 혼인제도 자체의 변화로 이어지기를 바란다. 혼인평등을 실현하는 것은 미루고 합의할 문제가 아니라 모든 사람의 평등을 위해 국가가 실현해야 할 책무이다.

국제 가정의날과 국제 성소수자 혐오반대의날이 공존하는 한 주가 시작되었다. 오는 20일 토요일에는 성소수자 혐오와 차별에 반대하는 모든 이들이 함께하는 투쟁대회가 열린다. 올해는 한국 최초의 성소수자 인권단체인 ‘초동회’가 만들어진 지 30년 되는 해이기도 하다. 오랜 시간 열정을 이어온 이들이 만든 변화를 이어받아, 이미 국제적으로도 확인된 위법한 성소수자 차별이 가정, 가족 영역에서도 없어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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