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한 난민이라는 환상

조영관 변호사·이주민센터 친구 센터장

법은 명확한 기준이어야 한다. 많은 사연이 오가는 법정에서 법은 유죄와 무죄, 있음과 없음을 구별하는 기준점이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너무 복잡해서 명확해 보이는 하나의 기준으로만 판단할 수 없는 경우가 많다.

조영관 변호사·이주민센터 친구 센터장

조영관 변호사·이주민센터 친구 센터장

정명원 검사의 책 <친애하는 나의 민원인>에 실린 사례를 하나 옮겨본다. 사법연수원 시절 동료들과 요양원에서 잡초 뽑는 봉사활동을 하게 되었다. 문제는 나물로 쓰이는 풀과 뽑아야 하는 잡초가 비슷하게 생겼다는 것. 시골 출신의 감각으로 잡초를 골라내던 저자에게 한 친구가 다가와 기준이 무엇인지 물었다. ‘자세히 보면, 이 풀은 표면이 매끈하고, 잡초의 표면에는 잔털 같은 것이 있는데’ 하고 설명이 채 끝나기도 전에 “털이 있는 것을 뽑아”라는 기준이 손나팔로 전달되었고, 명확한 기준을 인식한 법조인들의 성실함으로 그날 그 정원에서 ‘털이 있는 풀’은 모두 제거됐다. 털처럼 보이는 무언가를 달고 있다가 제거된 나물, 털은 있지만 처음부터 나물도 잡초도 아니었던 제3의 풀의 무고한 희생이 얼마나 되는지 확인하지 못한 채, 결과적으로 정원은 말끔히 정리되었다는 이야기다.

과천 법무부 청사 앞 천막에 이집트에서 온 이주민 A씨가 난민 인정을 요구하며 단식농성을 하고 있다. 물과 소금으로 연명한 지 어느새 20일이 다 되어간다. 이집트는 2011년 ‘아랍의 봄’ 민주화 시위로 민간정부가 들어섰지만 불과 2년 만에 군사 쿠데타가 발생해 다시 군부독재가 시작되었다. 인쇄공이었던 A씨는 2011년 자유정의당에 가입해 활동을 시작했고, 2013년 군부 쿠데타에 반대하는 민주화 시위에 적극 참여했다가 2014년 군사정부 박해를 피해 한국에 왔다.

A씨는 한국정부에 난민신청을 했으나 법무부는 불인정 결정을 했다. 나중에 드러난 사실이지만, 난민전담 공무원과 통역인이 면접 과정에서 A씨가 하지 않은 말을 허위 통역하고 기재했다. 한국에 온 목적이 ‘돈을 벌기 위한 것’이라는 내용이었다. 국가인권위원회의 권고로 재심을 받게 되었지만, 법무부는 작년 9월 재심에서도 A씨를 난민으로 인정할 수 없다고 결정했다. A씨가 2011년 이전 한국과 프랑스에서 체류한 사실이 있고, 과거 여권과 지금 여권의 영문 이름의 스펠링이 일부 다르며, 박해와 관련한 진술 중 일부가 최초 신청서와 차이가 있다는 것이다.

법리적으로 난민 사유가 발생하기 전에 신청인이 해외에 체류한 사실이나, 아랍권에서 이름을 영문으로 옮길 때 ‘I’와 ‘Y’를 혼용하여 사용하는데 공무원이 임의로 기재한 영문 스펠링이 난민 지위를 심사할 때 고려할 사정인지 의문이다. 또 거의 10년 전 작성한 난민신청서 내용과 그 이후 허위 통역 사건의 피해를 겪고 수년간 노숙 생활까지 거친 뒤 진행된 재심 인터뷰의 진술이 조금의 차이가 없이 일치한다면 오히려 그것이 더 이상한 일이다. 법무부가 생각하는 ‘완벽한 난민’은 어쩌면 환상에 불과하다. 법적인 부분을 떠나 부끄럽고 안타까운 점은 물과 소금으로 연명하고 있는 A씨의 청사 내 화장실 사용을 법무부가 금지하고 있다는 것이다. 소관 사무 민원인이 청사 화장실을 사용할 수 없는 기준은 또 무엇일까. A씨를 둘러싼 알 수 없는 기준들이 만들어낸 말끔하게 정리된 세상은 과연 건강하고 아름다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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