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닥공’ 정부

조홍민 사회에디터

최강희 감독은 극단적인 공격 축구를 선호하는 사령탑이다. ‘닥공’(닥치고 공격)으로 상징되는 그의 축구는 화끈한 공격 전술로 일관한다. 이는 ‘골을 내주지 않으려고 수비 중심의 플레이를 펼치다 보면 경기 내용이 나빠진다’는 그의 축구 철학에서 비롯됐다. 교체카드 대부분은 공격 자원을 투입하는 데 소모한다. 최 감독은 전북 현대의 지휘봉을 잡은 뒤 ‘닥공’을 앞세워 팀을 6차례나 K리그 정상에 올려놓았다.

조홍민 사회에디터

조홍민 사회에디터

공격 일변도의 ‘닥공’은 윤석열 정부의 지난 8개월간의 행보와도 닮았다. 좌고우면하지 않고 무조건 직진이다. ‘수비 불안’의 위험은 아예 생각지도 않는다. 당연히 물러섬이 없다.

윤 대통령은 한번 꽂히면 주변에서 뭐라 하든 거기에 올인한다. 대표적인 분야가 반도체다. 지난해 6월 대통령이 반도체 인력 양성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자리에서 교육부 차관이 “수도권 대학 정원 규제 때문에 힘들다”고 어려움을 호소하자 ‘국가 미래가 달렸는데 웬 규제 타령이냐’며 질책했다. 또 “국가의 운명이 걸려 있는 역점 사업을 치고 나가지 못한다면 이런 교육부는 필요 없다”며 혼쭐을 냈다. 결국 교육부는 반도체 인재 양성 방안을 한 달 만에 부랴부랴 만들어냈다. 올 초에는 반도체 투자세액공제 확대 방안을 내놔 제조업체들은 앞으로 매년 수조원의 세금을 줄일 수 있게 해줬다.

외교안보 역시 ‘공세 모드’다. 지난주 국방부·외교부 업무보고에서는 ‘우리가 공격당하면 100배, 1000배로 때릴 수 있는 대량응징보복 능력을 확고하게 구축’ ‘몇배, 몇십배 수준으로 대응해야 효과적인 자위권 행사’와 같이 정제되지 않은 발언이 대통령에게서 나왔다. 장병의 사기를 진작하려는 ‘대대장님 훈화 말씀’에서나 들을 법한 얘기다. 국가 안보를 위한 강력한 의지 표명이라고 치부할 수도 있겠지만 군 통수권자가 부처 업무보고에서 하기엔 적절치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편에서는 자신의 통치 철학에 반하거나 생각이 다르고, 정부에 반대하는 쪽을 가혹하게 몰아붙인다. 여기도 어김없이 ‘닥공’이다. 노동개혁을 빌미 삼아 노조를 때리고 야당은 ‘종북 주사파’ 같이 취급한다. 협치의 대상이 아니라 적이나 마찬가지다. 통합은 고사하고 대화 시도조차 하지 않는다. 정부 요직에는 식구나 다름없는검찰 인사들을 줄줄이 앉혔다. 일부 부처 장관에 대한 인사 실패에 비판이 나올 땐 “전 정부에 이렇게 훌륭한 사람을 봤느냐”고 일갈한다. 이태원 참사 때도 사과는커녕 자기 사람 감싸기에만 급급했다. 상대방이 태클을 걸어오면 오히려 더 강하게 반발한다. 독선과 아집, 오기가 아니면 설명하기 힘든 행태들이다.

최근 ‘닥공’이 집중되는 타깃은 노조다. 지난해 화물연대 파업을 사실상 ‘진압’한 이후 추락하던 지지율이 만회 기미를 보이자 강경한 노동정책을 노골적으로 밀어붙인다.

지난 18일 민주노총을 비롯해 주요 산별노조에 대한 동시다발 압수수색에 이어 이튿날에도 양대노총 건설노조 지부 사무실 등에 대한 압수수색을 진행했다. 이틀 동안 약 20곳에 이르는 노조 사무실이 털렸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이례적으로 공정위원장의 구두지시에 따라 화물연대에 대한 직권조사에 착수하더니 급기야 ‘화물연대가 공정위의 현장조사를 방해, 기피했다’는 이유로 검찰에 고발했다. 전방위적인 노동계 압박이 절정으로 치닫고 있다.

시민사회와 노동계는 ‘윤석열식 신공안몰이’가 시작된 게 아니냐고 우려하고 있다. 노조 때리기로 재미를 본 윤석열 정부가 색깔 덧씌우기를 통한 공안통치 부활로 전선을 확대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고 해석한다. 이미 서해 공무원 피격 사건과 탈북어민 강제북송 의혹 문제를 건드려 전 정권을 들쑤셔 놓은 터다. 다시 ‘음지에서 일하고 양지를 지향하기로 한’ 국정원은 모처럼 존재감을 과시하고 있다. 여당에서는 2024년 경찰로 이관되는 대공수사권을 국정원에 존치시켜야 한다며 밑밥을 깔고 있다.

‘최선의 공격이 최선의 수비’라는 말이 있지만 현실에서 반드시 통하는 얘기는 아니다. 공격에도 완급과 강약 조절이 필요하고, 수비의 공백을 틈탄 상대의 역습도 경계해야 한다. 여론의 30% 남짓한 열혈 지지층만 바라보고 ‘닥공’을 하겠다는 생각은 위험하기 짝이 없다. 그것은 최강희 감독이 축구에서 보여준 ‘닥치고 공격’과는 맥락이 다르다. 그런 ‘닥공’은 ‘닥치고 공권력’ ‘닥치고 공안’으로 흐를 가능성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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