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영찬
경향신문 기자
최신기사
-
책과 삶 ‘언어의 바벨탑’ 꿈꾸다…15세기 지식인의 모험 청중의 혼을 쏙 빼놓는 연설, 극한 감동을 자아내는 노래, 몸과 마음을 뒤흔드는 주문. 이것들이 보유한 공통 요소는 무엇일까. 현대인은 동의하기 어렵겠지만 15세기 유럽의 어느 지식인은 실재하는 무언가가 있다고 여겼다. 그에 따르면 그것은 ‘황홀경의 운율’이며, 더 나아가 개별 언어에 내재한 통합적인 문법이다. 그 지식인은 이탈리아 태생의 피코 델라 미란돌라이다. 어릴 때부터 신동으로 불렸고, 그리스어·라틴어·아랍어 등 여러 언어에 통달한 천재였다. 그는 언어의 보편 문법은 물론 만물의 기본 원리가 존재한다고 믿었으며, 그것의 실체를 좇았다. 노엄 촘스키가 변형생성문법 이론을 창안하면서 언어의 보편 구조 혹은 문법을 제시한 것보다 수백년 앞선 시도였다. 피코라는 인물의 전기 형식을 띠는 <천사들의 문법>은 르네상스의 열기가 달아오르던 시기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인문학자의 지적 모험을 담고 있다. -
책과 삶 나무를 둘러싼 모든 것의 역사 여러모로 압도되는 책이다. 우선 분량이 방대하다. ‘나무’라는 한 가지 제재로 다채로운 이야기를 1300쪽에 걸쳐 펼쳐냈다. 나무가 들려주는 인간과 자연의 빅 히스토리인데, 만만찮은 벽돌책이다. 벽돌책을 마주하면 ‘저걸 언제 다 읽나’라는 생각이 들기 마련인데, 이 책은 ‘페이지 터너’이다. 그런데 재미만 주는 것이 아니라 내용도 꽤 밀도 있다. 과학, 문학, 역사, 민속, 종교 등 전방위로 나무와 지구 그리고 인간에 대해 이야기하는데, 쉬우면서도 깊다. 저자의 글솜씨와 글의 깊이에 다시 한번 압도된다. -
책과 삶 복종·배제로 세운 종교 그래서 그들은 싸운다 기독교 세계와 이슬람 세계가 무력으로 충돌해온 근본적인 배경은 무엇일까. 왜 두 세계의 충돌은 그치지 않는가. 이 책은 이 같은 물음에 대한 ‘한 가지’ 답을 제시한다. 저자는 충돌의 연원을 이슬람교의 탄생 과정에서 찾는다. 이슬람교 창시자 무함마드는 철저한 이교도 배제와 알라에 대한 복종을 강요하면서 새로운 신학적 패러다임을 창출했다. 이를 통해 공동체를 신격화했고, 정복을 통해 종교적 영토를 확장했다. 절대적 교리를 앞세워 복종하지 않는 자는 처단했고, 이교도는 공존이 아니라 정복의 대상으로 봤다. -
책과 삶 오늘의 유럽 만든 중세 ‘배반의 역사’ 이 책에서 가장 영화적인 장면은 이렇다. 한밤 어둑한 교회 안으로 황제의 장남과 귀족 일행이 들어온다. 마침 교회 안에 있던 사제는 본능적으로 제단 아래 장막 속으로 숨는다. 숨죽인 채 이들의 대화를 엿듣던 사제는 흠칫 놀란다. 대화 내용은 황제를 제거할 계획이었다. 아버지를 향한 아들의 쿠데타 음모였던 것. 결국 사제는 이내 발각되지만, 발설하지 않겠다고 신의 이름으로 맹세를 한 후 목숨을 부지한다. 그리고 그는 맹세를 깨고 밤길을 달려 황제의 처소로 가서 쿠데타 모의를 아뢴다. -
책과 삶 유배지에서 배곯았던 '명문가 미식 선비'···허균, 고통 속에서 써내려간 그리운 맛 인생이 고난에 처하거나 황혼기에 들어서면 홀연히 과거가 그리워진다. 그때 함께 따라오곤 하는 것이 추억의 음식들이다. 그 음식들에는 십중팔구 그리운 사람, 장소, 일화 등이 배어 있다. 모함일 가능성이 다분한 죄를 뒤집어쓰고 유배당한 <홍길동전>의 허균도 그랬을 것이다. 막 귀양살이를 시작한 마흔한 살의 허균에게 허기가 밀려오듯 추억의 먹거리들이 떠올랐다. 방풍죽, 석이버섯떡, 대만두, 참외, 모과, 홍합, 방어, 석화, 곤쟁이새우… 그는 유배 시절을 “쌀겨마저도 부족하여 밥상에 오르는 것은 상한 생선이나 감자·들미나리 등이었고 그것도 끼니마다 먹지 못하여 굶주린 배로 밤을 지새울 때”라고 했다. 명문가 출신으로 진귀한 것을 많이 먹고 자란 미식가 허균은 먹거리 100여가지를 테마로 <도문대작>이라는 음식 노트를 썼다. -
책과 삶 ‘석유’로 읽어낸 분쟁·성장의 현대사 정상적인 국가와 최고 권력자라면 ‘성장 욕구’를 갖고 있다. 경제가 성장하지 않으면 민생이나 정치 안정은 헛구호에 그치기 십상이다. 그래서 성장 욕구를 실현하지 못하는 국가와 권력자의 미래는 어둡다. 그런 성장 욕구를 뒷받침하는 핵심 자원이자 변수가 석유이다. 보리스 옐친 전 러시아 대통령은 시장경제 체제 도입을 비롯해 과감한 개혁을 단행했지만 민생은 파탄나고 정치는 혼란에 빠졌다. 석유시장은 침체기였고, 신흥 재벌 올리가르히가 자국 석유 산업을 좌지우지하며 옐친의 발목을 잡았다. 반면 뒤이어 권좌에 오른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은 석유산업을 제대로 장악하면서 입지를 다졌다. 때마침 유가가 상승해 산유국 러시아는 수년 동안 높은 성장률을 기록했다. 결과적으로 석유 통제권을 쥐었던 푸틴은 살아남았고, 그렇지 못했던 옐친의 결말은 어두웠다. -
책과 삶 ‘태평천국의 난’, 내전 그 이상의 전쟁 영국이 아편전쟁을 통해 청나라에 무역 개방을 강요한 최종 결과로 나타난 ‘하나의 엄청난 혁명’. 미국 신문의 런던 통신원으로 일하던 카를 마르크스는 1853년에 작성한 기사에서 ‘태평천국의 난(1851~1864년)’을 그렇게 규정했다. ‘태평천국의 난’은 외형적으로 만주족 지배 권력과 한족 백성이 충돌한 내전으로 보이지만, 중국인만의 전쟁은 아니었다. 그것은 유럽과 미국 등이 얽힌 세계적 사건이었다. <천국의 가을>은 세계화라는 관점에서 ‘태평천국의 난’을 다룬다. 저자는 이 책을 쓴 목적에 대해 “중국을 19세기 세계사에서 제 위치로 돌려 놓기 위해서”라고 말했다. -
책과 삶 인간, 동물에게 어떤 존재이고 싶은가 고대 이집트 상형문자의 4분의 1은 동물 혹은 동물의 신체 일부를 담았다. 사람 이름도 ‘뱀의 누구’ ‘개구리의 누구’ 하는 식으로 동물을 기렸다. 개나 고양이가 죽으면 애도식을 거행했다. 종교에서도 동물의 위상이 강력했다. 동물은 불멸의 영혼이자 신적인 존재였다. 말하자면, 고대 이집트인의 사고방식에 인간과 동물의 차별은 없었다. -
책과 삶 ‘빈집 공유’ 공동체, 어떻게 가능했나 서울 남산 아래 첫 동네라고 불리는 용산구 해방촌에는 이색 공동체가 있다. 빈집 혹은 빈마을이라 불리는 곳인데, 2008년 셰어하우스 형태의 빈집 하나에서 출발해 하나의 마을을 이루었다. 이 공동체의 모토는 ‘자본의 바깥에서 공유하며 함께 살아가기’이다. 빈집의 가장 큰 특징은 주인이 없다는 점이다. 누구나 들어올 수 있고, 언제든지 떠날 수 있다. 머물러 있는 것은 집들뿐이다. 거주자들은 능력만큼 출자해 공동으로 보증금을 마련하는 식으로 주거 문제를 해결했다. 빈집 마을금고 즉 ‘빈고’라는 공유형 은행을 만들어 금융자본주의 시스템을 벗어나고자 했다. -
책과 삶 ‘감시 사회’ 중국…부글부글 끓는 민심 들춰보기 책 <저항의 수다>는 중국의 통제와 감시가 생각보다 심각하다는 인상을 준다. 책에 등장하는 어느 교수는 최소한 중국 인구의 1%가 상시적으로 주변을 감시하고 윗선에 보고하는 행위를 하는 것으로 추정한다. 공산당과 행정기관에 소속된 공식 감시자는 물론 그들에게 포섭된 ‘스파이’가 일상적으로 활동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 보니 오늘날 중국 본토에 사는 사람은 시국이나 최고 권력자 시진핑에 대해 비판적인 의견을 마음 놓고 피력하지 못한다. -
책과 삶 인류사 결정적 순간 만든 50척의 배 1851년 영국 남해안 일대에서 요트 경주대회가 열렸다. 국제 요트 대회의 시초라 불리는 이 대회에 미국 요트 한 척이 참가했다. 선명은 ‘아메리카’였다. 아메리카호는 닻줄이 엉키는 바람에 늦게 출발했다. 하지만 속력이 워낙 뛰어나 다른 요트를 따라잡기 시작했다. 그리고 14척의 경쟁자들이 꺼리는 암초 코스를 지름길로 택해 질주했다. 출발 8시간 반 만에 아메리카호는 가장 먼저 결승선을 통과했다. 2위보다 8분이나 빨랐다. -
책과 삶 도서관이 경제에 도움되냐고?…답은 “된다” 힘내라, 도서관!우석훈 지음 | 오픈하우스 | 380쪽 | 2만2000원 평생학습관, 교육정보관, 문예회관…. 김영삼 전 대통령의 문민 정부에서는 도서관을 도서관이라 부르지 못했다. 공공도서관의 구조조정·민간 위탁 정책으로 명칭이 바뀌고, 규모는 축소됐다. 전문 자격이 요구된 사서도 점차 일반인으로 대체됐다. 반면 금서 목록을 만들어 책을 탄압했던 전두환 정권은 공공도서관을 많이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