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수
편집인·논설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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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수 칼럼 윤석열과 지는 벚꽃이 닮았다 표는 준엄했다. 108 대 192. 보수여당이 대참패했다. 1988년 ‘1노3김’이 겨룬 13대 총선 이래 여당 지역구 의석이 처음 두 자릿수(90석)로 쪼그라들고, 그 의석마저 셋 중 둘은 영남(59석)이었다. 2년 전 대선에서 이긴 한강·금강에서 완패하고, 낙동강과 서울 강남에서 명줄만 부여잡았다. 중대선거구제와 비례제 확대를 반대한 여당은 누굴 탓할 것도 없다. 윷 던지듯 한 소선거구 진검승부에서 ‘모 아닌 도’를 잡았다. 그 투표함이 까진 4월10일 밤, 한국 정치는 또 한 번 개벽했다. “왜 저리 막 던질까.” 대통령이 총선용 감세·토건 공약을 나날이 쏟아낼 때다. “질 거니까.” 이 문답에 술자리에선 실소(失笑)가 터졌다. 정권심판론이 그리 컸고 이심전심으로 굴렀다. 허겁지겁 용쓰다 만 여당은 논외로 두고 그 심판의 시작과 끝, 오롯이 ‘윤석열’이다. 집권 2년 패인이 ‘디올백·런종섭’뿐일 리 없다. 검사 정치, 입틀막 정치, 이념 정치, 야당·비판언론만 수사·감사·검열한 권력사유화, 편 가른 인사, 사과 없는 만기친람 국정의 울화와 냉소가 ‘윤석열’로 집약됐다. 대통령은 굳이 비쌀 땐 국과 계란찜에 넣어 먹지 않는 게 대파란 것도, 그래서 그 소동에 서민들이 더 서러웠던 것도 몰랐을 게다. 귀 닫고 기세등등 폭주하던 윤석열차를 총선이 세웠다. 민심의 철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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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수 칼럼 더 늦기 전, 이재명은 청룡언월도를 들라 총선 공기가 달라졌다. 설 전후 더불어민주당·국민의힘 지지율(한국갤럽)이 ‘35 대 34’에서 ‘31 대 37’로 역전됐다. ‘김건희 디올백’ 파장은 끝난 건가. 여론조사 전문가 3명에게 물었다. 답이 재밌다. 그렇진 않을 거라고…. 설 전후엔 지역구 공천 여론조사·발표가 많았던 여당 표가 더 반응했을 수 있다고…. 여당의 ‘김무성 불출마·김성태 낙천 수락’ 뉴스와 민주당의 ‘친명·비명·친문 싸움’ 뉴스를 대비시킨 이도 있다. 선거 공학이든 몸부림이든, 셋의 총선 평은 모아졌다. 여당 상승세, 야당 내림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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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수 칼럼 ‘V2’의 디올백, 용산은 오늘도 잠 못 든다 엿새 전 새벽 2시였다. 윤석열 대통령이 신평 변호사의 페이스북 자작시에 ‘좋아요’를 눌렀다. 제목은 ‘슬픔의 의미’. “이제는 나의 때가 지나갔다고/ 헛헛한 발걸음 돌리니…”로 시작하는 시다. 대선 때 일찌감치 공개 지지해 ‘윤석열 멘토’로 불린 그는 얼마 전 “임금님놀이” “수직적 당정관계” “검찰정권”이라며 대통령을 직격했다. 왜 좋아요를 눌렀지? 시가 좋다는 건가? 세상을 멀리하겠단 말이 좋았나? 그러다 사람들의 눈이 다시 꽂힌 건 새벽 2시다. 대통령은 왜 깨어 있었지? 밤에 대통령이 뭐 하고, 누구를 만나는가. 정가의 영원한 관심사다. 보고서(DJ)와 책(문재인)을 보고, 인터넷(노무현)과 드라마(박근혜)를 즐긴다고 회자됐다. 꼭두새벽에 기동한 MB는 유달리 밤 얘기는 적다. 관저에서 만난 박철언(노태우)·김현철(YS)·박지원(DJ)·유시민(노무현)·이재오(MB)·최순실(박근혜)·김경수(문재인)는 ‘당대의 복심’이다. 대통령과의 거리가 권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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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수 칼럼 ‘서울민국’, 그들만의 떴다방 정치 빛의 속도로, 대한민국과 한류는 압축성장했다. 반대로, 그 속도로 무너지는 게 있다. 46개월째 주는 ‘인구’, 브레이크 풀린 ‘기후위기’, 감사원이 100년 뒤 8개 시군구만 살아남는다고 경고한 ‘지역소멸’이다. 이 세 가지는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돌고, 다 ‘서울공화국’과 맞닿아 있다. 그 수도 서울을 집권당이 다시 넓히자고 해 시끄럽다. 이호철(2016년 작고)이 장편소설 <서울은 만원이다>를 쓴 게 1966년이다. 서울이 강남·동·서로 2.3배 확장된 지 3년 지나고, 9개 구에 370만명이 살 때다. 그 서울도 이호철은 “꽉꽉 차 있다”고 썼다. 주택청약이 시작된 1977년, 박정희 정부는 “서울의 근본 문제가 인구 집중”이라며 행정수도 구상을 내놨다. 그 꿈은 노무현 정부가 세종시에서 펼치다 “관습헌법 위배”라는 헌재 판결에 막혔다. 1992년 1093만명을 찍은 서울엔 지금 25개 구에 940만명이 살고 있다. 해도, 서울은 과집적이고 계속 블랙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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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수 칼럼 강서에서, 한국 정치가 리셋된다 설은 형 집에서, 추석은 우리 집에서 지낸 지 두 해 됐다. 친지들도 여럿 모인다. 그 추석상엔 금칙을 정했다. 정치 얘기 않기로…. 소주 떨어져 슈퍼 갔다 오는 길, 어느 집에선 대낮부터 정치 언쟁이 붙었다. 툭 웃음이 터졌다. 하나, 두더지게임 같은 게 정치다. 술 한 순배 돌 때마다 “그런데~” 하며 튀어나오고, “그만요~” 하며 덮는 두 이름이 있었다. 윤석열과 이재명이다. 이재명이 기사회생했다. 한동훈 법무장관이 “증거가 차고 넘친다” 하고, 검찰이 “무기징역감”이라고 호언한 구속영장이 기각됐다. 직접 증거가 부족하고, 구속이 필요한 혐의로도 안 본 것이다. 2년 가까이 서울·수원·성남 검찰이 달려온 먼지털기 수사도 제동이 걸렸다. 대장동 사건은 이제껏 ‘428억 뇌물 약정’은 기소 못하고 배임죄 ‘고의’는 비워둔 채 막 재판이 시작됐다. 이재명의 영장 기각엔 세 뜻이 담긴다. 일방향이던 ‘검찰의 시간’이 유무죄 다투는 ‘법정의 시간’으로 넘어가고, 체포동의 내상이 적잖으나 방탄 굴레는 덜었으며, 제1야당 주도권을 다시 쥐었다. 1심이든 가처분이든 영장심사든 ‘정치인 이재명’은 법원의 첫 결정이 중요했다. 새옹지마 된 9월 격동에서 이재명은 판정승, 검찰은 완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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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수 칼럼 오른쪽 날개가 앞으로 가고 있는가 “제일 중요한 것이 이념이다.” 8월을 휘저은 윤석열 대통령의 말이다. 논객들의 글도 한 달째 그 말을 붙들고 있다. “국가 지향점을 이념”으로 잡은 첫 대통령이어서일 게다. 대통령은 “공산전체주의 세력과 그 맹종·추종 세력”을 반국가세력으로 틀 짓고, 그들이 자유사회를 교란시키고 반일 감정을 선동한다고 공격했다. 대통령이 곧 국가였고, 말끝은 야당·비판언론·진보적 시민사회를 겨눴다. 세상은 그날로 두 동강났다. ‘공산전체주의’는 학자들도 생소한 조어다. 이 땅에서만, 뉴라이트가 썼다. 2017년 1월23일, 뉴라이트 130여명이 ‘한국자유회의’를 출범시켰다. 2005년 수면 위로 처음 봉기한 이 집단이 박근혜 탄핵 촛불에 맞서 2차 사상전에 뛰어든 날이다. 그 선언문 해제(解題)를 김영호 통일부 장관이 썼다. 김 장관은 그때부터 “국민은 실재하지 않는 추상적 존재”라며 헌법 제1조(국민주권)에서 엇나갔다. 반(反)대한민국 세력이 조직한 광장의 촛불은 북한식·공산주의식·전체주의식 반동이고, 그와 싸우는 자유민주주의가 정치적 진보 세력이라고 우겼다. 그 후 ‘공산전체주의’를 쓰는 뉴라이트가 하나둘 늘더니, 급기야 대통령 입에까지 올랐다. 이 단체를 공동발기한 김광동 진실화해위원장·김태효 국가안보실 1차장을 필두로, 정부에 둥지 튼 뉴라이트는 열 손가락으로 다 셀 수 없다. 일제 식민지로 근대화됐고, 해방은 미군의 선물이며, 이승만·박정희를 찬미하는 사람들이다. 그 우극단을 대통령이 품자, 이 검찰국가엔 뉴라이트 꽃도 활짝 피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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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수 칼럼 윤석열의 ‘무책임장관제’ “지금부터 대한민국 중앙정부가….” 지난 4일 한덕수 국무총리의 잼버리 담화는 다급했다. 중앙·지방 정부를 갈라친 속은 바로 읽혔고, 그 자체로 유체이탈이었다. 일국의 장관 셋이 공동조직위원장, 총리가 정부지원위원장이다. 열달 전 국회에 “태풍·폭염 대책 다 세워놓았다”던 김현숙(여가부 장관), 개막 3일 전 새만금에서 “사고 없도록 최선의 준비해왔다”던 이상민(행안부 장관), 연관어 ‘청소년’을 빼면 존재감 희미했던 박보균(문체부 장관)은 다 허깨비였나. 그러곤 목도한대로다. 냉방버스가 투입됐고, 화장실 청소에 1400명이 가세했다. 새만금엔 긴급 예산 99억원이, 대원들 전국 분산에 또 수백억원이 쏘아졌다. 세수 펑크난 나라에서 무슨 일인가. 총리가 할 게 걸레질인가. 그래야 움직이는 나라가 됐나. 왜 처음부터 못했나. 이 처참한 블랙코미디에 물을 게 끝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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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수 칼럼 2년째 물난리, 국가는 또 없었다 “세숫대야로 들이붓네.” 물난리 난 16일, 부여 고향 친지는 전화 너머로 “비가 무섭다”고 했다. 예부터 하늘 뚫린 큰비를 세숫대야로 비유했었다. 친지는 그땐 한나절이고, 지금은 온종일 퍼붓는다고 했다. 백마강 벌판의 논·축사·비닐하우스는 다 흙탕물에 잠겼다고 했다. 나흘간 600㎜ 쏟아졌다니 눈에 선하다. 부여 비는 많이 온 축이다. 아니어도, 이 장맛비는 셌다. 산사태가 노부부·납골당·이주노동자를 덮쳤다. 오송 지하차도에선 수몰 참사가 또 벌어졌다. 50명이 세상 뜨고, 시·군·구 110곳에 이재민 나고, 여기저기 인재라니, 수해 민심은 펄펄 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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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수 칼럼 정녕 이동관뿐인가 2015년 8월27일자 경향신문 1면엔 ‘하나고, 남학생 늘리려 입시 조작’이 단독 톱기사로 실렸다. 사회면 톱 제목엔 ‘하나고, MB정부 청와대 고위인사 아들 교내 폭력 은폐’가 달렸다. 서울시의회 하나고 행정사무조사에 참석한 이 학교 교사 전경원씨 증언과 인터뷰를 담은 것이다. 학폭 사건엔 피해자가 4~5명이란 진술서, 교사 2명이 학폭위 안 열리는 걸 문제 삼은 교직원회의, 이사장이 이 실세의 전화 받은 걸 실토한 게 적시됐다. 며칠 후, 언론계 선배 전화가 왔다. “여기 밥자리에 통화하고 싶어 하는 사람 있어 바꿔줄게.” 이 기사 데스크(부장)를 보던 때였다. “이동관입니다.” 사실관계와 입장을 되묻는 말이 사무적이고 딱딱했는지, 통화는 짧게 끝났다. “4년 전 일”이고, “학교에서 공식 대응할 거”라던 말이 기억난다. 이동관을 옥죄는 학폭 사건은 8년 전 그렇게 세상에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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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수 칼럼 민주당, 부수고 내치고 비워라 진보·보수 가릴 것 없다. 논객의 화두가 달라졌다. 윤석열 대통령에서 더불어민주당으로. 4월에 ‘전대 돈봉투’를 민주당이 서둘러 사과할 때까지만도, 신문 칼럼·방송 토론의 주과녁은 대통령이었다. 내세울 것 없고, 공약 파기·갈라치기·굴욕외교로 얼룩진 1년의 난타였다. 그 채찍과 진언도 잠시, 5월의 동네북은 ‘김남국 사태’로 바뀌었다. 목도한 대로다. 초선 김남국은 제 꾀에 무너졌다. 횡설수설로 거액의 코인 거래와 이해충돌 논란을 빚더니, 급기야 이태원 참사를 보고받던 법사위에서 뒤로 빠져 코인을 사고판 충격파를 던졌다. 돈독(毒) 올랐나 묻기 앞서 실격이다. 그러곤 도피성 탈당을 해버렸다. 자료 제출하고 징계·매각 권고를 따른다던 말은 유야무야됐고, 그 입만 쳐다보며 국회 윤리특위 제소를 미적거린 당은 ‘닭 쫓던 개’가 됐다. 사태의 8할은 김남국과 당이 키웠고, 세간의 인내심도 거기서 폭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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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수 칼럼 윤석열의 1년, 막 던지다 길 잃었다 ‘정권 심판 대 거야 심판.’ 지난 10일자 조간신문 1면에 꽤 많이 등장한 제목이다. 내년 4·10 총선의 여야 맞구호이고, 오늘의 국회를 압축한 여덟 글자다. 때마침, 21일 한국갤럽 조사에서 국민의힘·더불어민주당 지지율은 같이 32%를 찍었다. 한 주 전 36%로 솟은 민주당이 다시 빠졌다. 여권이 외교·막말로 죽 쑤는 중에 거야엔 돈봉투 불씨가 지펴졌다. 여론의 진폭은 수도권·중도층에서 크다. 윤석열 대통령 국정지지율도 한 달째 27~31%에 갇혀 있는 여권에는 빨간불, 제1야당엔 노란불이 켜진 걸 게다. 시소 타는 민심은 어느 쪽에도 호락호락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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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적 전두환 손자의 ‘폭로’ 2002년이다. 전직 대통령 전두환씨에게 인사를 간 정치인을 따라 연희동을 찾았다. 밖에서 보이지 않고 접근도 어려운 집은 성채 같았다. “저 잔디마당에 비자금 금고를 묻어놨단 얘기가 있습니다.” 한 기자의 질문에 거실에서 담소하던 전씨는 “이봐 기자양반. 내려가서 파보쇼. 뭐 나오면 다 가져”라고 호기롭게 웃었다. “전 재산 29만원”이라는 문제의 법정 발언은 이듬해에 나왔다. 그렇게 비밀 많은 연희동 저택의 정적이 15일 한 손자의 폭로로 깨졌다. 차남 전재용씨 아들인 우원씨는 소셜미디어에 “전 할아버지가 학살자라고 생각한다. 나라 지킨 영웅이 아니라 범죄자”라고 직격했다. 전씨 일가의호화생활을 보여주는 글과 사진·동영상도 쏟아냈다. 이순자씨로 지칭한 여성은 연희동 집에 구비한 스크린골프장에서 골프채를 휘둘렀고, 전씨 딸 효선씨 자녀의 “초호화 결혼식” 사진도 소개했다. 아버지 재용씨는 “미국 시민권자 법적 절차를 밟고 있다. 법 감시망을 벗어나려고 전도사 사기 행각을 벌이고 있다”고 했고, 작은아버지 재만씨는 “캘리포니아 나파밸리에서 와이너리를 하고 있다”고 했다. 천문학적 돈이 드는 와이너리와 재용씨가 쓰는 출처 모를 돈은 “검은돈 냄새가 난다”고도 했다. 제3자는 알 수 없는 연희동 집과 전씨 가족의 속살을 까발린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