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실험미술’의 귀환

홍경한 미술평론가·전시기획자

우리에게도 예술이란 무엇인지 자문하면서 당대성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했던 시절이 있었다. 정치·사회에 만연한 불의에 저항하며 예술로 새로운 역사쓰기를 시도한 1960~1970년대다.

홍경한 미술평론가·전시기획자

홍경한 미술평론가·전시기획자

‘현대작가초대전’ 등이 열린 1957년을 한국 현대미술의 시작으로 보는 게 일반적이지만, 보다 급진적 조형 실험이 이뤄진 시기는 1960년대다. 배경은 반체제·반문화적 사회변혁운동인 68혁명을 비롯한 ‘프라하의 봄’ 등의 자유주의적이고 민주적인 국제흐름의 직간접적 경험에 있다. 1960년대부터 1970년대까지 이어진 국내 정치적·사회적 혼란도 실험미술의 불씨가 된다.

이와 같은 국내외 정세는 예술가들에게 ‘현실’에의 직시와 금기시된 조형영역의 개척이라는 신념과 책임의식을 심어준다. 이에 당시 청년작가들은 기존 어법에서 벗어난 예술언어로 보수화된 기성세대의 형식주의를 비판한다. 화단을 지배하던 문화 권력에의 염증, 제도의 모순과 낡은 관습에 대한 불신을 신선한 감각과 의식으로 버무려 타파해가는 한편, 반미학과 탈매체를 조형의 기반으로 한 이벤트, 오브제와 입체미술, 영화, 해프닝 등의 다양한 매체들을 ‘실험’의 이름 아래 포괄적으로 전개한다.

그러나 한국의 실험미술은 1970년대 중후반을 지나며 지속적 집단화의 실패와 미술세력의 전이로 인해 점차 힘을 잃는다. 불온한 ‘퇴폐미술’로 지목한 유신정권의 통제와 억압은 약화를 심화시킨 결정적 요인이었다. 그럼에도 실험미술은 한국미술사에 비중 있는 발자취를 남긴다. 불과 10여년의 짧은 역사에도 불구하고 ‘전위’로 대변되는 당시 청년예술가들의 활약은 한국 미술계를 성숙시킨 탄탄한 토대가 됐다.

한국 현대미술에 있어 형식·내용의 전복을 꾀하고, 예술가로서의 태도와 의식에도 적잖은 파장을 미친 실험미술이었지만 2000년대까지 제대로 된 연구는 없었다. 그사이 실험은 거세됐고 전위는 자본주의에 자리를 내줬다. 그렇게 세월의 뒤로 잊히던 중 국립현대미술관이 전위미술의 뿌리를 추적하는 전시 ‘한국실험미술 1960-70년대’ 전을 마련했다.

오는 7월16일까지 진행되는 이 전시에는 가장 활발하게 전위 활동을 펼친 초기 실험미술 작가 29명(김구림, 정강자, 이승택, 이태현, 성능경, 이강소, 김영진, 강국진, 이건용, 박현기 등)의 작가 작품 90여점과 소수의 아카이브 자료가 내걸렸다. 실험미술을 촉발한 ‘청년작가연립전’(1967)을 위시해 한국 최초의 종합예술집단이었던 김구림의 ‘제4집단’ 외에도 실험미술의 계보를 잇는 소그룹활동도 선보인다. 작품 하나, 그룹마다 예술가의 존재의미가 새겨져 있다는 게 특징이다.

‘한국 실험미술 1960-70년대’ 전은 실험미술의 재조명이라는 명분 외에도 시대성을 투영시킨 작업들을 발굴함으로써 사회 속 예술의 기능을 고찰한다는 데 그 의미가 있다. 또한 한국의 실험미술을 서울에 이어 미국 뉴욕과 LA에서 잇달아 선보인다는 점에서도 의의는 유효하다. 다만 몇몇 작가의 작품은 자본에 상냥해진 현재의 무게를 이기지 못한다. 주요 그룹에는 가담했으나 맥락 면에선 글쎄다 싶은 작가도 있으며, 이게 과연 대표작인가 싶은 것도 없진 않다. 여기에 남다른 족적을 남긴 김차섭에 대한 심도 있는 조명 부족, 안상철·황현욱과 같은 작가들의 작품 누락, 30여점에 불과한 아카이브 자료 등은 한국 실험미술의 진수를 보여주기엔 아쉬움이 있다.

특히 동적인 실험미술을 다루면서도 평범하게 늘어놓는 수준의 전시문법은 격동기 한국의 사회사 속 예술실천의 흔적들을 좇기엔 역부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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