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경문화의 자취를 지켜온 나무

고규홍 천리포수목원 이사
[고규홍의 큰 나무 이야기]농경문화의 자취를 지켜온 나무

매오로시 나무는 풍요로운 삶의 지표다. 풍년을 기원하며 나무 앞에서 당산제를 올리는 건 물론이고, 살림터를 표시하기 위해서도 사람들은 나무를 심었다.

풍수지리에서 명당으로 꼽는 충주 수안보 화천리 은행정 마을에서 500년 가까이 평화와 안녕을 지켜온 것도 한 그루의 은행나무였다. 은행나무가 상징이어서 마을 이름까지 ‘은행정 마을’이다. 높이 32m에 나뭇가지를 사방으로 20m 가까이 펼쳤다. 규모도 장대하지만, 벌판 언덕배기에 홀로 우뚝 서 있는 은행나무의 자태는 더없이 아름답다.

이곳에 사람살이의 터를 닦은 건 470년 전이다. 그 무렵 풍수지리에 능한 한 사람이 이 자리가 명당임을 표시하기 위해 은행나무를 심고 그 곁에 정자를 지어 살면서 농사를 지은 게 마을의 시작이라고 한다. 그때부터 자연스레 마을 이름은 은행정 마을이 됐다. 마을 들녘 한쪽에서 사람살이를 내려다보며 서 있는 ‘충주 화천리 은행나무’(사진)는 처음부터 지금까지 사람살이의 안녕과 평화를 지켜주는 표지이자 마을의 상징이다.

너른 벌판에서 하늘을 찌를 듯 솟구쳐 오른 ‘충주 화천리 은행나무’의 중심이 되는 줄기는 세월의 풍진을 겪으며 문드러지고 가늘어졌지만, 새로 돋은 여섯 개의 맹아지가 늙은 몸통줄기 곁에 바짝 붙은 채 몸피를 키운 덕에 나무는 여전히 장엄한 자태를 잃지 않았다. 긴 세월을 살았지만 여전히 왕성한 생식활동을 이어가는 나무는 숱한 열매를 떨구며 은행나무 특유의 고약한 냄새를 온 들녘에 퍼뜨린다.

마을 사람들은 해마다 정월과 칠월에 이 은행나무 앞에 모여 마을 동고사(洞告祀)를 지낸다. 역시 사람살이의 안녕과 농사의 풍년을 기원하는 제사다. 은행나무 줄기 안에 마을에 흉한 기운을 퍼뜨리고, 때로는 사람을 잡아먹기도 하는 천년 묵은 뱀이 똬리를 틀고 있어서 뱀의 화를 달래기 위해 시작한 동고사라고 전한다. 문화재나 보호수로 지정한 은행나무는 하고하지만, ‘충주 화천리 은행나무’는 풍수지리에 천착해서 살아온 우리 농경문화의 사라져가는 자취를 간직한 소중한 자연유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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