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선적 화가들, 닮은꼴 사람들

홍경한 미술평론가·전시기획자

신고전주의는 18세기 후반부터 19세기 초에 걸쳐 프랑스를 중심으로 유럽 전역에 나타난 예술운동이다. 대표적인 작가로 자크 루이 다비드를 꼽는다. 평생을 여러 제왕에 기생하며 호의호식한 화가다. 빼어난 실력을 인정받았지만, 살아 있는 권력에는 한없이 머리를 조아리며 미화하고 왜곡한 그림으로 역사를 조작했다.

1801년 그린 ‘알프스 산맥을 넘는 나폴레옹’은 그 조작과 미화의 정점에 있다. 제목에서 보듯 그림의 주인공은 북부 이탈리아를 침략하기 위해 길을 나선 나폴레옹이다. 백마를 탄 그는 붉은 망토를 휘날리며 한 손을 들어 진군을 명하고 있다. 화면을 지배하는 위풍당당함과 패기는 두려움을 모르는 장군 이상이다.

그러나 실제의 나폴레옹은 왜소했다. 빨간 망토도, 백마 따위도 없었다. 노새를 탄 채 현지인의 안내를 받아 생베르나르 협곡을 넘었다. 심지어 군대를 먼저 보내고 안전한 상태에서 발걸음을 옮겼다. 이런 사실에도 불구하고 다비드는 나폴레옹을 불굴의 의지로 군사를 이끄는 지도자로 포장했다. ‘보나파르트’라는 이름을 전설의 명장 한니발과 샤를마뉴 위에 각인하며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영웅으로 묘사했다. 다비드는 또 다른 작품 ‘소크라테스의 죽음’(1787)에서 철학과 신념을 강조했다. 우린 흔히 “악법도 법이다”를 말하며 소크라테스가 독배를 마셨다고 생각하지만, 법을 철학의 하위 개념에 두었던 소크라테스는 그런 말을 한 적이 없다. 그가 독배를 든 건 악법도 법이어서가 아니라, 자신의 철학적 진리에 순응하기 위해서였다. 다비드 역시 이를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다비드는 자기가 그린 그림과는 다른 삶을 지향했다. 프랑스 혁명이 터지자 오랜 후원자였던 루이 16세와 왕비 마리 앙투아네트의 사형에 찬성했으며, 나폴레옹이 스스로 황제에 오른 이후엔 그토록 강조해온 혁명정신을 뒤로한 채 독재자를 찬양하는 작품들을 쏟아냈다.

미술사엔 권력자를 숭배하거나 신화 만들기에 동조한 작가들이 자주 등장한다. 혁명과 반동, 왕정과 공화정을 넘나들며 입신양명을 도모했던 다비드 외에 나폴레옹을 거의 신(神)의 반열에까지 올려놓은 그림(왕좌에 앉은 나폴레옹 1세, 1806년작)을 통해 아부의 극치를 드러낸 앵그르가 그랬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그림 내 권력자 초상을 교체하며 세속적 욕망을 꿈꾼 고야도 마찬가지였다. 이들의 공통점은 시대 흐름에 예민했고 정치감각이 남달랐다는 데 있다. ‘알프스 산맥을 넘는 나폴레옹’ 속 말 고삐에 서명하며 ‘당신의 한 마리 말이 되겠노라’고 선언한 다비드처럼 통치자를 숭상하거나 보위했다는 점도 같다. 그러나 역사는 다비드 등 일단의 예술가들을 위선자로 규정한다. 기회주의자로 평가한다.

그런데 이러한 유형의 인물들이 과연 미술사 내에만 존재할까. 아니다. 지금도 살아 있는 권력에겐 아무 말도 못하면서 공명정대를 외치는 이들이 있다. 한동훈 전 법무부 장관만 해도 그렇다. 그는 곧잘 ‘법 앞에는 예외 없다’고 말해왔지만 유독 김건희 여사의 범죄 의혹 앞에서는 입을 닫는다. 2020년 3월 첫 고발 이후 현재까지 김 여사에 대한 검찰 수사는 진척된 게 없다.

한 전 장관은 그동안 ‘김건희 특검법’에 대해 “총선용 악법”이라 했다. 검사 시절 자신이 참여한 특검법에도 특검 야당 추천과 수사상황 생중계 등의 조항이 포함돼 있었음을 모르진 않을 텐데 ‘독소조항’ 운운하며 억지를 부린다. 비대위원장이 되어서도 똑같다. 이에 적잖은 이들은 그의 철학과 신념을 의심한다. ‘김건희 특검법’에 관한 그의 행태에 대해선 군주 지키기 연장으로 본다. 물론 정치인들의 특성상 그조차 유한하겠지만.

홍경한 미술평론가·전시기획자

홍경한 미술평론가·전시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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