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경한 미술평론가·전시기획자

아트페어(Art Fair)는 미술품을 거래하는 장(場)이다. 스위스의 유명 아트페어인 아트바젤과 투자은행 UBS가 지난 4월 발표한 ‘2023년 미술시장 보고서’에 따르면 2022년 기준 전 세계 대면 아트페어는 346개다. 그런데 우리나라에만 얼추 100개의 아트페어가 있다. 이 정도면 ‘아트페어 공화국’이라 해도 무방하다.

홍경한 미술평론가·전시기획자

홍경한 미술평론가·전시기획자

아트페어는 18세기 이후 본격화한 자본주의 경제가 가장 효율적으로 작동하는 무대다. 성과는 매출에 있다. 예술작품 판매를 통한 수익 창출이 목적이다. 존재 이유 역시 ‘장사’를 잘해 돈을 많이 버는 것에 있다. 국내 최고의 아트페어인 키아프 서울(한국국제아트페어)과의 공동 개최를 위해 올해 두 번째로 한국을 찾은 프리즈 서울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프리즈 서울의 디렉터는 지난달 17일 진행된 국내 간담회에서 자신들의 목적은 장사가 아니라고 했다. 그는 수준 높은 사람들과의 관계와 예술에 대한 진정성 있는 논의를 페어의 의미로 꼽았다. 광의적 소통의 가능성 타진과 진실하며 참된 토론 생성이 가치인 것처럼 말했다.

그의 말을 곧이곧대로 수용하긴 어렵다. 프리즈와 같은 세계 유수의 아트페어가 한국을 선택한 것은 우리나라만큼 문화 소비력이 강한 국가가 드문 데다 강력한 유한계급의 실재로 미술시장이 활발하게 돌아갈 수 있는 여건을 갖췄다는 계산 때문이다. 돈을 벌기에 적합한 나라로 한국을 점찍은 것에 대한 알리바이로 예술에 관한 진정성 있는 논의 운운했다는 게 합리적이다.

아트페어 관계자들을 만나보면, 의외로 ‘장사’라는 표현을 좋아하지 않는다. 이는 부정적 인식이 개입하는 자본주의적 속성을 은폐하면서 미적 권위를 원하는 관성 탓이 크다. 세속주의를 면피하려 되지도 않을 아방가르드의 혁신성을 흉내 내거나, 시장성 확보 수단으로 삼고자 유명 인사들을 동원하는 것, 미술평론가처럼 상업적인 활동에 직접적으로 연루되지 않은 사람들을 끌어들인 부대행사를 벌이는 것 등도 그 일환이다.

물론 아트페어에도 긍정적 측면이 있다. 페어를 통해 예술문화를 홍보하고, 관람객들에게 다양한 작품을 감상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국경 없는 문화경험을 하고 예술계의 동향 및 트렌드를 파악할 수도 있다. 예술 관계자들 간 교류와 협력을 촉진하는 독립적 예술문화의 일부인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마트 또는 백화점과 진배없는 페어에서 사회적 구성주의 관점으로 세상을 바라보며 예술의 진리에 대해 정의하거나 진정성에 관해 논하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내 경험에 비춰보면 어떤 시대적 사안에 관한 의견 내지는 토의에 방점을 둔 페어는 본 적이 없다. 그건 아트페어가 실제 해온 일과도, 그 성격과도 거리가 멀다.

아트페어가 넘쳐나는 시대다. 오직 그것만이 희망인 듯한 풍경이다. 이럴 때일수록 우린 아트페어의 속성을 진지하게 헤아릴 필요가 있다. 미술시장이 미적 수준까지 결정하는 상황을 비판해야 하며, 미술 자체가 기획화돼가는 현실을 안타까워해야 한다. 작가들 또한 부유한 사람들의 간택을 원하고, 고급 취미에 순응한 채 그들이 만든 시장선택 체계에 비굴할 정도로 읍소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봐야 한다.

특히 의식 있는 미술인이라면 아트페어로 인해 사색 없이 유행에 몰입하는 작품들이 부지기수로 생산되는 현상과 이윤 추구에 부응하는 투자가치에 의해 예술작품이 재단되거나 계량되는 오늘을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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