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나무에 담긴 사람살이 무늬

고규홍 나무 칼럼니스트
영풍 병산리 갈참나무

영풍 병산리 갈참나무

소수서원을 지나 영주 부석사로 향하는 길에서 단산면사무소를 만나게 된다. 면사무소 앞에서 우회전하여 남쪽으로 고갯길을 3㎞쯤 넘어가면 한가로운 농촌 마을에 이른다.

마을에 닿았음을 알게 하는 건 마을 어귀의 낮은 언덕에 서 있는 큰 나무 한 그루다. 천연기념물로 지정해 보호하는 ‘영풍 병산리 갈참나무’다. ‘영풍’은 영주와 풍기를 합쳐 만든 지명으로 이 나무를 천연기념물로 지정한 1982년에는 공식적으로 쓰이던 행정구역 이름이다. 그러나 1995년에 영풍군이 영주시로 통폐합되면서 쓰지 않게 됐지만, 천연기념물의 이름은 바꾸지 않는 게 원칙이어서, 다소 낯선 지명이 남아 있는 것이다.

‘영풍 병산리 갈참나무’의 나무높이는 14m가 채 되지 않고, 가슴높이 줄기둘레도 겨우 3m를 넘는 규모여서 천연기념물급의 나무들에 비하면 작은 편이다. 이 갈참나무의 가치는 규모보다 수려한 생김새에 있다.

너른 들을 거느리고 뒤쪽으로는 마을 살림살이를 품고 서 있는 나무는 전형적인 농촌 마을 풍광의 중심이다. 나무를 바라보며 나무 주위를 돌아가면 걸음을 옮길 때마다 나무의 표정이 묘하게 달라진다는 점도 흥미롭다. 하나의 나무가 보여줄 수 있는 표정이 이토록 변화무쌍하다는 사실에 감탄할 수밖에 없다.

이 나무는 창원황씨(昌原黃氏)의 황전(黃纏, 1391~1458)이라는 선조가 조선 세종 8년(1426)에 선무랑(宣務郞) 통례원(通禮院)의 봉례(奉禮)라는 벼슬을 하던 때 심었다고 한다. 집성촌을 이뤄 살아가는 후손들의 입에서 입으로 전하는 이야기이지만, 문헌 자료가 남아 있지 않아 확실한 건 아니다. 다만 이를 바탕으로 나무 나이를 600살로 짐작할 뿐이다.

갈참나무 가운데에는 유일한 천연기념물인 ‘영풍 병산리 갈참나무’에서는 해마다 정월 대보름에 마을 동제(洞祭)를 지내며, 이 제사를 소홀히 하면 마을에 흉한 일이 생긴다는 이야기가 전해온다. 나무에 담긴 우리 옛 사람살이의 아름다운 무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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