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영관
변호사·이주민센터 친구 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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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 완벽한 난민이라는 환상 법은 명확한 기준이어야 한다. 많은 사연이 오가는 법정에서 법은 유죄와 무죄, 있음과 없음을 구별하는 기준점이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너무 복잡해서 명확해 보이는 하나의 기준으로만 판단할 수 없는 경우가 많다. 정명원 검사의 책 <친애하는 나의 민원인>에 실린 사례를 하나 옮겨본다. 사법연수원 시절 동료들과 요양원에서 잡초 뽑는 봉사활동을 하게 되었다. 문제는 나물로 쓰이는 풀과 뽑아야 하는 잡초가 비슷하게 생겼다는 것. 시골 출신의 감각으로 잡초를 골라내던 저자에게 한 친구가 다가와 기준이 무엇인지 물었다. ‘자세히 보면, 이 풀은 표면이 매끈하고, 잡초의 표면에는 잔털 같은 것이 있는데’ 하고 설명이 채 끝나기도 전에 “털이 있는 것을 뽑아”라는 기준이 손나팔로 전달되었고, 명확한 기준을 인식한 법조인들의 성실함으로 그날 그 정원에서 ‘털이 있는 풀’은 모두 제거됐다. 털처럼 보이는 무언가를 달고 있다가 제거된 나물, 털은 있지만 처음부터 나물도 잡초도 아니었던 제3의 풀의 무고한 희생이 얼마나 되는지 확인하지 못한 채, 결과적으로 정원은 말끔히 정리되었다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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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 차별 이용해 아이 키울 수 없다 얼마 전 외국인 가사노동자에게는 최저임금을 안 줘도 되는 법안이 제출되었다. 대표발의한 조정훈 의원은 법안이 통과되면 월 100만원 이하로 외국인 가사노동자를 고용할 수 있고, 이를 통해 여성의 육아와 가사에 대한 부담을 줄여 낮은 출산율을 높일 수 있다고 설명한다. 가사노동자는 원래 최저임금을 적용받지 않았기에 외국인에게 최저임금을 주지 않더라도 차별이 아니고, 그동안 시행된 저출산 정책과 달리 합계출산율 0.78명으로 소멸하고 있는 우리나라를 구할 수 있는 ‘급소’라고 주장한다. 과연 그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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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 학자금대출이라는 장벽 오래간만에 A와 통화를 했다.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A의 목소리는 늘 활기차다. 정치적으로 불안한 아프리카를 떠나 한국을 선택한 부모님의 손을 잡고 아시아의 낯선 땅에 왔던, 눈이 커다란 꼬마는 10년이 넘는 시간을 이 땅에서 보내면서 이제는 자신의 독특한 피부색으로 먼저 농담을 건넬 정도로 훌쩍 자랐다. 대학 등록금을 벌기 위해 저녁 9시부터 다음날 새벽까지 편의점에서 야간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는 A에게 밤샘 알바가 힘들겠다고 했더니 그것보다 손님들이 자기를 볼 때마다 ‘방송인 조나단을 아느냐’고 물어봐서 손님 상태에 따라 다양한 버전으로 대답하는 게 더 힘들다며 너스레를 떤다. 학교 다니며 밤낮을 뒤집어 알바를 해도 다음 학기 등록금을 마련하기에 부족하다며 이번 참에 자기도 유튜버를 할까 고민 중이라 해서 그럴듯한 채널 이름도 지어줬다. 알바가 힘들면 학자금대출을 좀 알아보라는 말에 A는 “변호사님, 우리는 그런 거 안 돼요”라고 한다. 난민으로 인정받아 한국에서 10년 넘게 살고 있지만 여전히 A는 한국 사람과 구별되는 ‘우리’이고, 한 해 40만명이 넘는 대학생이 이용하는 학자금대출도 여전히 닿을 수 없는 ‘그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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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 말뿐인 정부의 ‘체계적 관리’ 올해 고용허가제로 한국에 들어오는 외국인 노동자의 숫자가 약 11만명이다. 역대 가장 큰 규모이고, 6만9000명 수준이었던 작년과 비교해도 2배 가까이 늘어난 숫자다. 코로나19 이후 늘어난 한국 사회의 외국인력 수요를 고려한 것이지만, 이렇게 도입된 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관리와 처우보장도 중요하다. 얼마 전 고용노동부는 고용허가제의 개선 방향을 지적하는 언론보도에 대해 해명하면서 “고용허가제는 외국인력(E-9) 활용의 모든 과정을 공공부문이 체계적으로 관리하고 있다”고 밝혔다. 민간 또는 지방자치단체에서 외국인력을 도입하는 제도와 비교하면서 ‘고용허가제는 중앙정부 간 MOU 방식을 통해 외국인 구직자 선발, 입국에서 사업장 배치 및 체류지원, 귀국까지 일련의 과정을 공공부문(지방고용노동관서 및 산업인력공단, 송출국 공공기관)에서 체계적으로 관리’하고 있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고용허가제 주무부처의 공식적 입장이라고 하기에는 현실과의 괴리감이 너무 커 얼굴이 화끈거릴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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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 불안정 제도가 만든 취약한 삶 외국인 유학생을 이용한 보이스피싱 범죄가 늘어나고 있다. 범죄집단은 유학생의 불안정한 취업경로와 체류자격을 적극적으로 이용하는 등 수법이 정교해지고 있지만, 유학생이 범죄에 이용되는 걸 막기 위한 정부 차원의 대책은 보이지 않는다. 정책의 사각지대 속에 청운의 꿈을 품고 한국에 온 유학생들이 한순간에 보이스피싱 범죄자가 되어 구치소에 수감되거나 본국으로 쫓겨나고 있다. 몽골에서 온 네모(가명)는 2017년 한국으로 유학을 왔다. 넉넉하지 못한 가정 형편이지만 친척들의 도움을 받아 유명 사립대학 사회복지학과에 입학해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했다. 지도교수 추천으로 대학원에 입학했고 석사과정을 마치고 박사과정을 준비하던 중 함께 유학하던 동료 외국인 학생과 결혼해 가정을 꾸리고 아이도 낳았다. 아이를 키우다 보니 경제적인 어려움이 많았다. 유학생은 사전에 출입국관리소 허가를 받아 일자리를 구해야 하는데 학교 앞 작은 식당들은 출입국에 필요한 서류를 주는 걸 불편하게 생각했다. 분유값이라도 벌자는 마음으로 인터넷 구직사이트에 이력서를 올렸다. 얼마 뒤 금융투자회사에서 외국인 외근직원을 채용하는데 면접을 보겠느냐는 연락이 왔다. 코로나19 때문에 비대면 면접을 보고, 회사 홈페이지에 올라온 서식으로 근로계약서도 썼다. 회사 담당자는 외국인 유학생들이 단기 알바로 많이 한다면서 외근 경력이 쌓이면 가족을 초청할 수 있는 취업비자로 변경해주겠다고 했다. 꿈같은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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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 이주노동자권리협약만 남았다 ‘강제실종으로부터 모든 사람을 보호하기 위한 국제협약’(강제실종방지협약)이 지난 12월8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2017년 제3차 유엔 보편적 정례인권검토(Universal Periodic Review·UPR) 심의에서 우리 정부가 강제실종방지협약 비준·가입 권고를 받고, 2018년 3월 유엔 인권이사회에서 수용 의견을 밝힌 이후 4년 반이 걸렸다. 대한민국 헌법 제6조 제1항은 헌법에 의하여 체결·공포된 조약은 국내법과 같은 효력이 있다고 선언하고 있어 앞으로 강제실종방지협약과 충돌하는 국내 법률을 개정하는 후속 작업이 진행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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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 가족보다 중요한 이익은 없다 한국에 머무는 외국인이 지난 9월 기준 217만명을 넘어섰다. 2019년 250만명으로 가장 많았다가 코로나19로 감소한 이후 올해부터 다시 빠르게 늘어나고 있다. 얼마 전 정부도 내년 외국인노동자 입국 허가 인원을 역대 최대인 11만 명으로 결정했다. 2025년이면 국내 체류 외국인 숫자가 250만명을 넘어 역대 최고 수준이 될 것으로 보인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기준 이주배경 인구가 전체 인구의 5%를 넘으면 공식적으로 다인종 국가로 분류되는데 한국도 정말 머지않았다. 국경을 오가는 사람이 늘어날수록 중요해지고 있는 것이 출입국 행정이다. 외국인이 한국에 입국하려면 법무부 장관이 발급한 사증(비자)이 있어야 한다. 실무적으로는 법무부 장관의 위임을 받은 각 나라의 영사가 비자 발급 권한을 가지고 있다. 몽골 사람이 한국에 오려면 울란바토르에 있는 한국대사관에, 캄보디아 사람은 프놈펜에 있는 한국대사관에 비자를 신청해서 발급받아야 한다. 한국 사람과 결혼하여 한국에 자녀를 둔 외국인도 가족을 만나기 위해 한국에 오려면 같은 절차가 필요하다. 문제는 각 나라 대사관에서 판단하고 있는 비자 발급 기준이 형식적이거나 소극적이어서 구체적인 현실에서 지나치게 불합리한 경우라도 이를 법적으로 다툴 수 있는 방법이 마땅치 않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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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 분단 맞서 통일 바라던 사람들 ‘국적’이란 개인이 소속된 ‘국가’의 기록이다. 국가라는 공동체는 국적을 가진 구성원을 국민으로 보호하고, 국민은 의무를 부담한다. 개인에게 최초 국적은 어떤 의미에서 고정적이다. 생물학적으로 부모 없이 태어난 사람이 존재할 수 없는 것과 비슷하다. 그러나 국적은 변경될 수 있다. 국적은 국가라는 공동체의 운명과 함께하는 것이므로 국가가 없어지면 구성원의 국적도 함께 바뀐다. 8·15 해방 이후 일본에서 연합군총사령부는 일제강점기 일본에 살고 있던 조선인의 일본 국적을 박탈하고 ‘조선적’이라는 외국인으로 등록하게 했다. 외국인은 보호를 받을 국적국이 있어야 하지만 당시 외교적으로 조선이라는 공동체는 없어졌고 아직 남한과 북한이라는 국가공동체는 생겨나기 전이었다. 따라서 ‘조선적’이라는 국적은 법적으로 유효한 국적일 수 없고, 공동체 구성원이 아닌 배제 집단을 표시하기 위해 만들어진 행정적 분류기호에 불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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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 감옥에서도 차별받는 외국인 구치소에 수감된 외국인 A씨의 변호인 접견을 마치고 서류를 정리하면서 구치소 생활은 괜찮은지 물었다. 묻고 나서 속으로 아차 싶었다. 아직 재판이 진행 중이긴 하지만, 잘못된 판단으로 범죄에 연루되어 먼 타국의 감옥에 갇혀 있는 삶이 괜찮을 리 없기 때문이다. 파키스탄 국적으로 한국어 대화가 서툴러 영어와 한국어 그리고 손짓 발짓을 섞어가며 이야기를 하는데, A씨는 옅은 미소를 지으며 괜찮다고 했다. 그러곤 잠시 망설이다, 배가 좀 고프다고 했다. 구치소에서 밥을 많이 안 주느냐고 물으니, 한국식이 아니면 한 끼에 빵 2개와 잼 1개를 받는다고 했다. 무슬림인 A씨는 종교적인 이유로 한국음식을 먹지 못하는 경우가 많고, 한국음식을 배식받으면 김치와 밥만 먹는데 그것도 양이 많지 않아 늘 배가 고프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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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 이주민엔 높기만 한 은행 문턱 외국인 주민들이 자주 차별을 경험하는 장소는 어디일까? 외국인 주민의 유형과 생활환경에 따라 다소 차이가 있겠지만, 여성가족부에서 2만5000여가구를 조사한 ‘2018년 전국다문화가족 실태조사’에 따르면 바로 ‘직장(일터)’이다. 직장에서 외국인이라는 이유로 차별받은 적이 있다고 응답한 비율은 무려 66.9%에 달했다. 그다음은 상점, 은행과 같은 경제영역이었다. 응답자의 44%가 차별을 경험했다고 답했다. 거리와 동네와 같은 일상 공간, 주민센터와 같은 공공기관보다 차별을 경험한 빈도가 높았다. 이주민의 법률상담을 하다 보면 은행에서 차별을 경험한 사례가 많다. 한 유학생 친구는 농담처럼 자기는 비자 문제로 출입국관리사무소와 은행에 가야 할 때 평소에 잘 입지 않는 정장을 꺼내 입는다고 할 정도다. 물론 보이스피싱과 같은 금융범죄가 늘어나는 상황에서 범죄에 신속하게 대응하고, 피해를 줄이기 위한 금융기관의 적극적 대응은 반드시 필요하다. 그러나 단지 외국인이라는 이유로 과도하게 서비스 제한을 받거나, 규제의 기준이 들쭉날쭉하여 자의적으로 적용된다면 부당한 차별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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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 시급 440원과 인간다움 20년 전 이야기다. 혈기왕성했던 대학교 새내기 시절, 선배들이 사주는 술자리가 좋아 일주일에도 몇 번씩 기숙사 통금시간을 지키지 못해 새벽까지 학교 학생회실 소파에서 새우잠을 자곤 했다. 이불도 없이 외투를 덮고 눈을 붙이다 보면 새벽 4시쯤 인기척에 자연스럽게 잠을 깨곤 했다. 학교 복도에 부산스럽게 울리는 소리는 파란 플라스틱 통을 끌고 다니며 학교 곳곳을 청소하는 아주머니들이었다. 처음에는 서로 놀랐고, 서 너번 지나자 왜 따뜻한 집 말고 여기서 이러고 있느냐는 핀잔을 들었다가, 몇 번인지 셀 수 없을 때쯤 숙취에 괴로워하던 나에게 한 아주머니께서 꿀물 한 잔 먹겠느냐며 말을 건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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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 이주노동자의 ‘깻잎투쟁기’ 깻잎. 들깨의 잎사귀를 부르는 말. 민트, 바질과 같은 꿀풀과 식물로 독특한 향이 있어 ‘코리안 허브’ 또는 ‘한국형 고수(향신료)’로 불린다. 육류의 누린내와 생선의 비린내를 줄여주고 가격도 저렴해 상추와 함께 대표적인 국민 쌈채소로 사랑받고 있으며, 영양소가 많아 나물 반찬이나 장아찌, 깻잎김치 등 밑반찬으로 사용되기도 한다. 과거에는 노지 밭에서 키웠는데, 요즘에는 비닐하우스에서 1년에 두 번 파종하는 이모작 방식으로 키운다. 병충해에 강해 쉽게 자라고, 어느 정도 자라면 1년 내내 수확할 수 있다. 어느 정도 자란 잎사귀를 사람 손으로 하나씩 직접 따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