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 말 듣고자 한 말이 아니다

집 앞에 새끼 고양이가 왔다. 평생 고양이를 만져본 적도 없지만, 모른 척하기엔 미안해서 급하게 물과 음식을 주니 잘 먹는다. 그 모습만으로도 울적한 기분이 잠시나마 사라졌다. 사진을 몇 장 찍어, 지친 일상에 고양이가 웃음을 준다는 글과 함께 공유했다. 그러자 밥그릇이 지저분하다, 오래된 물 같다는 등의 차가운 반응이 이어진다. 고양이를 있는 그대로 대해야지, 위로받기 위한 도구로 여겨서는 안 된다는 훈계도 등장한다.

오찬호 <민낯들: 잊고 또 잃는 사회의 뒷모습> 저자

오찬호 <민낯들: 잊고 또 잃는 사회의 뒷모습> 저자

그런 말을 듣고자 한 말이 아니었는데, 그런 말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강아지와 산책을 하다가, 비가 오나 눈이 오나 개와 동네를 돌아다니는 이웃을 만났을 때도 그랬다. 요즈음 왜 보이지 않았냐고 물어서 며칠간 아이가 아팠고, 그러다 보니 업무가 밀려서 정신이 없었다며 근황을 전했다. 어떤 답이 돌아왔을까? 나는 ‘강아지 산책의 중요성’에 대한 일장 연설을 들으며 좋은 견주가 되는 교육을 일방적으로 받아야만 했다. 다 맞는 말이었지만, 그 상황에 맞는 말은 아니었다.

개와 고양이를 대하는 바른 태도야 중요하지만, 내가 그게 궁금해서 지친 일상을 슬쩍 흘렸겠는가. 답답한 내 사정에 대한 일말의 끄덕거림을 기대해서일 거다. 하지만 무엇에 꽂힌 이들은 시야를 사람으로 넓히지 않는다. 자기 관심사와 비슷한 결이 조금이라도 드러나면 그것만을 붙들고 대화의 맥락을 완전히 엎어버리는 무례를 일삼지만 본인은 그게 문제인 줄 모른다. 서운하다고 한들, 틀린 말을 한 것도 아닌데 왜 그러냐며 정색한다.

좋아하는 것을 제대로 실천하겠다는 의지가 강박으로 무장되면, 사람에 대한 공감 능력을 잃는 자의식 과잉의 상태에 이르게 된다. 운동에 미치면, 운동을 어떤 경우에도 전도해도 되는 것으로 착각한다. 그래서 “요즘 심란해서 운동을 못한다”면서 신세를 한탄하는 이를 향해 운동을 안 해 심란한 거다, 투덜거릴 시간에 걷기라도 하라면서 타인‘만’의 복잡한 상황을 나약한 핑계로 찌그러트려 버린다. 건강한 음식을 먹겠다는 다짐을 지나치게 성스럽게 포장하는 사람은 식사 자리에서도 이런 거 먹으면 몸에 안 좋다는 추임새를 뱉어내기 바쁜데, 그때 발생하는 적막감을 본인만 느끼지 못한다. 그러니 누가 장염에 걸렸다고 하면 걱정은커녕 무엇을 먹었는지를 캐묻기 바쁘다. 그게 햄버거나 삼각 김밥이라면 정말 그런지와 상관없이 비난의 수위를 높이는데, 또 떳떳하다.

지나친 확신은 소통을 불가능하게 한다. 모든 것을 좋게만 생각하자는 과잉 긍정성에 빠진 이가, 사회 비판을 하는 작가에게 부드럽고 친절한 글을 쓰라면서 다그치면 이야기가 이어질 수 없다. 자기 연민이 지나치면 스스로에게 해롭다는 걸 누구나 안다. 하지만 이를 이겨낸 자신을 너무 사랑하다 보면, 타인의 한숨만 듣고도 청승 떨지 말라면서 비수를 꽂는다. 자기혐오에서 벗어나라면서, 자신이 혐오를 일삼는다.

추석이다. 고생을 마다하지 않고 고향으로 모여드는 건 가족끼리는 대화가 이어질 거라는 기대가 있기 때문일 거다. 하지만 어렵게 간 게 무색할 정도로 빨리 돌아오려는 건, 그런 말 들으려고 한 말이 아닌데 이상한 말을 들어서일 거다. 어렵사리 “파이팅!”을 외치는 사람 앞에서 그런 표현은 영어에 없다면서 맥을 끊는 사람이 되지 말자.


Today`s HOT
UCLA 캠퍼스 쓰레기 치우는 인부들 호주 시드니 대학교 이-팔 맞불 시위 갱단 무법천지 아이티, 집 떠나는 주민들 폭우로 주민 대피령 내려진 텍사스주
불타는 해리포터 성 해리슨 튤립 축제
체감 50도, 필리핀 덮친 폭염 올림픽 앞둔 프랑스 노동절 시위
인도 카사라, 마른땅 위 우물 마드리드에서 열린 국제 노동자의 날 집회 경찰과 충돌한 이스탄불 노동절 집회 시위대 케냐 유명 사파리 관광지 폭우로 침수
경향신문 회원을 위한 서비스입니다

경향신문 회원이 되시면 다양하고 풍부한 콘텐츠를 즐기실 수 있습니다.

  • 퀴즈
    풀기
  • 뉴스플리
  • 기사
    응원하기
  • 인스피아
    전문읽기
  • 회원
    혜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