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규홍 나무 칼럼니스트
청원 연제리 모과나무

청원 연제리 모과나무

열매를 풍성하게 맺는 모과나무는 여느 큰 나무에 비해 수명이 짧은 편이다. 번식을 위해 일찌감치 에너지를 쏟아부은 탓이다. ‘청원 연제리 모과나무’는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유일한 모과나무다. 키가 12m쯤 되고, 가슴높이 둘레는 3m를 넘으며, 500년의 세월은 더 살아온 이 나무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크고 오래된 노거수다. 긴 세월을 살아오는 동안 나무는 적잖은 상처도 입었지만 여전히 건강할 뿐 아니라, 전체적인 생김새가 수려하다.

조선 세조 집권 초기, 이 나무가 서 있는 마을에는 유윤이라는 선비가 살았다. 유윤은 단종이 폐위되자 벼슬을 버리고 이 마을에 은거했다. 그때 세조는 그를 조정으로 불러내려 했지만 유윤은 번번이 거절했다. 유윤은 자신을 찾아온 세조의 신하에게 모과나무 그림을 그리고, 그 곁에 자신은 ‘이 모과나무처럼 쓸모없는 사람’이라는 글을 덧붙여 돌려보냈다.

모과나무를 ‘쓸모없는 나무’로 비유한 건, 열매인 모과의 쓰임새가 적은 때문이다. 여름 지나 제법 탐스럽게 익는 열매는 보기도 좋고, 향기도 좋지만, 먹을 수는 없다. 무엇보다 먹을거리를 확보하는 일이 시급했던 우리 옛 조상들에게 먹을 수 없는 열매를 맺는 모과나무는 쓸모없는 나무로 여길 수밖에 없었던 결과다.

글과 그림을 받은 세조는 유윤에게 ‘모과나무 마을에 사는 처사’라는 뜻으로 ‘무동처사(楙洞處士)’라는 이름을 지어 보내고, 더 이상 그를 불러내지 않았다고 한다. 1450년 즈음인 그때에도 제법 큰 나무였다고 하니, 이 모과나무는 적어도 500년 넘게 살아온 나무로 짐작할 수 있다.

유윤이 살던 유서 깊은 ‘모과마을’은 최근 가뭇없이 사라지고 그 자리에 오송생명공학단지가 들어섰다. 그나마 모과나무를 살리고, 주변을 모과나무공원으로 조성한 건 다행이다. ‘청원 연제리 모과나무’는 끊임없이 들고나는 사람의 마을에서 나무는 사람 떠난 자리에서 가장 늦게까지 사람의 이야기와 자취를 기억하는 유일한 생명이라는 사실을 돌아보게 하는 큰 나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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