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적

칸막이 대화

안홍욱 논설위원

식사는 관계맺기의 오래된 방식이다. 특히 정치인들에게 식사는 정치의 일환이다. 누군가를 설득하기 위해, 불편한 관계를 풀기 위해 함께 밥을 먹는다. 친분을 쌓고 여론을 듣고 정보를 공유하기 위해 밥을 먹는다. 정치문화가 ‘밀실 정치’에서 ‘공개 정치’로 바뀌었다지만, 정치인들은 사방이 막힌 공간에서 만나길 선호한다. 바로 옆 테이블에서 누군가 내 얘길 듣고 있다면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다. 누구를 흉보기 어렵고, 은밀한 대화를 주고받기 힘들다. 정치인마다 단골로 가는 밥집이나 술집이 몇곳씩은 있게 마련이다.

1990년대 국가안전기획부 시절 정·재계 인사를 불법도청했던 미림팀은 음식점을 주무대로 작업했다. 예를 들어 ‘망원’으로 포섭된 음식점 직원이 한 정계 유력 인사의 예약 일정을 미림팀에 알려주면 당일 음식점에 도청장치가 설치된다. 미림팀 직원은 옆방 등에서 거리낌없이 나누는 대화 내용을 녹음한다. 2005년 공개된 ‘안기부 X파일’에는 1994년 6월부터 1997년 11월까지 당시 이회창 등 여당 인사, 김영삼·김대중 측근 인사의 동향을 수시로 도·감청한 것으로 돼 있다.

여의도 국회 앞 한 복국 음식점에 세 칸으로 연결된 방이 있다. 방과 방 사이는 미닫이식 가벽으로 칸막이가 돼 있다. 방음이 잘되지 않아 목소리가 방을 넘나든다. 지난 6일 이 음식점의 세 방에서 안철수 국민의힘 의원, 이준석 전 대표, 다른 여당 의원 순으로 자리 잡고 오찬을 했다. 안 의원은 이 전 대표가 인요한 혁신위원장을 “미스터 린턴(인 위원장의 미국 성)”이라고 호칭하고 영어로 말한 걸 문제 삼아 헤이트스피치(혐오 발언)라고 비판했다. 하버드대 학부를 졸업한 이 전 대표를 두고 “영어를 잘 못하는 것 같다”고도 했다. 그러자 칸막이 뒤에서 듣고 있던 이 전 대표가 “안철수씨, 조용히 하세요” “안철수씨, 식사 좀 합시다”라고 소리쳤다. 안 의원은 이 전 대표에게 대꾸 없이 동석자들에게 “틀린 얘기한 것 없다”며 대화를 이어갔고, 나갈 때 두 사람은 인사도 하지 않았다고 한다.

두 사람은 2016년 20대 총선 서울 노원병에서 맞붙으며 시작된 앙숙 관계다. 지난달엔 안 의원이 ‘응석받이 이준석 제명 서명운동’을 하기도 했다. 두 사람의 갈등이 점입가경이다.

2021년 당시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왼쪽)와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  연합뉴스

2021년 당시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왼쪽)와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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