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접고 싶었지만 2040년 9월 20일 1000호를 내겠다”···한기호 ‘잡지, 기록전쟁’

김종목 기자

격주간 출판전문지 ‘기획회의’ 600호 발간에 맞춰 나온 출판인 한기호의 신간 <잡지, 기록전쟁>(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엔 생사에 관한 이야기가 여러 번 나온다. 부제가 ‘출판전문지 발행인의 25년 생존 일기’다. 레거시 미디어 몰락, 종이잡지 죽음의 와중에 ‘살아남음’과 ‘살아 있음’에 관한 이야기가 이어진다.

‘국궁진췌 사이후이(鞠躬盡瘁 死而後已)’. “온몸을 바쳐 최선을 다하고, 죽음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그치겠다”는 뜻이다. 제갈량이 위나라를 공격하기 전 출사표에 적은 이 말을 한기호는 ‘들어가는 말’에 넣었다. 99세에 작고한 언론인이 죽음에 이르러서야 기사 쓰는 일을 그만두었다는 사실을 알리는 한 칼럼에 인용된 말이다. 창비를 떠난 지 만 25년이 되던 2023년 9월12일 이 칼럼을 읽고는 이렇게 썼다. “그날 나는 다시 한번 온몸을 바쳐 최선을 다하고, 죽음에 이르러서야 출판 일을 그만두기로 했다.”

한기호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장.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 제공

한기호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장.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 제공

외환위기 직후인 1998년 창비를 “아무런 준비 없이” 떠났다. ‘기획회의’ 전신인 ‘송인소식’을 창간했다. 2004년 7월20일 ‘기획회의’로 이름을 바꿨다. 지난 1월20일 600호를 냈다. 만 25년 동안 한 호도 쉬지 않았다. 월간 ‘학교도서관저널’도 만들었다.

“ ‘독서운동’이라는 대의만 가지고 시작하는 바람에 잡지 인생은 고난의 연속이었다.” 출판업계에 “서서히 망하려거든 단행본 출판사를 차리고, 빨리 망하려거든 잡지사를 시작하라”라는 말이 떠돌았다. 인터넷에 무료 정보가 넘쳤다. 정기구독 유치가 어려웠다. 광고 유치도 매번 난관에 부딪혔다. “광고를 달라고 애걸해야 하는 ‘기획회의’는 늘 접고 싶었다.”

한기호는 ‘모두까기’ ‘트러블메이커’로 불렸다. ‘기획회의’ 지면, 개인 블로그, 신문사 칼럼에다 ‘광고주’인 출판사를 실명으로 비판하는 일도 예사였다. 여러 출판사가 광고를 끊기도 했다. “‘‘기획회의’=한기호’라고 착각한 그들은 ‘기획회의’에 광고를 주지 않으면 자연사할 것이라고 착각했다.” 한기호는 자본의 압박을 ‘기획회의’에 글을 써온 필자들을 모독하는 일로 여겼다. 2020년 광고 영업을 중단했다.

위기 상황에서 강연료와 원고료 등을 잡지 출판에 다 넣다시피 하며 버텼다. 은행 대출도 받았다. 25년간 편하게 책을 낸 적이 없었다. 500호 출간 기념 행사장에서 “이제 ‘기획회의’는 이것으로 끝이라고 말하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고 했다. 200호, 300호, 400호를 낼 때도 마음이 흔들리곤 했다. 무수한 위기 때마다 “늘 외롭고 후회”가 됐다.

죽음을 목전에 둔 경험을 할 때도 위기와 어려움을 떠올렸다. 2016년 강릉 독서대전에 참석했을 때다. 9월9일 개막식 날 참석자들과 온종일 독서운동과 책 이야기를 나누고는 몇몇 후배와 술을 먹었다. 혼자 경포대 근처 숙소 부근 바닷가를 서성거리다가 너울성 파도에 끌려 들어갔다. 와중에 뭔가 발에 걸려 겨우 목숨을 건졌다. “요단강에 발을 담갔다가 빠져나온 셈이다.”

한기호는 죽음을 모면한 뒤 매달 25일 지급해야 하는 급여, 제작비, 원고료 등을 떠올렸다. 잡지 출판을 후원하는 지인들이 이자 없이 빌려준 돈도 생각났다. “기필코 빚은 갚고 죽겠다”고 결심했다. 생사관도 새삼 절실히 느꼈다. “내가 할 일이 아직 남아서 하늘이 살려 놓은 것이 아닌가 싶었다. 그 일을 겪고 죽음이 어느 날 갑자기 올 수도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생사가 이리도 간결하다는 것을 절감했다.”

책에 대한 사랑, 출판 공공성에 대한 자각으로 잡지 출판 25년을 견뎌냈다. 한기호는 “25년 전 어떤 친구는 한기호는 ‘밥’ 이야기를 하다가도 3분 안에 ‘북(Book)’으로 돌아간다고 말했다”고 적었는데, 그를 만난 출판인, 기자들이라면 그 친구의 말이 과장이 아니라는 걸, 지금도 유효하다는 걸 인정할 것이다.

왼쪽부터 <송인소식> 창간호, 이름을 바꾼 뒤 처음 낸 <기획회의>와 최근 출간한 600호. 니다.”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 제공

왼쪽부터 <송인소식> 창간호, 이름을 바꾼 뒤 처음 낸 <기획회의>와 최근 출간한 600호. 니다.”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 제공

한기호는 “OECD에 가입한 나라에서는 모두 ‘학교도서관저널’과 유사한 성격의 책이 간행되고 있는데, 그 발행 주체가 공공기관이 아니라 개인인 나라는 대한민국이 유일하다”고 말한다. 공공의 관심 밖의 출판 공공성 수호가 다시 잡지 출간을 이어내는 힘이기도 하다. 한기호는 ‘기획회의’의 공공성을 두고, 시골 마을 남의 집 일에 참견을 잘하는 욕쟁이 할머니 역할에 비유하기도 한다.

한기호는 ‘기획회의’가 평범한 서평지가 아니라 출판의 역사를 써 내려가는 잡지라고 자부한다. ‘기획회의’가 해마다 발표하는 ‘올해의 출판계 키워드’는 “당대에 주목받은 책들을 통해 드러나는 대중들의 욕망과 시대상”이다. 한기호는 “책으로 살펴본 역사”라서 또 ‘기획회의’를 접을 수 없었다고 했다. 강만길이 2014년 2월 경향신문에 써낸 칼럼 중 “역사는 인류사회가 추구해 마지않는 이상의 현실화 과정”이라는 대목을 곱씹는다. 그는 “역사적 기록이 있어야 과거 분석을 통한 ‘이상의 현실화’가 가능하다. ‘기획회의’는 그런 역할을 자임했다”고 말한다.

“디지털 기록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면서 기록의 중요성 또한 점점 커지고 있다. 빅데이터를 잘 분석해서 확실한 키워드 하나만 찾아내도 우리의 미래는 무척 밝아질 것”이라고 했다. 책 제목 중 ‘기록 전쟁’은 이런 소신과 전망에서 붙인 말이다.

한기호는 “대체할 수 있는 잡지가 있었다면 기쁘게 포기했겠지만 그런 잡지는 안타깝게도 등장하지 않았다. ‘기획회의’가 출판의 한 시대를 증언하는 유일한 역사기록이 될 수도 있겠다는 심정으로 펴냈기에 포기할 수 없었다”고 했다.

사람이 없었다면 포기했을 것이다. 한기호는 “용기를 주는 분들이 계셨다”며 고마워했다. 25년간 ‘기획회의’에 글을 쓴 “6000명 이상의 탁월한 필자”, “몇 사람의 피나는 노력”, “독자의 참여” 덕에 600호에 이르렀다고 믿는다. 500호 때 종간 검토를 주변에 알린 뒤 “ ‘기획회의’에 밑줄을 그어가며 출판을 공부했다는 이들은 직접 찾아와 종간을 만류”한 일도 상기했다.

당시 “수렁에 다시 빠지는 느낌”에도 출판인들의 응원 덕에 출간을 이어갔다. 600호 출간을 앞두고도 다시 한번 흔들렸다. “25년을 헌신한 것으로 충분하다, 이제 그만하자. 멋지게 종간 축하파티를 열자. 하지만 마음을 고쳐먹었다. 세상에 공언한 대로 1000호까지 펴내겠다는 약속은 반드시 지키자고 말이다.” 남은 생을 남김없이 잡지에 바치기로 한 것이다.

책 세계만 다루는 잡지가 아니라 ‘불평등’과 ‘기후위기’ 같은 인류 미래를 탐구하는 잡지로 거듭나기로 각오했다. 601호엔 두 문제 해결을 위한 상상력을 지역(로컬)에서 찾아 전 지구적으로 확대하는 취지의 ‘로컬 담론’ 특집을 실었다.

1000호 발행일은 2040년 9월20일이다. 한기호는 ‘나가는 글’에 이렇게 적었다. “살아 있다면 팔순이 지난 다음일 것이다. 그때까지 살아 있지 못하면 누군가가 나를 이어 약속을 지켜줄 것이라 믿는다.”

“늘 접고 싶었지만 2040년 9월 20일 1000호를 내겠다”···한기호 ‘잡지, 기록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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