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정 제도가 만든 취약한 삶

조영관 변호사·이주민센터 친구 센터장

외국인 유학생을 이용한 보이스피싱 범죄가 늘어나고 있다. 범죄집단은 유학생의 불안정한 취업경로와 체류자격을 적극적으로 이용하는 등 수법이 정교해지고 있지만, 유학생이 범죄에 이용되는 걸 막기 위한 정부 차원의 대책은 보이지 않는다. 정책의 사각지대 속에 청운의 꿈을 품고 한국에 온 유학생들이 한순간에 보이스피싱 범죄자가 되어 구치소에 수감되거나 본국으로 쫓겨나고 있다.

조영관 변호사·이주민센터 친구 센터장

조영관 변호사·이주민센터 친구 센터장

몽골에서 온 네모(가명)는 2017년 한국으로 유학을 왔다. 넉넉하지 못한 가정 형편이지만 친척들의 도움을 받아 유명 사립대학 사회복지학과에 입학해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했다. 지도교수 추천으로 대학원에 입학했고 석사과정을 마치고 박사과정을 준비하던 중 함께 유학하던 동료 외국인 학생과 결혼해 가정을 꾸리고 아이도 낳았다. 아이를 키우다 보니 경제적인 어려움이 많았다. 유학생은 사전에 출입국관리소 허가를 받아 일자리를 구해야 하는데 학교 앞 작은 식당들은 출입국에 필요한 서류를 주는 걸 불편하게 생각했다. 분유값이라도 벌자는 마음으로 인터넷 구직사이트에 이력서를 올렸다. 얼마 뒤 금융투자회사에서 외국인 외근직원을 채용하는데 면접을 보겠느냐는 연락이 왔다. 코로나19 때문에 비대면 면접을 보고, 회사 홈페이지에 올라온 서식으로 근로계약서도 썼다. 회사 담당자는 외국인 유학생들이 단기 알바로 많이 한다면서 외근 경력이 쌓이면 가족을 초청할 수 있는 취업비자로 변경해주겠다고 했다. 꿈같은 일이었다.

회사는 투자금을 받는데 의뢰인의 사정상 계좌이체 한도가 걸려 이체가 안 되는 경우 외근직원이 의뢰인을 직접 만나 투자금을 받아오는 일이라고 했다. 한국에서의 사회 경험과 정보가 부족했던 그녀는 보이스피싱 범죄조직의 수법을 몰랐다. 하루 이체 한도가 200만원을 넘지 못하는 통장을 가진 외국인 유학생들이 자주 경험하는 일이라 비슷한 사정이라고만 생각했다. 그러다 어느 날 현장에서 경찰에 체포되었고, 그제서야 자신이 어떤 일을 했는지 알게 되었다. 수사 결과 드러난 전체 피해 금액은 3억원이 넘었다. 아이가 있어 구속은 면했지만, 앞으로 그녀가 감당해야 하는 삶은 힘든 과정일 것이다. 네모의 행동에 잘못이 없다는 것이 아니다. 범죄집단에 속아 3억원이 넘는 피해를 입은 사람들의 삶의 고통도 심각하다. 취약한 사람을 범죄에 이용하는 범죄집단이 하루빨리 검거되어 보이스피싱 범죄가 뿌리뽑혀야 한다. 이를 위해 정확한 원인 분석과 올바른 정책 마련이 절실하다.

외국인 유학생들이 범죄에 이용되는 과정을 살펴보면 그 책임이 온전히 개인에게 있다고 보기 어렵다. 학령인구 감소로 대학의 등록금 수입이 줄어들면서 외국인 유학생을 적극적으로 유치했지만 실제 외국인 유학생들의 체류와 관련한 문제는 외면하고 있는 대학과 교육부, 외국인을 효과적으로 관리하기 위해 인간으로서 가지는 기본적인 삶의 요소를 제한하는 방식으로 비자 정책을 만들어 온 법무부, 정작 도움이 필요한 사람에게 제도와 정보가 제대로 전달되지 못하고 있는 사회의 책임도 있다. 삶의 불안정함은 범죄에 취약하게 만든다. 한국에 체류하는 외국인들이 우리 사회에 꼭 필요한 구성원이라면 인간답고 안정적인 삶의 조건에 대한 진지한 고민과 접근이 필요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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