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급 440원과 인간다움

조영관 변호사·이주민센터 친구 센터장

20년 전 이야기다. 혈기왕성했던 대학교 새내기 시절, 선배들이 사주는 술자리가 좋아 일주일에도 몇 번씩 기숙사 통금시간을 지키지 못해 새벽까지 학교 학생회실 소파에서 새우잠을 자곤 했다. 이불도 없이 외투를 덮고 눈을 붙이다 보면 새벽 4시쯤 인기척에 자연스럽게 잠을 깨곤 했다. 학교 복도에 부산스럽게 울리는 소리는 파란 플라스틱 통을 끌고 다니며 학교 곳곳을 청소하는 아주머니들이었다. 처음에는 서로 놀랐고, 서 너번 지나자 왜 따뜻한 집 말고 여기서 이러고 있느냐는 핀잔을 들었다가, 몇 번인지 셀 수 없을 때쯤 숙취에 괴로워하던 나에게 한 아주머니께서 꿀물 한 잔 먹겠느냐며 말을 건넸다.

조영관 변호사·이주민센터 친구 센터장

조영관 변호사·이주민센터 친구 센터장

그날 새벽 처음 지하실에 내려가 보았다. 노래패와 연극동아리 연습실로만 알고 있던 지하 계단 아래 작은 공간에 아주머니들이 쉬시는 공간이 있었다. 어두컴컴한 공간에서 아주머니께서는 능숙하게 물을 찾아 커피포트에 올리셨다. 물이 끓는 동안 잠시 둘러볼 수 있었다. 스티로폼 위에 장판을 깔아 만든 서너 평 남짓한 공간 한쪽에는 학생들이 쓰다 버린 네모난 4단 책장을 이어 붙여 만든 수납장과 낡은 냉장고가 놓여 있었다. 입구 쪽 벽에는 가슴팍에 노란색으로 ‘○○환경’이라는 글씨가 수놓인 자주색 작업복과 퇴근 이후 입고 나갈 화려한 외투가 걸려 있었다. 문턱이 없어 신발을 벗어야 할지 신어야 할지 알 수 없는 애매한 경계에 서서 아주머니께서 건네주신 꿀물 한 컵을 들고 계단 위로 올라왔다.

전날 마셔댄 술로 인한 숙취 때문인지, 아니면 매일같이 오가던 건물 아래 숨겨진 열악한 공간을 처음 본 충격 때문인지 종이컵을 든 채 건물 밖으로 나와 한참 동안 지하로 내려가던 계단을 멍하니 바라보았던 기억이 생생하다. 얼마 뒤 학교 청소노동자들의 노동조건 실태조사를 위한 모임에 참여하게 되었고, 학교 건물마다 숨겨진 충격적인 공간들을 많이 알게 되었다. 아주머니들은 이후 스스로 노동조합을 만들었고, 열악한 노동환경을 개선하기 위한 활동에 함께 참여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세상에 감추어진 노동을 알게 해준 귀한 시간이었다.

20년 지난 오늘, 대학교 청소노동자들의 이야기를 다시 듣게 되었다. 학교 본관을 점거하고, 학생들에게 고소장까지 받아가며 그들이 요구하는 것은 시급 440원 인상과 샤워실을 설치하고 개선해달라는 것이다. 최저임금 인상분만큼 임금을 올려달라는 것과 새벽부터 땀흘려 일했으니 퇴근 전에 씻고 퇴근할 수 있도록 해달라는 내용이다. 법을 지키고, 인간의 존엄성을 보장해달라는 최소한의 요구에 수백억원씩 적립금을 남기고 있는 대학은 책임을 용역업체에 떠맡긴 채 외면하고 있다. 청소노동자들이 일하고 있는 곳은 용역업체 사무실이 아니라 학교다. 결정권을 가진 진짜 사장인 학교법인이 나서야 해결되는 문제다.

우리는 모두 다른 누군가의 노동에 기대어 살고 있다. 힘있는 자의 노동은 눈에 잘 보이고 높은 비용을 치러야 하지만, 힘없는 자의 노동은 감추어지고 저평가된다. 자본주의가 가진 냉정한 논리다. 그러나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그 노동이 결코 가치 없는 것은 아니다. 대학교수부터 청소노동자들까지 모두 인간답게 노동할 수 있는 대학이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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