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향기로 존재감 드러내는 멀구슬나무

고규홍 나무 칼럼니스트
고창 교촌리 멀구슬나무

고창 교촌리 멀구슬나무

멀구슬나무는 우리나라에서 오래전부터 심어 키운 나무이지만, 남부지방에서만 자라기 때문에 중부지방에는 다소 생경한 나무다. 하지만 따뜻한 기후의 제주에는 매우 익숙한 나무로, 제주 사람들은 나무의 열매가 말의 목에 매다는 구슬을 닮았다는 이유에서 ‘멀쿠실낭’이라 부르다가 ‘멀구슬나무’라는 이름을 갖게 됐다.

다산 정약용이 전남 강진에서 귀양살이하던 중에 ‘전가만춘(田家晩春)’이라는 시에 “비 갠 방죽에 청량한 기운 일고/ 멀구슬나무 꽃에 바람 잦아들자 해 길어지네”라며 늦은 봄에 피어난 멀구슬나무 꽃을 노래했던 걸 보면 남부지방에서는 친근한 나무다.

멀구슬나무의 열매는 구충제로 이용할 뿐 아니라, 씨앗에서 기름을 짜 피부 질환 치료에 쓰기도 한다. 또 줄기와 가지에 방충 효과가 있어 부러진 가지를 옷장에 넣어 방충제로 쓰기도 했다. 요즘은 부러진 가지를 자동차 트렁크에 넣어 방충 효과를 보기도 한다.

멀구슬나무의 가장 도드라진 특징은 꽃향기에 있다. 늦은 봄부터 초여름에 보랏빛으로 자잘하게 피어나는 꽃에서는 고급 향수를 닮은 매혹적인 향기가 풍겨나온다. 한번 경험하면 잊을 수 없을 만큼 강렬하다.

민속적·인문적 가치가 높은 나무이건만, 천연기념물로는 2009년 지정된 ‘고창 교촌리 멀구슬나무’가 유일하다. 남부지방에 국한되어 자라는 나무이다보니, 개체수가 적은 때문이다.

‘고창 교촌리 멀구슬나무’는 전라북도 고창군의 중심지인 고창군청 청사 앞의 도로 곁에 사람의 통행이 많은 인도 가까이에 서 있는데, 나무 그늘에 정자를 설치해 누구라도 언제든 편안하게 찾아가 쉴 수 있는 쉼터의 지킴이이자, 고창군의 상징으로 여겨진다.

200년쯤 된 ‘고창 교촌리 멀구슬나무’는 나무높이 14m, 가슴높이 줄기둘레 4.1m로 멀구슬나무 가운데에는 가장 크고 오래된 나무다. 특히 멀구슬나무로서는 가장 북쪽에서 자라난 나무라는 점에서 보존 가치가 높은 자연유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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