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민국’, 그들만의 떴다방 정치

이기수 편집인·논설주간

빛의 속도로, 대한민국과 한류는 압축성장했다. 반대로, 그 속도로 무너지는 게 있다. 46개월째 주는 ‘인구’, 브레이크 풀린 ‘기후위기’, 감사원이 100년 뒤 8개 시군구만 살아남는다고 경고한 ‘지역소멸’이다. 이 세 가지는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돌고, 다 ‘서울공화국’과 맞닿아 있다. 그 수도 서울을 집권당이 다시 넓히자고 해 시끄럽다.

이호철(2016년 작고)이 장편소설 <서울은 만원이다>를 쓴 게 1966년이다. 서울이 강남·동·서로 2.3배 확장된 지 3년 지나고, 9개 구에 370만명이 살 때다. 그 서울도 이호철은 “꽉꽉 차 있다”고 썼다. 주택청약이 시작된 1977년, 박정희 정부는 “서울의 근본 문제가 인구 집중”이라며 행정수도 구상을 내놨다. 그 꿈은 노무현 정부가 세종시에서 펼치다 “관습헌법 위배”라는 헌재 판결에 막혔다. 1992년 1093만명을 찍은 서울엔 지금 25개 구에 940만명이 살고 있다. 해도, 서울은 과집적이고 계속 블랙홀이다.

크고 이름 있는 병원·대학·기업 본사·금융·언론사·문화시설의 50~90%, 일자리 54%가 서울에 있다. 집값·생활비는 비싸다. 그래서일 테다. 서울에서 전입자가 전출자보다 많은 건 20대뿐이다. ‘순전출’은 30대가 1위다. 모여들어도 정주는 힘들고, 결혼·출산 많은 30대부터 탈서울이 커진다는 뜻이다. 전국 꼴찌인 서울 합계출산율 0.53명이 그걸 가리킨다. 그런데도 ‘이건희 박물관’을 서울에 짓고, 300년 된 경북 영주의 반송(盤松)까지 수억원에 서울로 뽑혀 온다. 서울 옆에선 신도시 재건축과 광역급행철도(GTX)·대형 환승센터 건설이 한창이다. 그렇게 국토 12%에 인구 절반이 몰려 수도권은 대만원(大滿員)이 됐다.

서울 인접도시

서울 인접도시

여권에서 서울 편입을 거론한 김포·고양·구리·광명·하남·과천에 250만명이 산다. 더불어 거론된 안양·부천·성남·의정부를 더하면 500만명이 넘는다. 편입하면 행복해질까. ‘서울시민’ 희망자는 좋고, 곳에 따라 집값이 오를 수 있다. 반대로, 난제도 많다. ‘서울 자치구’는 시보다 세수와 국비 지원이 준다. 한강 일대는 규제가 늘고, 농어촌 입시전형은 못하고, 서울을 두른 그린벨트는 더 뚫릴 게다. 서울 지도에 김포가 길쭉이 붙여지면, 국방 업무만 없던 종합행정도시 서울도 서해 접경지가 된다. 서울 경계지엔 ‘병목’, 수도권엔‘갈라치기’ 후유증이 일 것이다. 짚을 건 더 있다. 먹이 많고 안전한 데 둥지 트는 새와 일자리와 삶의 질을 좇는 사람이 다를 건 없다. 여당이 빗댄, 오사카·맨체스터 메가시티는 과팽창한 수도 밖에 새 거점을 찾는 착상이다. 행정권역을 지키며 동일한 경제·교통·생활권을 지향한다. ‘메가 서울’은 방향·순서가 틀렸다. 균형발전이면 ‘세종 행정수도’를 살리고, 좌초된 ‘부울경’이 먼저여야 한다.

그 속은 다 읽혔다. 김포 지옥철 보러 가서, 불쑥 여당 대표가 “서울 편입” 얘길 꺼냈다. 보궐선거 참패 책임론과 정권심판론을 덮고, 총선판을 흔들 반전·히든 카드로 삼고팠을 게다. 묻는다. 2015년 ‘수도권 과밀화’를 비판한 울산시장 김기현과 지금 김기현은 다른 사람인가. 여권 인천시장까지 “정치쇼”라 반기 든 걸 특별법 하나로 뭉개보려는 게 가당키나 한가. 그리고 가능한가. 이 정권 축이 2008년 뉴타운 총선을 치른 ‘MB맨’들인 것도 다시 본다. 여기저기 찔러만 보고 총선 치를 심사도 닮은꼴이다. 며칠 주창한 “지방시대”인지 여당이 하자는 “서울 확장”인지, 대통령도 간 보는 침묵을 끝내야 한다.

2021년과 올해 10월, 경향신문 창간기획이 ‘수도권·지방의 두 번째 분단’과 ‘강남 쏠림’을 연거푸 짚었다. 강남-서울-수도권·광역시-시군구로 층진 한국 사회 직격 리포트였다. 연구·사무직은 판교, 엔지니어는 기흥을 취업 시 ‘남방한계선’으로 그었다. 쾌적한 수도권을 위해 지방에서 전기를 만들어 보내고 쓰레기를 대신 태우는 ‘불편한 진실’도 봤다. 부산의 20대 교사는 자원을 빨아들이기만 하는 서울을 “나쁜 심장”이라고 했다. 입경(入京) 비용이 비싸다는 2030에게 서울은 ‘주류·기회’, 지방은 ‘낙오·실패’였다. 그 눈물을 누가 닦아줄 건가. 정치가 해야 한다.

이기수 편집인·논설주간

이기수 편집인·논설주간

꼭 20년 전 추석이다. “고향(부여)이 조용하고 옛 그대로라서 좋다.” 친구는 술잔을 내리쳤다. “와서 살아봐! 얼마나 먹고살기 힘든지!” 그날의 깨달음과 미안함을 잊지 않는다. 중심에선 중심이 보이지 않는다. 서울도 아프나, 지방은 훨씬 더 아프다. ‘서울민국’이 아니라 ‘대한민국’을 살리려면, 이 사회의 지방인지감수성이 높아져야 한다. 포퓰리즘 여당엔 그게 없다. 서울에만 바벨탑 쌓고, 헌법 조항도 엇가고, 사람을 표로만 보는 이 ‘떴다방 정치’를 세워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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