납작한 논쟁의 나라

오찬호 <민낯들: 잊고 또 잃는 사회의 뒷모습> 저자

최근 <민낯들>을 출간하고 독자의 항의 메일을 받았다. 사회의 이슈들을 짚어보는 글쓰기가 업인지라 종종 욕설로 도배된 불만을 접하는 게 익숙한 편이지만 너무 구체적이라 놀랐다. 책의 첫 장인 ‘고 변희수 하사’ 사례를 언급하며 왜 트랜스젠더를 옹호하냐, 성소수자 입장만 대변하는 이유가 뭐냐, 학생들이 읽고 동성애자 되면 당신이 책임질 거냐 등의 내용이었다. 누가 읽을까 봐 중고책으로도 안 팔 거다 등의 악담도 덧붙였다. 그래도 나는 친절히 장문의 반론을 보냈다. 하지만 간단한 답이 돌아왔다. “역시 자기만 옳은 줄 아네요. 그런 사람을 꼰대라고 하죠.”

오찬호 <민낯들: 잊고 또 잃는 사회의 뒷모습> 저자

오찬호 <민낯들: 잊고 또 잃는 사회의 뒷모습> 저자

고정관념을 건드리면, 고정관념도 다양성 아니냐면서 발끈하는 이들을 종종 본다. 특정 조직 안에서 관성을 따를 수밖에 없는 경우라면 더 심하다. 이들은 조직과 조직 구성원에 대한 비판을 본인에 대한 공격으로 여기고 의견을 던진 개인을 집단의 힘으로 발기발기 찢어버리는 데 몰두한다. 아무리 대척점에 있더라도 토론의 선을 지키면 서로가 다름을 정중히 이해하는 결론이라도 가능하지만, 자신을 기분 나쁘게 했다는 이유로 칼로 찌르겠다고 하니 비판자는 두려움에 입을 다물 수밖에 없다. 그들은 ‘외부에서 뭘 아냐’는 추임새를 습관적으로 뱉는다. 군대의 폐쇄성이 논해지면 자신이 외면한 조직의 악습을 살펴보는 게 지당한데, 모든 군인이 다 그렇지는 않다면서 군인을 혐오하지 말라고 하면 더 이상 이야기가 겹쳐지지 않는다. 내부의 고름이 밖으로 튀어나왔으니 문제를 삼는 건데, 고름에도 다 이유가 있다는 ‘외부인 간섭 금지’ 이론은 곳곳에 부유한다. 교사 연수에서 학력주의를 비판하면 ‘교사도 아니면서’라는 평가가 나오고, 대학병원 특강에서 간호사의 태움 문화를 지적하니 ‘병원에서 일한 적이 없으니 저런 소릴 하지’라는 짜증이 들린다.

비판이 차단되면 원래의 고정관념이 강해지니 그걸 뒤틀 생각 자체가 사라진다. 그러면 논쟁이 기계적인 찬반토론 위에서 공허하게 흘러간다. 상식과 비상식을 구분해야 하는 안건이 의견은 다 다른 거라는 정해져 있는 결론 안에서 날카로움을 상실한다. 물러서지 않으면, ‘다양성을 인정하지 않는 꼰대 논리’라고 쉽사리 폄훼된다.

최근 중학생 아이가 학교에서 토론을 하는데 젠트리피케이션을 찬성하는 쪽이 되었다면서 황당해했다. 젠트리피케이션은 일반적인 도시화의 의미가 아니라, 평범한 도시가 급격히 개발되고 사람이 몰리면서 폭등한 부동산 가격 때문에 원주민이 주거지를 이탈하는 현상을 설명하기 위해 등장한 것인데, 이를 찬성한다는 건 가난한 사람이 사라져서 좋다는 것 아닌가. 이게 의견이랍시고 토론이 되고 이를 따지면 이견을 존중하지 않는 인간이 되어 버린다.

논쟁이 납작해진 시대다. 정부는 인사 논란 때마다 능력주의대로 했을 뿐이니 문제 될 것이 없다고만 한다. 능력주의라는 말 자체가, 능력을 잣대로 차별과 혐오를 정당화하는 걸 비판하는 것인데 당당해도 너무 당당하다. 긍정적인 면만 보자면서 부정적인 걸 짚는 걸 틀어막는다. 이런 곳에선 따져본들 별 소용이 없다. 불평등의 문제점을 아무리 말해도 ‘인류 역사는 언제나 불평등했다’는 게으른 분석만이 부지런히 돌아다니는 이유를 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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