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렬
계명대 교수·사회학
최신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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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읽기 극우 정치 대 정체성 정치 역사적으로 볼 때 우파는 프랑스 혁명 이후 세워진 민주공화제를 반대하는 세력에서 출발한다. 우파는 주장한다. 만인이 동등한 권리와 의무를 가진 시민이라 주장하는 민주공화제는 인류가 이룩해놓은 위대한 문명을 악한 신분제라며 파괴했다. 공교육을 통해 인민을 하향 평준화된 우중으로 전락시켰다. 성과를 내려면 경쟁해야 하고, 그 결과에 따라 합당한 보상을 배분해야 한다. 이로 인한 불평등은 자연스러운 현상일 뿐만 아니라 더 나은 세계를 만들기 위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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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읽기 극우와 K학문 극우로부터 민주주의를 지켜내기 위한 대통령 선거가 국민의 심판으로 일단락됐다. 하지만 극우의 위협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이 위협은 일국적 차원에 그치지 않기 때문이다. 2008년 경제위기 이후 선진 자본주의 나라 대부분에서 극우 세력이 부활했다. 영국과 미국은 새로운 민족주의의 도전에 직면했다. 영국은 브렉시트를 감행했고 미국은 두 번에 걸쳐 트럼프가 대통령으로 당선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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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읽기 극우로부터 민주주의를 지켜내자 ‘극우’ 세력이 한국을 비롯해 세계를 휩쓸고 있다. 극우가 우파인 이상 우파 일반의 속성을 지닌다. 역사적으로 볼 때, 우파의 핵심은 프랑스혁명이 문을 연 민주공화정을 부정하는 것이다. 자유·평등·박애를 거부하고 권위·차등·시혜를 주장한다. 자유로워지려면 평등해야 한다. 평등한 사람 사이에서만 자유로울 수 있기 때문이다. 신분제적 전통과 단절한 근대적 개인이 돼야 한다. 자유롭고 평등한 사람은 법과 같은 일반적 언어를 활용해 박애를 실천할 수 있다. 우파는 이에 정면으로 맞선다. 신분제적 전통 속에서 엘리트적 가치를 찾고 목표를 세워야 한다. 불평등은 자연스럽고 불가피할 뿐 아니라 사회에 이롭다. 평등은 허망한 유토피아적 이데올로기에 불과하다. 엘리트 지배자가 유순한 민중에게 시혜를 베풂으로써 위계적 결속을 만들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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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지역에서 학문하기 계명대학교 여성학과가 폐지돼 사회학과로 흡수된다고 걱정이 이만저만 아니다. 대구·경북의 한 독립언론이 ‘계명대 여성학과 지키기 공동대책위원회 준비위원회’의 일방적 주장을 받아 ‘사회학 가해자’ 대 ‘여성학 피해자’ 프레임으로 보도한 것이 발단이다. 이를 이어받아 인터넷 신문·주간지 기사와 일간지 칼럼이 확산시켰다. 계명대 사회학과 학과장인 당사자로서 속사정을 알릴 필요를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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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읽기 국민적 연대 실행할 대통령 뽑자 지난해 12월3일 위헌적인 계엄이 기습적으로 선포된 후 122일 만에 마침내 헌법재판소에서 대통령 윤석열을 파면했다. 파면 결정의 준거는 헌법이다. 하지만 단순히 헌법재판관 8인의 헌법 해석에만 근거한 것은 아니다. 122일 동안 시민이 광장에 함께 모여 우리 사회의 근본 가치를 성찰한 덕분이다. 한 사회는 심층적 차원에서 사회적 삶에 궁극적인 방향을 제공하는 가치를 중심으로 통합돼 있다. 이러한 가치는 각자 뿔뿔이 흩어져 먹고사느라 바쁜 일상의 삶에서는 잘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사회를 근본적인 위기에 빠뜨리는 문제적 상황이 발생하면 다르다. 사람들이 한곳에 모여 가치론적 질문을 던지기 시작한다. “우리 사회가 존재하는 이유는 정녕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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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읽기 뉴라이트의 메타정치 지난 6일 독일 공영방송이 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을 다룬 다큐멘터리를 방영하려다 취소했다. <인사이드 코리아: 중국과 북한 그늘 아래의 국가 위기>라는 제목의 다큐멘터리는 지난달 25일 방송사 홈페이지에 미리 공개된 바 있다. 계엄을 옹호하는 극우 유튜버의 주장을 과도하게 담고 있다. 한국의 국가 위기에 미국·중국·북한 간의 권력 투쟁이 반영되어 있다고 주장했다. 보수 언론의 여론조사를 근거로 윤석열 지지가 51%, 반대가 47%라고 알렸다. 외교부가 손 놓고 있는 사이 일방적 주장에 대한 교민과 시민단체의 항의가 잇따랐다. 결국 방영을 취소하고 홈페이지에 올린 다큐멘터리도 삭제했다. 우발적 에피소드로 보기엔 찜찜하다. 유럽을 포함해 전 세계가 뉴라이트 세력의 ‘초국적 연결망’ 안에서 움직이고 있는 엄혹한 현실을 노출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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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읽기 부름과 응답 국회에서 대통령 탄핵소추안을 가결한 지 벌써 두 달. 헌법재판소에서 탄핵심판을 시작한 지도 어느덧 한 달. 그런데도 여전히 친위 쿠데타 내란을 완전히 진압하지 못하고 있다. 오히려 내란을 기획, 실행, 동조했던 전문직종 출신 관료의 반격이 시작됐다. 지난해 12월3일 시민의 헌신으로 친위 쿠데타를 꺾었을 때만 해도 가만히 숨을 죽였다. 제법 반성하는 흉내를 내더니 내란 수괴의 선동이 어느 정도 통하는 것처럼 보이자 ‘영구 없~다 전략’으로 갈아탔다. 국회 청문회 현장, 비상계엄 선포문을 본 적이 있냐는 물음에 한덕수 국무총리가 답한다. “나중에 보니까 양복 뒷주머니에 들어 있더라고요.” 경호처에서 제공한 비화폰을 갖고 있냐고 묻자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이 끔뻑거린다. “보니까 제가 가지고 있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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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읽기 전문직종의 비민주성 국회에서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가결된 지 한 달이 지났다. 그런데도 내란을 완전히 진압하지 못하고 있다. 왜 그런가? 전문직종이라 불리는 우리 사회의 비민주적 지배 엘리트 집단이 일상을 포획하고 있어서다. 내란을 기획하고 실행하고 동조하는 이들이 하나같이 ‘일류대학’에서 전문교육을 받았다. 윤석열 대통령은 서울대 법학과를 졸업했다. 한덕수 국무총리는 서울대 경제학과를 나와 하버드대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최상목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서울대 법학과를 나와 코넬대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김용현 국방부 장관은 육군사관학교를 나왔다.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과 조태열 외교부 장관은 서울대 법학과를 나왔다. 김영호 통일부 장관은 서울대 정치학과를 나와 버지니아대에서 국제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은 서울대 경제학과를 나와 콜로라도대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오영주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은 이화여대 정치외교학과를 나왔다. 박성재 법무부 장관은 고려대 법학과를 나왔다. 송미령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은 이화여대 정치외교학과를 나와 서울대에서 행정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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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읽기 일상 - 계엄 처음엔 지독한 농인 줄 알았다. 몇번이나 눈 비비고서야 현실임을 알아챘다. 세 번째 밀레니엄을 시작하고도 24년이 지난, 그것도 해가 저무는 12월3일 아닌 밤중에 1979년 군사 반란과 1980년 비상계엄으로 순식간에 되돌아갔다. 세계 경제 10위권의 자유 민주주의 ‘대한민국’에서 어찌 이런 괴기한 일이? 탄식도 잠깐, 곧 모두 박차고 일어나 추락하는 역사를 끌어올리려 자발적인 투쟁에 나섰다. 무장한 계엄군이 무너뜨리는 국회를 맨몸의 시민이 일으켜 세웠다. 또 다른 계엄을 막기 위해 매일같이 국회 앞에 모여 민주주의 수호를 외쳤다. 일상의 삶을 갈기갈기 찢어놓았던 사회적 경계가 흐려지고 민주주의를 중심으로 모두 하나 되는 연대의 공간이 활짝 열렸다. 마침내, 국회에서 탄핵소추안이 가결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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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읽기 종교와 초월성 지난 10월27일 광화문광장 일대와 여의도에서 ‘한국교회 200만 연합예배 및 큰 기도회 조직위원회’가 주최하는 대규모의 개신교 집회가 있었다. 거창한 이름을 내건 조직위원회의 공동대표·공동대회장은 이름만 들어도 누구나 아는 대형교회 목사다. 이영훈 여의도순복음교회 담임목사와 오정현 사랑의 교회 담임목사. 회장은 장종현 한국교회총연합회장이 맡았고 고문은 김장환 극동방송 이사장이다. 한마디로 말해 한국의 주류 세력인 개신교의 대표적인 집단이 주최했다. 교회에 ‘연합예배’ 참여 동원령이 내려진 건 누구나 아는 비밀이다. 주최 측은 110만명이 참여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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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읽기 실태조사 최근 행정복지센터가 편지를 보내왔다. 1인 가구 등 위기·취약 계층 발굴을 위한 실태조사 안내였다. 조사근거(법률과 조례), 조사내용(고독사 위험군 및 취약계층 발굴을 위한 실태조사), 조사기간(2024년 7~11월), 조사대상(중년 1인 가구)이 적혀 있었다. 특히 조사 참여 방법이 세 가지로 자세히 안내되어 있었다. 첫째, QR 코드 스캔을 통한 온라인 참여. 둘째, 방문조사원을 통한 참여. 셋째, 행정복지센터 방문 및 유선 연락을 통한 참여. 실태조사표에선 성명, 생년월일, 성별, 주소, 거주지, 1인 가구 사유, 근로 사유 등 실태조사의 독립변수로 활용할 항목을 묻는다. 질문 내용은 10개며, 답은 1(예)과 0(아니요)의 2점 척도다. 예를 들어 “지난 1주 동안 평균 하루 한 끼 식사도 하지 않았다”에 ‘예’ 아니면 ‘아니요’로 답하게 되어 있다. 10개 질문에서 10점 이상이면 고위험군, 8~9점이면 중위험군, 6~7점이면 저위험군, 0~5점이면 해당 없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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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읽기 양방 물신주의 얼마 전 정부가 발주한 교육 프로그램 개발 사업에 지원했다가 떨어졌다. 11% 갓 넘은 터무니없는 선정률에 어쩔 수 없다고 위안 삼으면서도 탈락 이유를 보면 씁쓸함을 지울 수 없다. “프로그램 구축을 위한 자료 수집을 질적 접근으로 제한하고 있는 것은 정책제안서의 부합 측면에서 다소 아쉬운 부분이라고 사료됩니다.” 기존 연구는 양적 실태조사에만 기대고 있어 질적 실태조사로 보완할 필요가 있다. 제안서에서 이 점을 강조했더니, 오히려 양적 연구를 무시하고 질적 연구만 수행한다는 억측으로 탈락시켰다. ‘사료됩니다’라는 책임을 회피하는 관료제 문장에 기분이 상하는 건 덤. 이쯤 되면 학술활동을 지원하는 국가기관이 양적 방법론에 지나치게 치우쳐 있는 것이 아닌가 깊은 의구심이 생긴다.