훌륭함을 추구하는 뜨거운 마음

이준웅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김민재가 거인들 사이에서 몸싸움하는 모습을 보니 자랑스럽고 뿌듯하다. 그가 공을 처리할 때마다 절로 몸에 힘이 들어가며 탄성이 나온다. 음바페와 연결을 주고받는 이강인의 볼 간수 능력에 감탄하다 보면 매번 떠오르는 질문이 있다. 이강인이 국내에서 계속 공을 찼어도 저렇게 훌륭하게 성장할 수 있었을까.

세계 수준의 훌륭함을 추구하는 뜨거운 마음으로 냉정히 우리 현실을 돌아보자. 왜 우리는 어떤 분야에선 세계적인데 다른 분야에선 세계 중간에도 못 미칠까. 이 질문에 대한 참된 답변이 있다고 가정하고, 그것을 ‘한국사회 불균등발전 테제’라 부르자. 내가 일단 답답한 까닭은 누군가 이미 그 테제를 제시했음에도 우리가 못 알아보고 있을 것만 같은 기분이 들어서 그렇다. 그런데 진짜 속 터지는 이유는 따로 있다. 우리가 테제를 얻더라도 어쩐지 그 답변을 거부한 채 그저 살던 대로 살겠다고 우기는 자들이 많을 것만 같기 때문이다.

양궁이나 바둑, 그리고 연예산업이 이 땅에서 이룩한 성과를 보자. 이 분야에서 최고면 곧 세계적 훌륭함을 갖춘 것과 같다. 그래서 해외의 꿈나무가 그의 고향을 떠나 한국에 온다. 반대로 세계 수준의 훌륭함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이 땅에 있어서는 곤란하기에 짐을 싸서 떠나야만 하는 분야들이 있다. 어떤 분야는 더욱 심각하다. 해외에서 자수성가했다는 인물도 다시 돌아와 한국에 정착하려면 한국식 저열함을 새로 배워야 한다.

나는 불균등발전 테제가 우리 사회에 분야별로 혁신의 성과를 제도화하는 방식이 다른 이유와 관련이 있으리라 짐작해 본다. 최근 연달아 읽은 애스모글루의 저작에서 얻은 영감에 기대어 말하자면, 우연한 성과라도 그것을 지속할 수 있도록 제도화된 경로를 만들어 내야 하는데 그게 영역마다 다르다는 것이다. 해당 분야의 성과를 일부 엘리트가 독식하지 않고 두루 나누어 혁신을 제도화해야 한다. 그런데 혁신의 제도화를 위해 필요한 그 첫 번째 성공은 누가 어떻게 만들어 낼 수 있단 말인가.

넷플릭스가 최근 공개한 <노란문>에서 한 사례를 찾아볼 수 있을 것만 같다. 지금 극장에 걸려 있는 <블루 자이언트>에도 힌트가 담겨 있다고 본다. 사례나 힌트가 아닌 생생한 이야기를 원한다면 최근 <유퀴즈>에 출연한 박진영과 방시혁의 대화에서 화두를 찾을 수 있다. 요컨대, 세계 수준의 훌륭함을 추구하는 뜨거운 마음들이 모여야 한다. 좁아터진 국내에서 상대방을 제쳐야 비로소 이기는 경쟁에 열중하는 게 아니라, 서로에게 세계의 훌륭한 성과를 내밀고 초심을 잃지 말자고 독려하는 동아리가 필요하다. 밖에서 누가 시켜서 그러는 게 아니라 훌륭함을 인식하는 자들이 스스로 모여서 서로를 다그쳐야 한다.

불균등발전 테제를 염두에 두고 보면, 한국 매체산업이야말로 흥미롭기 짝이 없다. 가장 오래된 전통을 가진 주류 언론은 모든 지표에서 세계 바닥 수준을 기록 중이다. 공영방송 제도를 줄기차게 실험해 온 지상파 방송은 정권변화를 거듭 경험하면서 어쩐지 망하자는 길로 찾아가고 있다. 오히려 근본도 없고 자원도 없었던 연예산업이 세계 수준의 훌륭함을 이룩하고 있는데, 아마 혁신의 제도화를 가로막는 기득권 네트워크의 저항력이 상대적으로 약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한국 언론인은 제발 자신을 돌아봐야 한다. 우리 젊은 기자들은 <노란문>이 보여주었듯이 과연 세계 수준의 기사들을 앞에 놓고 취재와 제작, 그리고 글쓰기와 말하기에 대해 치열하게 고민하며 논쟁하고 있는지. 또한 <블루 자이언트>의 드러머처럼 세계 수준의 훌륭함을 추구하는 동료에게 부끄럽지 않기 위해 분투하고 있는지. 내가 취재하고 작성한 이 기사를 번역해서 세계시장에 내놓으면 과연 얼마에 팔 수 있을지 고민하고 있는지. 아니 도대체 세계 수준의 훌륭함을 추구하는 기자가 내 주변에 있기는 한가 둘러보고 있는지.

이준웅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이준웅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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