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영관
변호사·이주민센터 친구 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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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 인권과 공존 위한 이민정책 새해가 시작했다. 2024년 첫 해맞이에 작은 소망을 담아본다. 올해 우리 사회에서 가장 큰 변화를 가져올 인구집단을 하나 꼽으라면 단연코 이주배경주민(이주민)이다. 우선 역대 가장 많은 이주민이 한국 사회에 체류하게 될 것으로 예상된다. 코로나19 직전 체류 외국인 숫자는 252만명으로 역대 최대 규모였다. 코로나 이후 200만명 수준으로 급감했다가 2023년 11월 230만명 수준으로 완전히 회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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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 이주노동자 존재 선언 고용허가제, 사용자에게 외국인 노동자를 고용할 수 있도록 허가해주는 제도. 이름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사용자의 ‘고용’을 중심으로 설계된 제도다. 2003년 8월 ‘외국인 근로자 고용 등에 관한 법률’이 제정되고, 그 다음해인 2004년부터 시행되어 올해로 20년이 되었다. 고용허가제 도입 전 외국인 노동자는 ‘산업연수생’이란 이름으로 불렸다. 1994년 도입된 산업연수생 제도는 한국에 온 외국인 노동자를 개발도상국에서 우리나라에 일을 배우러 온 ‘연수생’으로 부르며 노동자로 인정하지 않았다. 한 달 평균 276시간, 하루 종일 일을 시키면서 월급 대신 ‘연수비’, ‘훈련수당’이란 이름으로 월 30만~40만원을 지급했다. 임금 체불, 퇴직금 등 근로기준법에 따른 보호도 전혀 받지 못했고, 사업장에서 위험한 일은 모두 연수생들 몫이었다. 법의 탈을 쓴 노예제도와 다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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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 ‘외국인 주민’은 누구인가 법무부 출입국통계월보에 따르면 2023년 9월 기준 체류 외국인이 251만명을 넘어섰다. 코로나19 팬데믹이 발생하기 전 국내 체류 외국인 규모가 252만명이었던 점에 비춰 볼 때, 코로나19 이전 수준을 갱신해 역대 최대 규모로 평가된다. 2023년 우리나라 총 추계인구가 5155만명 수준임을 고려할 때 전체 인구의 4.8% 정도에 해당하는 규모다. 참고로, 최근 언론에서 전체 인구 대비 이주민 규모가 5%를 넘으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기준 다문화·다인종 국가로 분류된다는 내용이 언급되고 있는데 확인해보니 사실과 다른 잘못된 정보다. OECD에선 인구의 일정비율 이상을 기준으로 다인종·다문화 국가로 분류하고 있지 않다. 그러나 기준을 떠나서도 우리 사회가 이미 다문화 사회에 진입했다는 사실을 부정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일상의 곳곳에 다양한 이주민이 함께 살아가고 있다. 그 숫자는 앞으로 한국 사회의 필요에 따라 더 많이 늘어날 것이며, 이주민과 함께 살아갈 미래를 준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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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 한국 사람 기준의 ‘오류’ 러시아 사람과 결혼한 다문화 가족의 법률상담을 했다. 얼마 전 예쁜 아이가 태어나 한국에 출생신고를 하고 러시아에도 출생신고를 하려 하니 아이가 한국에서 태어난 경우 러시아 국적을 취득하면 한국 국적이 상실될 수 있다는 안내를 받았다는 것이다. 러시아 국적법에서 러시아 영토에서 태어나지 않은 아이는 귀화 절차로 러시아 국적을 받게 되는데 이 경우 사후적으로 다른 나라 국적을 선택한 것이 돼 한국 국적이 상실된다는 것이다. 한국에서 태어났지만 러시아에 출생신고를 했다고 한국 국적을 상실하게 하는 건 불합리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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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 사람이 오는 일이다 한국에 오는 외국인 노동자들이 대폭 늘어날 예정이다. 정부 부처들이 앞다투어 외국인력 유입을 늘리겠다고 야단이다. 지난달 법무부는 내년 숙련기능 외국인력(E-7) 쿼터를 기존 2000명에서 3만5000명으로 17배 이상 확대하겠다고 했다. 장관이 직접 조선소를 방문해 ‘깨작깨작 늘리는 것은 효과가 없다’는 표현을 써가며 적극적인 의지를 보였다. 당장 내년부터 5년 이상 장기체류하면서 가족을 동반할 수 있는 외국인 노동자가 3만3000명 이상 늘어난다. 평균적으로 3~4명의 가족을 동반하는 걸 고려하면 실제 10만명 이상 외국인이 늘어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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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 ‘전세 피해’ 이주민 차별 말라 인천 미추홀구에 사는 중국국적 동포 A씨는 전세사기 피해자다. 얼마 전 살던 집이 경매에 넘어갔고, 20년 동안 한국에서 일하며 성실하게 모은 전 재산인 5000만원 전세금은 한 푼도 돌려받지 못한 채 아내와 여덟 살 난 딸 그리고 부모님까지 다섯 가족이 하루아침에 길바닥에 나앉게 되었다. 경찰에 신고해 전세사기 피해자로 인정은 받았지만, 피해자에 대한 지원은 외국인이라는 이유로 받지 못하고 있다. 긴급 주거를 위한 임대주택이 지원이나 기금에 따른 보증금 대출은 내부적으로 그 대상을 ‘국민’으로 한정하고 있어 외국인은 적용되지 않는다는 답변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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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 모든 아동이 안전한 사회 태어났지만 출생신고가 되지 않은 갓난아이의 비극적인 소식이 연일 언론에 보도되고 있다. 감사원 조사 결과에 따르면 지난 8년 동안 의료기관에서 출산한 기록은 있으나 출생신고가 안 된 갓난아이의 숫자가 2236명이었다. 보건복지부와 각 지방자치단체에서 사라진 아이들에 대한 전수조사를 진행 중인데, 이번 달 초까지 소재가 파악되지 않거나 범죄 혐의가 있어 경찰에 수사를 의뢰한 사건이 총 867건에 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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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 이주배경주민과 함께 살기 한국에서 이주민은 더 이상 낯선 존재가 아니다. 학교와 직장, 식당과 방송 등 일상생활 곳곳에서 다양한 이주민들을 쉽게 만날 수 있다. 물론 농촌과 어촌, 공장 등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외진 곳에서 노동하는 이주민들도 많다. 1988년 서울 올림픽을 계기로 전 세계에 ‘코리아’라는 이름이 알려진 이후, 1990년대 초 가사노동자, 산업연수생, 결혼이주민이라는 이름으로 조금씩 드러나기 시작했던 이주민들은 지난 30년, 불과 한 세대 만에 우리 사회에 곳곳에서 빠질 수 없는 구성원으로 자리 잡았다. 단언컨대 이주민은 앞으로 10년 동안 한국 사회의 질적인 변화와 지속 가능한 발전을 가져올 중요한 집단이 될 것이다. 법무부에서 이민정책을 ‘국가백년대계’라고 했는데, 단순한 미사여구가 아니라 구체적인 현실의 과제로 인식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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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 완벽한 난민이라는 환상 법은 명확한 기준이어야 한다. 많은 사연이 오가는 법정에서 법은 유죄와 무죄, 있음과 없음을 구별하는 기준점이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너무 복잡해서 명확해 보이는 하나의 기준으로만 판단할 수 없는 경우가 많다. 정명원 검사의 책 <친애하는 나의 민원인>에 실린 사례를 하나 옮겨본다. 사법연수원 시절 동료들과 요양원에서 잡초 뽑는 봉사활동을 하게 되었다. 문제는 나물로 쓰이는 풀과 뽑아야 하는 잡초가 비슷하게 생겼다는 것. 시골 출신의 감각으로 잡초를 골라내던 저자에게 한 친구가 다가와 기준이 무엇인지 물었다. ‘자세히 보면, 이 풀은 표면이 매끈하고, 잡초의 표면에는 잔털 같은 것이 있는데’ 하고 설명이 채 끝나기도 전에 “털이 있는 것을 뽑아”라는 기준이 손나팔로 전달되었고, 명확한 기준을 인식한 법조인들의 성실함으로 그날 그 정원에서 ‘털이 있는 풀’은 모두 제거됐다. 털처럼 보이는 무언가를 달고 있다가 제거된 나물, 털은 있지만 처음부터 나물도 잡초도 아니었던 제3의 풀의 무고한 희생이 얼마나 되는지 확인하지 못한 채, 결과적으로 정원은 말끔히 정리되었다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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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 차별 이용해 아이 키울 수 없다 얼마 전 외국인 가사노동자에게는 최저임금을 안 줘도 되는 법안이 제출되었다. 대표발의한 조정훈 의원은 법안이 통과되면 월 100만원 이하로 외국인 가사노동자를 고용할 수 있고, 이를 통해 여성의 육아와 가사에 대한 부담을 줄여 낮은 출산율을 높일 수 있다고 설명한다. 가사노동자는 원래 최저임금을 적용받지 않았기에 외국인에게 최저임금을 주지 않더라도 차별이 아니고, 그동안 시행된 저출산 정책과 달리 합계출산율 0.78명으로 소멸하고 있는 우리나라를 구할 수 있는 ‘급소’라고 주장한다. 과연 그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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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 학자금대출이라는 장벽 오래간만에 A와 통화를 했다.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A의 목소리는 늘 활기차다. 정치적으로 불안한 아프리카를 떠나 한국을 선택한 부모님의 손을 잡고 아시아의 낯선 땅에 왔던, 눈이 커다란 꼬마는 10년이 넘는 시간을 이 땅에서 보내면서 이제는 자신의 독특한 피부색으로 먼저 농담을 건넬 정도로 훌쩍 자랐다. 대학 등록금을 벌기 위해 저녁 9시부터 다음날 새벽까지 편의점에서 야간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는 A에게 밤샘 알바가 힘들겠다고 했더니 그것보다 손님들이 자기를 볼 때마다 ‘방송인 조나단을 아느냐’고 물어봐서 손님 상태에 따라 다양한 버전으로 대답하는 게 더 힘들다며 너스레를 떤다. 학교 다니며 밤낮을 뒤집어 알바를 해도 다음 학기 등록금을 마련하기에 부족하다며 이번 참에 자기도 유튜버를 할까 고민 중이라 해서 그럴듯한 채널 이름도 지어줬다. 알바가 힘들면 학자금대출을 좀 알아보라는 말에 A는 “변호사님, 우리는 그런 거 안 돼요”라고 한다. 난민으로 인정받아 한국에서 10년 넘게 살고 있지만 여전히 A는 한국 사람과 구별되는 ‘우리’이고, 한 해 40만명이 넘는 대학생이 이용하는 학자금대출도 여전히 닿을 수 없는 ‘그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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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 말뿐인 정부의 ‘체계적 관리’ 올해 고용허가제로 한국에 들어오는 외국인 노동자의 숫자가 약 11만명이다. 역대 가장 큰 규모이고, 6만9000명 수준이었던 작년과 비교해도 2배 가까이 늘어난 숫자다. 코로나19 이후 늘어난 한국 사회의 외국인력 수요를 고려한 것이지만, 이렇게 도입된 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관리와 처우보장도 중요하다. 얼마 전 고용노동부는 고용허가제의 개선 방향을 지적하는 언론보도에 대해 해명하면서 “고용허가제는 외국인력(E-9) 활용의 모든 과정을 공공부문이 체계적으로 관리하고 있다”고 밝혔다. 민간 또는 지방자치단체에서 외국인력을 도입하는 제도와 비교하면서 ‘고용허가제는 중앙정부 간 MOU 방식을 통해 외국인 구직자 선발, 입국에서 사업장 배치 및 체류지원, 귀국까지 일련의 과정을 공공부문(지방고용노동관서 및 산업인력공단, 송출국 공공기관)에서 체계적으로 관리’하고 있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고용허가제 주무부처의 공식적 입장이라고 하기에는 현실과의 괴리감이 너무 커 얼굴이 화끈거릴 정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