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렬
계명대 교수·사회학
최신기사
-
세상 읽기 검사와 의사 민주주의 사회에서 선거는 국가의 비시민적 활동을 조절할 수 있는 제도다. 선거를 통해 여론이 국가에 직접 개입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정당들은 상대를 이기기 위해극한의 ‘상징적 대결’을 벌일 뿐만 아니라 유권자 전체와 공감하는 ‘상징적 소통’을 이루려 노력한다. 이런 점에서 정당도 민주주의에 필수적인 시민사회의 조절제도다. 정당은 공약을 내걸고 표를 얻고자 하기에 되도록 이를 지키려 노력한다. 선거는 또 올 것이며, 유권자의 시민적 권력은 여전할 것이고, 상대 당의 비판도 항상 매서울 것이기 때문이다. 선출 공직이란 걸 망각한 대통령이 국가 관료제를 동원해 절대권력을 휘두를 때 정당이 나서 이를 조절한다.
-
세상 읽기 K민주주의 2024년 봄, 풍경 하나. “선생님에게 여러분을 알려주세요.” 새 학기가 시작된 초등학교, 가정통신문을 보내온다. 철저하게 비밀을 유지하니 안심하고 솔직하게 적어달라고 한다. 여러 정보를 적게 되어 있는데, 그중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장래 희망. 학생과 학부모가 따로 적게 되어 있다. 한 아파트에서 주민들이 모여 자녀의 장래 희망에 관해 이야기를 나눈다. “우리 애는 강시예요. 애니메이션 <신비아파트> 아시죠? 거기 나오는 귀신 캐릭터 때문인 거 같아요.” “공룡이 되고 싶대요. <고고다이노> 로봇 공룡을 보고 그런 거 같아요.” 학부모들이 모두 웃음을 터트린다. 근데 한 학부모가 적은 아이의 장래 희망을 보고 모두 웃음을 멈춘다. ‘검사!’ “대통령이 되려면 먼저 검사가 되어야죠.” 장난기가 반쯤 섞인 말이지만, 모두 씁쓸한 표정을 짓는다.
-
세상 읽기 이자스민과 이민사회 이주민으로 처음 국회의원이 되었던 이자스민이 8년 만에 다시 국회로 돌아왔다. 정의당 비례대표 의원이던 류호정의 탈당과 이은주의 사퇴로 공백이 생긴 비례대표직을 양경규 전 민주노총 부위원장과 함께 이어받았다. 남은 기간은 단 4개월이지만 벌써 ‘이민사회기본법 제정안’을 발의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새누리당 국회의원이던 2016년 이미 ‘이민사회기본법안’을 대표 발의했지만, 당시에는 제대로 논의되지도 못하고 시기상조라는 이유로 폐기되고 말았다. 얼마 전 법무부가 이민청을 설립하자고 제안했지만, 철저하게 국가주의 시각을 드러낼 뿐 이민사회에 대한 진지한 성찰이 부족하다.
-
세상읽기 테러와 정치 자유민주주의 대한민국에서 제1야당 대표가 괴한이 휘두른 칼에 무참히 쓰러졌다. 전국에 날것 그대로 방영된 섬찟한 폭력에 모두 소스라쳤다. 바로 그 순간 ‘속된 일상의 시간’이 멈췄다. 갈가리 찢겼던 정치 진영이 한목소리로 이 사건을 테러로 규정하고 강력히 규탄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테러라고 하는 건 어떤 것이든 간에 피해자에 대한 가해 행위, 범죄행위를 넘어서서 인간의 자유를 억압하고 자유 사회를 지향하는 모두의 적, 자유민주주의의 적”이라고 규정했다. 국민의힘 한동훈 비대위원장은 “우리 국민의힘은 모든 폭력을 강력하게 반대할 뿐만 아니라 진영과 상관없이 피해자의 편에 서서 행동하는 사람들”이라고 말했다. 더불어민주당의 권칠승 수석대변인은 “이번 사건은 이 대표에 대한 테러이며 민주주의에 대한 심각한 위협으로서 어떠한 경우에도 발생해서는 안 되는 일”이라고 말했다.
-
세상읽기 계약의 비계약적 요소 강사 퇴직금 문제로 대학가가 시끌벅적하다. 2019년 8월 강사법(고등교육법 개정안) 시행 이후 3년 고용 기간이 끝나면서 퇴직금 문제가 불거졌기 때문이다. 강사의 교원 자격을 인정한 강사법에 따르면 대학은 강사와 1년 단위로 계약을 맺어 임용하고 3년간 재임용을 보장해야 한다. 강의담당 시수는 6시간 이하로 제한하며, 특별한 경우 학칙으로 정할 때만 9시간까지 늘릴 수 있다.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근로기준법의 퇴직금 지급 규정이다. 사용자는 근로자에게 퇴직금을 지급해야 하는데, “다만 계속근로기간이 1년 미만인 근로자, 4주간을 평균하여 1주간의 소정근로시간이 15시간 미만인 근로자에 대하여는 그러하지 아니하다.” 이 규정을 그대로 따르면 6시간 강의하는 강사는 퇴직금을 받을 수 없다.
-
세상읽기 에스닉 노동 2022년 9월 오세훈 서울시장이 “한국 육아 도우미는 월 200만~300만원이 드는데 싱가포르 외국인 가사도우미는 월 38만∼76만원 수준”이라며 저출생 해결을 위해 저임금 가사노동자를 외국에서 데려와야 한다고 주장했다. 2023년 3월 조정훈 시대전환 의원은 “최저임금 적용을 없애면 월 100만원의 외국인 가사도우미 도입이 가능하다”며 저출산 문제 해결과 여성의 경제활동 지원을 위한 가사근로자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지난 5월 윤석열 대통령은 “외국인 가사노동자 도입을 적극 검토”하라고 지시했다. 두 달 만에 공청회가 열렸고, 정부는 올해 하반기부터 외국인 가사노동자 도입을 위한 시범사업을 시작하기로 했다. 이르면 연말쯤 강남구에 70명, 성동구에 30명이 들어온다. 1평(3.3㎡) 남짓 고시원에 거주하는데 숙소비는 노동자 본인 부담이다.
-
세상읽기 국가주의의 빈곤 지난 23일 육군본부 국감 현장. 한 국회의원이 묻는다. “6·25 때 나라를 지키기 위해 공산주의 침입에 맞서 싸운 전당(육사)에 공산주의 참여 이력이 있는 (홍범도) 장군의 흉상을 놓는 것이 정당하냐?” 박정환 육군참모총장이 답한다. “정당하지 않다.” 다른 국회의원이 묻는다. “육군총장이 헌법 정신을 부정하고 독립영웅을 부정하며, 일제에 항거한 역사를 지우는 것이 옳은가?” 박 총장이 다시 답한다. “육사의 설립 취지와 목적은 광복운동, 항일운동 학교가 아니다.” 육사 홈페이지에 실려 있는 육사의 목적. “국가방위에 헌신할 수 있는 육군의 정예장교 육성.” 교육의 제일 목표는 “자유민주주의 정신에 기초한 국가관 확립”이다. <학교역사>를 살펴봤다. 1946년 5월1일 국방경비대 사관학교 개교. 같은 해 6월15일 조선경비대 사관학교로 개칭. 1948년 9월5일 대한민국 육군사관학교로 개칭. 육사의 ‘정신적 뿌리’를 물었더니 뜬금없이 ‘제도의 뿌리’로 답한 국방부 대변인의 말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
세상읽기 국가주의자의 말 “공산전체주의를 맹종하며 조작선동으로 여론을 왜곡하고 사회를 교란하는 반국가세력들이 여전히 활개 치고 있다.” 광복절 경축사에서 윤석열 대통령이 한 말. “출입국 외국인 정책은 인류애를 위한 것이 아니라 국익, 국민을 위해서 하는 것이다.” 숙련 기능인력 장기 취업비자 제도 제정이 필요하다며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한 말. “대한민국 국민 5000만이 모두 주권자로서 권력을 행사한다면 대한민국은 무정부 상태로 갈 수밖에 없다.” 헌법 정신의 뜻을 묻자 김영호 통일부 장관이 한 말. “육사는 1945년 설립된 군사영어학교를 모체로 해서 국방경비대사관학교, 조선경비대사관학교를 거쳐서 1948년 대한민국 육군사관학교로 정식 출범했다.” 육사의 정신적 뿌리를 묻자 전하규 국방부 대변인이 한 말. “우리는 매국노의 상징으로 이완용을 비난하지만, 당시 대한제국은 일본에 저항했다 하더라도 일본과 국력 차이가 너무 현저해 독립을 유지하기 어려웠다.” 신원식 국방부 장관 후보자가 보수집회에서 한 말.
-
세상읽기 임시파견직 “커서 뭐가 되고 싶니?” 선생님이 묻자 사내아이들이 하나같이 소리친다. “대통령이요!” 선생님이 되묻는다. “왜 대통령이 되고 싶은데?” 사내아이들이 눈만 껌뻑거릴 뿐 잠잠하다. 보다 못한 선생님이 다그친다. “대통령 되려면 공부 열심히 해야지. 그래야 서울대 법대에 가지. 우리 모두 공부 열심히 하자.” 한 아이가 딴소리한다. “전 장군 될 거예요.” 운동은 만능이지만 서울대 법대를 갈 만큼 공부를 썩 잘하는 아이는 아니다. 선생님이 멀끔히 바라보다 말한다. “그래. 장군도 좋지. 씩씩하고.” 아이가 고개를 젓는다. “아니요. 육사 가서 장군 돼서 대통령 될 거예요.” 선생님이 씁쓸한 표정만 지을 뿐 더는 말이 없다.
-
세상읽기 대통령의 말 윤석열 대통령의 말 한마디에 온 나라가 출렁인다. “건폭이 완전히 근절될 때까지 엄정하게 단속해 건설현장에서의 법치를 확고히 세우라.” 검찰과 경찰이 건폭수사단을 구성해 특별단속을 벌인 지 넉 달 만에 1484명이나 검거했다. “공교육 교과과정에서 다루지 않는 분야의 문제는 수능 출제에서 배제해야 한다.” 교육부 장관이 대통령의 지시를 전달하자 교육부 대학입시 담당 국장이 경질됐고, 수능 주관 기관인 한국교육과정평가원장도 사임했다. “그동안 통일부는 마치 대북지원부와 같은 역할을 해왔는데, 그래서는 안 된다.” 남북대화, 교류, 협력, 인도지원에 관한 정책 수립과 같은 업무 대신 김정은 정권 타도와 자체 핵무장을 주장해 온 인사가 통일부 장관으로 지명됐다. “국민의 혈세가 그들만의 이권 카르텔에 쓰인다면 국민 여러분께서 이를 알고 용납하지 않으실 것입니다.” 비영리 민간단체에 지급한 보조금에 대한 감사를 실시해 1865건의 부정과 비리를 적발했다.
-
세상읽기 ‘퀴어 대구’ 대구에 때아닌 퀴어 논란이 일고 있다. 사정은 이렇다. 2009년 처음 대구퀴어문화축제가 동성로에서 열렸다. 30여명 참석했지만 성 소수자 차별 반대와 동성 간 파트너십 법률 제정과 같은 숨겨진 이슈를 세상에 알렸다. 혐오 발언이 쏟아졌음에도 매년 축제가 이어졌다. 코로나19로 한동안 못하다가 올해 다시 문을 열었다. 서울과 춘천에서 열린 퀴어문화축제처럼 반대가 쏟아지면서 대립이 격화됐다. 그런데 이번에는 풍경이 사뭇 다르다. 경찰과 대구시 공무원이 격한 몸싸움을 벌인 것이다. 적법한 집회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는 경찰과 도로점용 허가 없는 불법 시설물 설치를 원천 차단하겠다는 대구시가 정면으로 부딪쳤다. “퀴어 축제는 대구 상징인 동성로 상권의 이미지를 흐리게 하고, 청소년들에게 잘못된 성문화를 심어 줄 수 있기에 나도 반대한다.” 홍준표 대구시장이 축제가 열리기 직전 페이스북에 올린 글이다. 속마음을 그대로 드러냈지만, 정치적 명분은 다르다. 경찰이 불법 도로점거를 방조했으니 정당성을 가려보겠다는 것이다. 경찰과 공무원의 몸싸움은 단박에 언론의 시선을 끌었다. 소수자 혐오, 정치적 이해득실, 법원 판례 해석에 대한 분석이 쏟아져 나왔다. 문화사회학자인 내 눈에는 다른 게 보인다. 홍 시장은 뜻하지 않게 ‘공공장소의 질서’라는 사회학의 근본 문제를 공적 이슈로 만들었다. 젠더, 지위, 신분, 계급, 나이, 종교, 인종, 몸과 같은 사회적 범주에 상관없이 누구나 인간으로 출현할 수 있는 공공장소는 근대성이 만든 위대한 성취다.
-
세상읽기 다시, 간호법과 기능 분화 지난 칼럼에서 나는 간호법 제정을 기능 분화의 관점으로 접근하자고 제안했다. 하지만 직역 간의 밥그릇 싸움, 정치권의 전략적 표 계산, 보수와 진보의 이념 투쟁이 온통 언론을 뒤덮었다. 여론을 살피던 윤석열 대통령은 결국 5월16일 거부권을 행사했다. 국회로 다시 넘어온 간호법 제정안은 제대로 된 심의 없이 정치공학적 숫자 싸움에 떠넘겨졌다. 마침내 5월30일 국회 본회의 재표결에서 부결돼 폐기되었다. 예상에서 단 한 치의 어긋남도 없이 잘 짜인 시나리오처럼 진행되었다. 의료 환경의 변화로 새로운 간호법이 필요하다고 모두 인정하면서도 도대체 왜 이럴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